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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를 만들며 춤을 추는 춤꾼 국근섭 씨가 대숲에서 감성무를 선보이고 있다. 지난 11월 24일이다.
 차를 만들며 춤을 추는 춤꾼 국근섭 씨가 대숲에서 감성무를 선보이고 있다. 지난 11월 24일이다.
ⓒ 이돈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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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그마한 음악회에 갔었어요. 노래를 듣고 있는데, 내 몸이 움직이고 있더라고요. 나도 모르게. 그게 시작이었어요. 나의 내면에서 절로 솟구친 내 감정의 표현이었죠."

'춤꾼' 국근섭(59·전라남도 담양군 담양읍 삼다리)씨의 얘기다. 학창시절에 디스코텍 한 번 안 가본 '범생'이던 그가 춤꾼으로 변신한 계기였다. 국씨는 춤 중에서도 감성무(感性舞)를 춘다. 느낌이 있는 춤이다. 그때그때 상황에 따라 마음 가는대로 춘다.

특별한 춤사위도 따로 없다. 그날그날의 느낌과 감성, 주제, 분위기에 따라 다르다. 같은 무대, 똑같은 음악일지라도 춤사위가 달라진다. 국씨는 "지금까지 똑같은 춤은 한 번도 춘 적이 없다"고 단언한다.

'아름다운 가로수 길'로 유명세를 타고 있는 담양 메타세쿼이아 가로수 길에서 감성무를 공연하는 국근섭 씨. 10여 년 전 모습이다.
 '아름다운 가로수 길'로 유명세를 타고 있는 담양 메타세쿼이아 가로수 길에서 감성무를 공연하는 국근섭 씨. 10여 년 전 모습이다.
ⓒ 국근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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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지금으로부터 10년 전, 공식 무대에 처음 섰다. '아름다운 가로수 길' 담양 메타세쿼이아 가로수 길에서 열린 '가로수사랑 한여름 밤의 콘서트'에서다. 공연을 본 사람들의 입을 통해 스멀스멀 소문이 나기 시작했다.

공연 요청이 줄을 이었다. 주제도 다양했다. 대나무, 차꽃으로 시작해 5·18, 소녀상, 세월호, 촛불시위 등으로 확대됐다. 음악 장르도 국악은 물론 클래식, 재즈를 가리지 않았다. 그때마다 국씨는 온몸으로 춤을 추며 함께 웃고 같이 울었다.

'춤꾼' 국근섭 씨는 자신의 춤이 필요한 곳이라면 어디든지 찾아다녔다. 진도 팽목항에서 세월호 희생자를 추모하고 미수습자의 빠른 귀환을 기원하는 춤을 추고 있는 국 씨의 모습이다.
 '춤꾼' 국근섭 씨는 자신의 춤이 필요한 곳이라면 어디든지 찾아다녔다. 진도 팽목항에서 세월호 희생자를 추모하고 미수습자의 빠른 귀환을 기원하는 춤을 추고 있는 국 씨의 모습이다.
ⓒ 국근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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춤꾼 국근섭 씨는 담양과 전라도, 대한민국을 넘어 최근엔 해외에까지 발을 넓히고 있다. 지난 10월 중국 몽골에서 감성무를 공연한 모습이다.
 춤꾼 국근섭 씨는 담양과 전라도, 대한민국을 넘어 최근엔 해외에까지 발을 넓히고 있다. 지난 10월 중국 몽골에서 감성무를 공연한 모습이다.
ⓒ 국근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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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무대에만 서면 미치는 스타일입니다. 몰입해요. 무대에 오르기 전엔 긴장을 하는데, 일단 무대에만 서면 관객을 의식하지 않아요. 숨 쉬는 것도 잊어버릴 정돕니다."

국씨의 말에 '춤꾼'으로서의 자긍심이 배어있다. 관객들로부터 '미친 사람이 춤추는 것 같다' '백 번의 구호보다 감성무가 더 낫다' '온몸으로 내면의 의식을 일깨운다'는 말을 들은 것도 이런 연유다.

지금은 국내는 물론 다른 나라에서도 춤을 춰달라며 부르는 전문 춤꾼이지만, 그도 한때 곡절을 겪었다. 감성무를 추던 초기였다. 광주문예회관 소극장에서 공연을 해 기립 박수를 받았다. 하지만 뒷풀이 자리에서 '잘 나가는' 무용계 인사로부터 '그것도 춤이냐'며 핀잔을 들었다. 나름 큰 충격이었다.

"몇날 며칠을 고민했어요. 나는 누구인가? 춤은 무엇인가? 여러 날 고민 끝에 얻은 결론은, 나는 춤꾼이라는 것이었어요. 춤을 출 때 몰입했고, 춤을 추면서 행복했거든요. 내가 부러 춤을 추는 게 아니라, 내 마음이 춤을 췄다는 거였죠. '막춤'처럼 보일지라도, 나는 누구보다도 진솔하게 춤을 췄더라고요."

마음을 다잡은 그에게 용기를 북돋아 준 이가 노래꾼 장사익이었다. 장사익은 "나도 쉰 살에 데뷔했다"며 그에게 "(무엇을 하든지) 목숨 걸고 해보라"고 했다. 지금까지 그가 누구누구 '류(流)'가 아닌, 독특한 감성무를 출 수 있게 해준 버팀목이었다.

국근섭 씨의 끼는 감성무는 물론 소리에서도 발휘된다. 오래 전부터 익혀 온 소리는 감성무와 함께 그의 마음까지 치유해 준다.
 국근섭 씨의 끼는 감성무는 물론 소리에서도 발휘된다. 오래 전부터 익혀 온 소리는 감성무와 함께 그의 마음까지 치유해 준다.
ⓒ 이돈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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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근섭 씨가 죽순껍질로 만든 죽신황금차. 국 씨가 직접 개발하고 특허를 얻은 명차다.
 국근섭 씨가 죽순껍질로 만든 죽신황금차. 국 씨가 직접 개발하고 특허를 얻은 명차다.
ⓒ 이돈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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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씨의 '끼'는 춤에만 머물지 않는다. 차(茶)와 소리에서도 발휘된다. 그는 춤을 추는 시간을 빼곤 차, 소리와 함께 한다. 직접 차를 만들고, 차를 마시고, 소리를 한다.

"5·18 직후에 군대에 갔어요. 무지 힘들었죠. 아무런 이유 없이, 영문도 모른 채 맞고, 기합도 받으며 고생 많이 했었죠. 제대하고 소리를 접했는데, 군에서 멍들었던 제 마음의 상처를 치유해 준 게 소리였어요. 소리에 우리의 인생이 들어있고, 소리가 삶이고, 철학이더라고요. 눈물이 펑펑- 나더라고요."

그는 소리를 듣고, 직접 공부도 하면서 큰 깨달음을 얻었다고 했다. 자연스럽게 소리의 세계로 빠져들었다. 짬이 나면 차를 마시며 은은한 차향에 심취했다. 한편으론 음악을 들으며 음악의 세계에 온몸을 던졌다. 춤사위가 절로 나왔다.

늘 두건을 쓰고 개량한복을 입고 사는 국근섭 씨. 언제라도 웃으며 흥이 살아있는 사람이다. 말끝마다 '얼씨구'를 달고 산다.
 늘 두건을 쓰고 개량한복을 입고 사는 국근섭 씨. 언제라도 웃으며 흥이 살아있는 사람이다. 말끝마다 '얼씨구'를 달고 산다.
ⓒ 이돈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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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근섭 씨가 운영하고 있는 한옥펜션 명가혜. 담양읍 삼다리의 대숲에 둘러싸여 더 멋스럽다.
 국근섭 씨가 운영하고 있는 한옥펜션 명가혜. 담양읍 삼다리의 대숲에 둘러싸여 더 멋스럽다.
ⓒ 이돈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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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씨는 늘 두건(頭巾)을 쓰고 개량한복을 입고 다닌다. 한 정치인의 최근 표현을 빌리면 '좌파'인 셈이다. 하지만 늘 끼가 넘치고, 흥이 살아있는 사람일 뿐이다. 젊은 날엔 서점을 운영하고 찻집도 열었다.

지금은 대숲이 아름다운 마을에서 차를 만들며 한옥펜션을 운영하고 있다. 죽순껍질로 만든 죽신황금차는 그가 개발했다. 특허까지 얻은 명차다. 소리와 차와 춤이 어우러지는 하룻밤에 반한 사람들이 펜션도 다시 찾고 있다.

"차와 소리, 춤…. 다른 사람을 위로도 하지만, 저도 행복해요. 소리를 하고 춤을 추면서 무아의 세계에 빠져드니까요. 나의 영혼도 구제받는 느낌. 그래서 오늘도 차를 마시며 소리를 하고 춤을 춥니다."

감성무를 추면서 차를 만드는 그의 삶이, 별나게 꾸미지 않았지만 멋들어지게만 보인다. 한 없이.

담양 삼다리 대숲. 소나무와 어우러진 대밭에 차나무가 자유분방하게 자라고 있다. 국근섭 씨가 사는 한옥펜션을 둘러싸고 있는 대숲이다.
 담양 삼다리 대숲. 소나무와 어우러진 대밭에 차나무가 자유분방하게 자라고 있다. 국근섭 씨가 사는 한옥펜션을 둘러싸고 있는 대숲이다.
ⓒ 이돈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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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그:#국근섭, #감성무, #춤꾼, #명가혜, #삼다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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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찰이 일상이고, 일상이 해찰인 삶을 살고 있습니다. 전남도청에서 홍보 업무를 맡고 있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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