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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모님이 오랜만에 제주 내려오셨다. 장모님께 맛있는 회를 올리기 위해(?) 이틀째 낚시를 간다. 지난 11월 1일 '괴물'을 만났다. 뭔가 휙 걸렸다가 곧 줄이 터지고 말았다. 오늘도 혹시 그 괴물을 만날까 싶어 같은 포인트로 향했다. 목줄을 1.75에서 더 굵은 2.5로 바꾸었다.

한라산에 해가 걸리면 그때부터 본격적인 낚시 타임이다. 뭔가 큰 게 걸렸다. 힘깨나 쓴다. 굵은 벵에돔이기를 바랬다. 그러나 낚싯대가 탁탁거린다. 에이, 따찌구만. 독가시치를 제주도에선 따찌라 한다. 낚시에 걸리면 올라올 때 탁탁 치는 데서 유래했단다.

조금 더 어둑해졌다. 파도가 바위에 부딪쳐서 물살이 몰리는 곳에 밑밥을 집중적으로 친다. 그리고 물살이 비늘살처럼 반짝거리는 곳에 낚시를 드리운다. 곧 뭔가 휙 채갔다. 엄청난 힘이다. 가슴이 벌렁거린다. 그놈이다. 10초쯤 버텼을까, 줄이 터지고 말았다. 낚싯바늘 바로 위의 목줄이 짓이겨져 있었다. 두 번째도 실패했다. 뭣이었을까? 얼굴이라도 한 번 봤으면 얼마나 좋을까? 궁금증이 증폭된다. 이렇게 낚싯줄을 짓이길 수 있는 놈은 돌돔밖에 없는데...

낚싯바늘을 매고 또 던진다. 이번에는 슬금슬금 찌가 물속으로 들어간다. 이젠 물었겠지 하곤 낚싯대를 휙 챈다. 굵직한 놈이 걸렸다.
 낚싯바늘을 매고 또 던진다. 이번에는 슬금슬금 찌가 물속으로 들어간다. 이젠 물었겠지 하곤 낚싯대를 휙 챈다. 굵직한 놈이 걸렸다.
ⓒ pixab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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낚싯바늘을 매고 또 던진다. 이번에는 슬금슬금 찌가 물속으로 들어간다. 이젠 물었겠지 하곤 낚싯대를 휙 챈다. 굵직한 놈이 걸렸다. 탁탁 치지도 않아 벵에돔인 걸 직감한다. 큰 놈이라 제법 힘이 든다. 그러나 괴물은 아니다. 월척 벵에돔이었다. 내 낚시의 목표는 월척 벵에돔 한 마리니 오늘 목표는 달성한 셈이다.

묵직하게 낚싯줄을 당기는 고기... 잡을 수 있을까?

낚시할 수 있는 시간이 조금밖에 남지 않았다. 아무리 둔한 물고기라지만 한번 질겁을 한 고기는 같은 장소와 시각에 다시 물지 않는다. 괴물은 포기하고 벵에돔 한 마리 더 잡을 수 있을까 낚시를 계속한다. 제법 어두워졌다.

어라, 찌가 휙 들어간다. 순간을 놓치면 안 된다. 과감히 챈다. 바로 그 괴물임을 직감한다. 엄청난 힘이다. 릴뭉치에서 찌지직 찌지직하며 줄이 한동안 풀려나간다. 그러나 멀리 가지는 않는다. 그렇다면 감성돔이나 참돔은 아닌데... 뭘까? 다시 돌돔일 거라는 생각이 앞선다.

있는 힘을 다해서 릴을 감아댄다. 풀리는 속도와 감기는 정도가 같았는지 꿈쩍하지 않는다. 얼굴이라도 한 번 볼 수 있으면 좋으련만. 멀리 바다로 채고 나가지도 않고 가까이 다가오지도 않는다. 실망이다. 돌에 걸린 것이다. 다시 한 번 힘껏 당겨본다. 낚싯대 끝이 파르르 떨면서도 꿈쩍하지 않는다. 물속 돌에 걸렸을 때와 사뭇 다르다. 희망이 새록새록 생긴다.

돌돔이 위기에 처하니 바위 속에 파묻힌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다면 줄을 풀어줘서 물속 바위 틈에서 나오게 해야 한다. 팽팽한 줄을 풀어준다. 그런데 줄을 풀었는데도 꿈쩍임이 없다. 완전히 바위 속에 파묻히고 말았나 보다.

며칠 전 유튜브에서 본 돌돔 잡는 모습이 떠올랐다. 낚싯대를 세우고는 릴을 마구잡이 감아 댔다. 나도 따라 해본다. 1.5호 낚시대를 곧추세우고 힘을 있는 힘을 다해서 당기고는 릴을 감아본다. 줄이 이래 터지나 저래 터지나 마찬가지라는 자포자기도 곁들였다. 목줄이 2.5호이니 이빨로 짓이겨지지만 않으면 끊어지지 않을 거라는 아전인수식 생각도 한몫했다. 

그런데! 어라, 물속에서 뭔가 조금씩 앞으로 오면서 줄이 감기고 있었다. 갑자기 희열이 온몸에 짜르르 퍼진다. 이젠 정상적인 줄감기를 시도한다. 감으면서 낚싯대를 앞으로 숙이고, 더 이상 내려가지 않으면 감기를 멈추고 힘껏 끌어올린다. 다시 낚싯대를 숙이면서 릴을 감고 낚싯대를 숙이고... 그리고 주문을 왼다. "찌야 보여라 찌야 보여라" 찌가 보이면 거의 다 올라왔다는 뜻이니까.  

곧 빨간 찌가 어둠 속에서 희미하게 보인다. 또다시 희열이 온몸을 파고든다. 괴물을 잡을 수 있을 것 같았다. 잡아 올릴 수 있겠다 싶었다. 곧 큼직한 놈이 정체를 드러냈다. 와! 다금바리다.

내 속에서 혼자만 들리는 탄성이 터뜨린다. 뜰채가 없으니 파도를 이용해야 한다. 힘이 빠진 다금바리는 모든 걸 포기한 듯했다. 파도에 몸을 맡기고 있었다. 파도가 갯바위를 때릴 때를 이용하여 바위 위로 끌어 올렸다. 다리가 후들거린다. 아가미에 손을 넣어 들어 올렸다.

결국 잡은 '괴물' 다금바리, 회 쳐서 장모님께 드렸다

다금바리는 육식어종으로 입이 엄청 크다. 날카로운 이빨로 큰 고기도 집어삼킨다.
▲ 다금바리의 큰 입 다금바리는 육식어종으로 입이 엄청 크다. 날카로운 이빨로 큰 고기도 집어삼킨다.
ⓒ 신병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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괴물이다. 내 낚싯바늘 두 개를 뺏아간 다금바리와의 싸움에서 이겼다. 장모님께 다금바리를 맛보일 수 있게 되었다. 제주 내려와 산 지 7년째 한 번도 잡히지 않던 제법 큰 다금바리가 오늘 잡힌 의미는 무엇일까? 장모님 잘 모시라는 용왕님의 뜻이리라.

낚은 다금바리를 들고 기념사진 장 찰칵. 길이 49cm, 무게 2kg이었다.
▲ 2kg짜리 다금바리 낚은 다금바리를 들고 기념사진 장 찰칵. 길이 49cm, 무게 2kg이었다.
ⓒ 신병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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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변에 가까운 친구들에게 알린다. 호들갑을 떨면서. 단톡방에도 올려 자랑한다. 49cm, 2kg짜리 다금바리를 잡았다고. 아내는 다금바리를 검색한다. 진짜 다금바리란다. 자바리 구문쟁이가 아닌 '진짜 진짜' 다금바리란다.

아랫동네 사는 친구가 막걸리를 사 들고 왔다. 몇 년 전에 제주 갔다 온 친구가 수십만 원 주고 다금바리 먹어봤다고 자랑해서 엄청 부러웠는데 이젠 부러워하지 않아도 되겠다고 너스레를 떤다. 다금바리 회가 입에서 살살 녹는다. 머리는 굵은 소금을 척척 쳐서 구이로 먹는다. 회 먹을 때는 회가 제일 맛있다고 느낀다. 머리구이를 먹으면 회보다도 구이가 더 맛있다고 말한다. 나머지는 지리탕을 해서 배가 터지도록 먹었다.

다금바리회는 맛있다. 쫀득쫀득하면서 달콤하다.
▲ 다금바리 회 다금바리회는 맛있다. 쫀득쫀득하면서 달콤하다.
ⓒ 신병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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괴물... 낚시에서 언제나 만나고 싶은 멋진 놈이다. 다음 괴물은 언제 어디서 만날까? 아, 사랑스럽고 고마운 바다 괴물.

괴물 다금바리를 잡아 장모님께 회 쳐 드리는 사위 있으면 나와 보라고 그래! 오두방정이 밑도 끝도 없다.


태그:#다금바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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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도에서 살고 있습니다. 낚시도 하고 목공도 하고 오름도 올라가고 귤농사도 짓고 있습니다. 아참 닭도 수십마리 키우고 있습니다. 사실은 지들이 함께 살고 있습니다. 개도 두마리 함께 살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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