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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 내외와 트럼프 미국 대통령 내외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 내외와 트럼프 미국 대통령 내외 ⓒ 도널드트럼프 인스타그램

잘 짜인 각본대로 중국의 19차 당대회는 막을 내렸다. 사드 배치 문제와 환율 조작 문제로 중국을 힐난하던 트럼프는 언제 그랬냐는 듯, 시진핑을 향해 "북한을 다룰 힘을 지닌 아주 좋은 사람"이라는 평을 남겼다. 달라진 모습은 미국뿐만이 아니었다. 시진핑은 아이스크림을 뺏겨 단단히 삐친 아이에서 시혜를 베푸는 황제 같은 아량을 보였다.

그 시혜를 입는 속국은 다름 아닌 한국이다. 북한의 지속되는 핵 도발 속에서 고고도 미사일 방어체계(THAAD, 이하 사드)의 도입은 유일한 해결책으로 떠올랐다. 사드 배치는 삽시간에 미국과 중국이라는 거대 양국의 패권다툼으로 번졌다. 사드를 배치하고자 하는 미국과 사드배치를 완강히 거부하는 중국의 줄다리기 속에서 한국은 양자택일의 갈림길에 섰다. 결국 사드는 배치되었고 사드 보복은 예정된 수순이었다.

사드 배치 이후 양국의 패권다툼은 극에 달한 듯했다. 한반도에서 양국은 열심히 깽판을 부렸다. 정작 열심히 깽판부린 사람들은 멀쩡히 집에 돌아갔지만 깽판이 벌어진 술집의 주인은 쓸고 닦는다고 며칠간 장사를 쉬어야 했다. 그런데, 다음 달이 되니 깽판부린 사람들이 어깨동무를 하며 술집으로 들어왔다. 그들은 맥주 두 병과 적지도 많지도 않은 안주 하나를 시켰다. 도대체 저 사람들은 뭐하는 사람인가 사장은 어처구니가 없었다.

전략적 갈등관계, 배부른 놈들의 치졸한 전략

알고 보니 둘은 오랜 친구였다. 친구라는 표현이 그들에게 어울리는지는 의문이지만, 어쨌든 둘은 친구라고 한다. 한 명은 오래 전부터 돈이 많은 재력가이고, 한 명은 이제 자수성가한 사장님이다. 자세히 들어보니 재력가의 건물 제일 좋은 곳에서 사업가는 상대적으로 저렴하게 장사를 하고 있다고 한다. 또 사업가가 타박타박 내는 월세 덕분에 재력가도 적지 않은 이윤을 누리고 있다.

완벽한 비유는 아니지만 지금의 미국과 중국이 딱 그런 형세이다. 굳게 닫았던 문을 열고 세계경제무대에 뛰어든 중국은 당시 세계최강대국이었던 미국 덕분에 급속히 성장할 수 있었다. 중국은 미국이 만들어놓은 자유무역체제에서 '저임금'이라는 비교우위를 통해 세상 모든 물건을 만들어 냈다. 미국을 비롯한 선진국들은 이전보다 값싼 가격에 같은 물건을 살 수 있게 되었다. 중국과 미국 모두 만족스러운 장사였다. 당분간은 확실히 그랬다.

시간이 지나면서 문제가 발생했다. 경기 침체로 재력가의 쌓아둔 돈은 조금씩 줄어들기 시작했다. 과거에 붐비던 건물들도 이제는 조금씩 비어간다. 그러한 재력가가 기대할 수 있는 유일한 버팀목은 다름 아닌 중국이다. 하지만 어느 정도 덩치가 커진 그 사장도 예전과는 다르다. 확실히 과거보다는 더욱 으스댄다. 때로는 방을 빼겠다며 먼저 으름장을 놓기도 한다. 그러나 사실 다른 곳으로 갈 곳이 없다. 더 낮은 가격과 좋은 조건을 제시하는 건물주가 없기 때문이다.

결국 둘은 서로의 생존을 위해 필요불가결한 존재가 되었다. 2017년 6월을 기해 중국은 미국 채권을 1조1500억 달러를 보유함으로써 지난해 10월 한 달을 제외하고 8년 연속 최대 주주자리를 유지하고 있다. 만성적인 쌍둥이 적자(재정적자+무역적자)를 겪는 미국으로서는 달러와 자신들이 발행하는 채권을 충실히 구매해주는 중국이 미워도 미워할 수 없다. 중국 역시 자신들이 보유하고 있는 달러와 미국 채권의 가격이 급락하는 것을 원치 않는다. 이를 위해서는 미국의 국제적 신용과 위신이 지켜져야 한다. 서로가 자폭장치를 나눠 가진 셈이 된 것이다.

그런데 문제는 그 재력가는 체면을 중시하는 '선데이 크리스천'인데, 그 사업가는 소위 말하는 거대 깡패 조직이었다. 그래서 둘은 서로를 '싫어하는 체'하기로 했다. 그래야만 선데이 크리스천은 양심의 가책과 교우들로부터의 손가락질을 피할 수 있고, 사업가는 그들만의 방식으로 돈을 벌어들일 수 있기 때문이다. 하루아침에 양국의 수사가 달라진 것은 이상한 일이 아니다. 중국이 사드에 펄쩍 날뛴 이유는 결국 시황제의 집권을 위한 내부결속용이었고, 트럼프의 공격적인 언사와 트윗은 국제적인 비난을 피하기 위한 것이었다. 싸우는 척 하기 위해 집어던진 물건에 우리만 얻어맞은 것이다.

국가는 이 세상에서 유일하게 '이기심'을 미덕으로 인정받는 집단이다. 모든 국가는 자국의 이익을 위해서는 어떠한 수단과 방법을 가릴 필요가 없다. 한국은 작은 국가다. 자존심 상해도 거대한 미국과 중국을 어르고 달래야 한다. 앞으로도 거대한 두 국가는 사춘기 남학생처럼 휘두르지도 못할 주먹을 공중에 휘두를 것이다. 그럴 때 한국은 대강 말리는 척, 대강 편 들어주는 척 하면서 양쪽 모두에서 실리를 챙겨야 한다. 그것이 우리에게 허락된 유일한 미덕이다.

덧붙이는 글 | 글쓴이는 부산대학교 대학원에서 정치학을 공부하고 있습니다. 하나의 의견으로 받아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정치외교 #미중패권다툼#트럼프 #시진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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