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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켜볼수록 수상한 재판이 있다. 전 검찰총장의 20년 지기를 무고했다는 형사재판이다. 2회째 공판이 진행 중인 가운데 지난 기일에 변호인은 검찰 피의자 신문조서가 조작되었다는 의혹을 제기했다.

급기야 재판부는 '사법연수생도 쓰지 않을 전대미문의 판결'이라는 변호인의 표현에 난처한 표정을 지으며 "본인도 십 수 년째 판사를 하고 있는데 이런 표현은 거북하다"면서 자제를 명령했다.

전 검찰총장의 20년 지기인 사업가 박 모 씨를 무고했다고 형사재판을 받고 있는 김 모씨(여 58)와 민 모씨(49세)에 대한 형사 법정 모습이었다.

 중앙지방법원 자료사진
중앙지방법원 자료사진 ⓒ 추광규

피고인 측 변호사...."검찰 피의자 신문조서 조작됐다"

피고인 측의 변호사인 황종국 변호사는 지난 9월 14일 서울중앙지법 형사 5단독(성보기 판사)이 진행한 2차 공판기일에서 피의자의 서명을 위조하는 등으로 검찰 피의자 신문조서가 조작됐다며 문제를 제기했다.

황 변호사는 "민 씨에 대한 2017년 2월 15일자 제2회 피의자 신문조서의 첫 장을 보면 '검찰 서기보 장00'를 삭제하고 대신 '검찰주사 김00'이 기재돼 있다"면서 "검찰주사 김00은 피의자 신문에 참여한 적이 절대로 없으므로 이 기재는 불법 허위"라고 주장했다.

이어 "김 씨에 대한 신문 조서 역시 피의자 필체와 다른 서명이 기재돼 있었다"며 "검사가 혼자서 불법적인 조사를 진행하고 사후에 조서를 조작하다 보니 서명을 위조한 것 같다"고 주장했다.  

형사소송법에 따르면 검사가 피의자를 신문할 때에는 수사관 등이 참여해야 한다. 하지만 김 아무개 검사는 3차례 피의자 신문을 하면서 매번 혼자서 신문을 하고 사후에 문제가 될 것 같으니 조서를 조작했다는 것이다.

더 구체적으로는 검찰주사 김00을 참여하게 한 것처럼 피의자 신문조서를 작성하려다 보니 조서의 첫 장을 새로 바꾸어야 할 상황이어서 이를 바꾸면서 김 씨의 서명과 대답도 위조한 것이라는 취지의 주장이었다.

황 변호사의 이 같은 주장에 재판장은 "검찰 측은 적법한 참여를 입증하든지 철회하든지 선택하라"고 명령했다.

이에 대해 공판검사는 "개방된 공간에서 검사가 조사를 했다. 참여 계장이 왔다 갔다 했기 때문에 증거능력에는 문제가 없는 것 같다"고 철회를 거부하면서도 피의자들을 조사한 공판검사실 옆에 붙어 있는 자료창고의 벽이 밀폐돼 내부를 전혀 볼 수 없고 너무 좁아 수사관이 입회할 수 없다는 점은 인정했다.

 민홍규 전 국새단장과 이천공방
민홍규 전 국새단장과 이천공방 ⓒ 출처 : 세불 민홍규 후원회

전 검찰총장 20년지기 박 모씨 형사재판은?

김 모씨 등이 사업가 박모 씨를 허위의 사실로 처벌을 받게 할 목적으로 고소했다는 사건은 2010년경 발생한 국새위조 사건으로 구속된 민홍규(62) 전 4대 국새 제작단장과 관련해서다. 김 씨는 민 전 단장의 부인이다.

국새위조 논란은 그해 8월에 발생한 후, 민 전 단장은  9월 7일 구속되었다. 이어 같은 달 16일 검찰로 송치된 후 보름여 후인 10월 4일 기소된 후 다음해 1월 20일 1심 선고로 이어졌다.

2010년 8월경 사건이 발생하자 같은 달 말경 양재동에 있는 사업가 박 씨의 사무실에 민홍규 부부 지인 등 8명가량이 모여 변호사 선임 등에 관하여 의논했다. 증인 신문 조서 등을 살펴보면 이 자리에서 사업가 박 씨는 자신이 A변호사를 잘 안다고 하면서 선임할 수 있을지 알아보겠다고 말했다.

앞서 사업가 박 씨는 A변호사가 서울중앙지방검찰청 차장으로 근무할 당시 부부를 데리고 민 전 단장의 경기도 이천 공방을 방문하여 소개해 준후 서로 가끔 교류를 하였기 때문에 부인 김 씨 등은 사업가 박 씨는 물론 A변호사 또한 신뢰하고 있었다.

이어 김 씨 등은 민 전 단장이 9월 7일 구속되자 9월 15일 등 두 차례에 걸쳐 A변호사 사무실을 방문하여 상담을 하였다.

경영컨설턴트 민 모씨는 검찰 수사 등에서 당시 상황에 대해 자신이 사건 내용을 설명하자, A변호사는 "어, 말이 안 되는데, 언론이 왜 이렇게 나왔지. 당신들 말이 맞으면 무죄네"라고 말했다.

이어  "보통 대법관 출신이나 검찰총장 출신은 선임계를 내거나 도장을 찍으면 1억인데. 내가 사건을 맡더라도 선임계는 제출할 수 없다고 말했다"고 주장했다. A변호사 면담을 마친 후 사무실을 나와 김 씨가 돈 마련의 어려움을 말하자 사업가 박 씨는 "A변호사에게 다시 한 번 부탁해보겠다"고 하였다.

민 씨의 주장에 따르면 그런 후 하루, 이틀 뒤에 사업가 박 씨는 전화로 자신이 부탁하여 A변호사가 특별히 5천만 원에 해주기로 하였으니 5만원권 현금으로만 준비하라고 말했다.

조건도 말했다. 사업가 박 씨는 △영수증을 써 줄 수 없다 △ 선임계도 낼 수 없다 △A변호사를 만난 사실과 5천만원을 준 것을 기자들에게도 이야기하지 말라 △불구속 기소가 되도록 힘 써 준다고 하였다. 부인 김 씨는 이 같은 조건을 받아들인 후 2010년 9월 18일 민 씨와 동행해 사업가 박 씨의 사무실을 찾아가 주머니에 담은 현금 5천만원을 전달했다.

돈을 건네받은 사업가 박 씨는 "A변호사에게 잘 전달하겠다"하였다. 이어 얼마 안 있어 전화로 A변호사에게 돈을 잘 전달했다고 하였다. 이후 사업가 박 씨는 민 전 단장의 1심 재판이 진행 중인 가운데 민 씨에게 검찰 수사상황을 수시로 알려주었다. 

 경영 컨설턴트 민 모씨는 매일 매일 일정과 주요사항을 메모하는 습관이 있다. 민 씨는 당시에도 메모를 계속했었다. 이미지는 2010년 9월 25일자 업무수첩에 적은 메모다. 그는 수첩의 내용이 사업가 박씨로부터 전달 받은 검찰 수사내용이라고 주장했다.
경영 컨설턴트 민 모씨는 매일 매일 일정과 주요사항을 메모하는 습관이 있다. 민 씨는 당시에도 메모를 계속했었다. 이미지는 2010년 9월 25일자 업무수첩에 적은 메모다. 그는 수첩의 내용이 사업가 박씨로부터 전달 받은 검찰 수사내용이라고 주장했다. ⓒ 추광규

하지만 이 같은 노력에도 불구하고 민 전 단장은 1심에서 사기 및 무고가 유죄로 인정해 징역 2년6개월을 선고받았다. 2심은 사기미수 혐의도 유죄로 판단해 3년이 선고됐다. 형은 대법원에서 확정됐다.

민 전 단장은 만기출소한 후 부인 김 씨 등과 함께 출소인사를 겸해 2014년 10월경 A변호사 사무실을 찾아갔다. 변호사 선임계를 제출하지도 않았고 3년형을 선고 받기도 했지만 전화변론 등을 통해 도움을 받았을 것이라고 판단해 감사인사를 했던 것.

하지만 이들 부부의 감사인사에 A변호사의 말은 전혀 뜻밖이었다. A변호사는 자신은 아무런 일을 하지 않았다면서 스피커폰으로 사업가 박 씨와 통화를 시도한 후 그 대화내용을 모두가 듣게끔 했다.

A변호사는 사업가 박씨에게 "나한테 5000만원을 가져온 적이 있느냐"고 물었고 박씨는 "그런 적이 없다"고 말했다. 민 전 단장은 이 같은 말을 들은 후 사업가 박 씨에게 5000만원을 돌려받기 위해 노력했으나 여의치 않자 2015년 7월 사기와 변호사법 위반으로 고소했다.

사업가 박씨 5000만원 받았다 인정
검찰은 김 씨에게 자금 출처만 따져물어

김 씨의 고소사건 수사과정에서 사업가 박 씨는 돈을 받지 않았다는 주장을 한 번도 한 적이 없다. 그는 A변호사의 자문료 명목으로 돈을 받았다가 다음날 김 씨에게 되돌려 주었다고 주장했다.

즉 사건의 쟁점은 사업가 박 씨가 돈을 돌려주었다는 주장이 진실이었느냐는 여부였다. 주장이 상반되자 검찰에서 거짓말탐지기 검사까지 이루어졌다. 그 결과 박 씨는 거짓 반응이 이와 반해 김 씨는 진실 반응이 나왔다.

검찰은 이와 함께 사업가 박 씨가 돈을 돌려주었다는 증거를 제출하지 못하자 진술이 허위라고 보고 2015년 12월 사기죄로 불구속 기소했다. 사업가 박 씨의 형사재판은 1년여 동안 재판이 진행된 후 2016년 12월 무죄가 선고됐다.

문제는 무죄가 선고된 과정을 살펴보면 통상적인 형사사건과는 검찰의 태도가 너무나 달랐다는 점이다. 실제 검찰은 결심공판에서 '재판장님께 적의판단을 맡긴다'면서 구형을 포기했는가 하면 무죄가 나오자 기일이 완성되기도 전에 항소를 포기했다.

이뿐 아니었다. 선고가 내려지기도 전에 김 씨에 대한 무고죄 수사를 사실상 시작했다.

사업가 박 씨에 대한 사기사건의 공판을 맡았던 김 아무개 검사는 심리 종결을 앞둔 2016년 11월 8일 참고인 진술조서를 작성했다.

김 검사는 당시 조사에서 박 씨의 변명을 정리한 후 "그럼 진술인은 이 사건이 고소인의 무고라고 주장하는 것인가요"라고 물었다. 이어 "진술인의 주장대로라면 진술인은 굉장히 억울할 것으로 보이는데 어떤가요?"라고 물었다.

박 씨는 "그렇습니다. 이 사건에서 제대로 결말을 내주시면 무고로 고소를 할 생각도 있습니다"고 답했다.

김 검사는 박 씨에 대한 참고인 조사에 이어 3주후인 11월 24일에는 박 씨의 부인 손 아무개를 불러서 참고인 진술조서를 작성했다.

김 검사는 손 씨에게도 "박00과 진술인의 주장에 의하면 민홍규 내외에게 엄청난 호의를 베푼 것임에도 불구하고 이 사건 고소를 한 이유는 무엇이라고 생각하는가요?", "즉, 민홍규 내외가 계속적인 경제적 지원을 받고자 했는데 거절당하여 고소를 했다는 것인가요"라고 질문했다.

여기에 더해 김 검사는 검찰서기에게 2016년 11월 30일자로 '민00 증언 관련 검토보고'를 작성하게 했다. 검찰서기는 "민00는 핵심적인 사항인 18일에 김00가 전달하는 돈을 직접 보았느냐는 부분에 대해 진술이 계속 번복되어 신빙하기 어려운 것으로 보임"이라는 기록을 남겼다.

문제는 이 같은 수사가 전혀 불필요한 시점이었다는 점이다. 당시 1심 재판이 진행 중인 가운데 사업가 박 씨가 돈을 받았다고 일관해서 시인하고 있었기에 김 씨가 돈을 전달했는지 여부에 대한 수사는 불필요했기 때문이다.

공소를 유지하고 유죄 판결을 이끌어 내야하는 공판검사가 변론이 종결되기도 전에 무죄를 예단하고 무고죄 수사를 사실상 시작하고 구형까지 포기한 것은 매우 이례적이었다.

사업가 박 씨의 '변호사법 위반'혐의... 검찰은 책임 묻지도 따지지도 않았다

사업가 박 씨에 대한 검찰 수사에서 변호사법 위반 혐의에 대해서는 묻지도 따지지도 않았다는 점은 특히 석연치 않다.

김 씨는 사업가 박 씨를 변호사법위반죄와 사기죄의 경합범으로 고소하였는데, 검사는 사기죄로만 기소하고 변호사법위반죄에 대하여는 기소도 하지 않고 불기소처분도 하지 않는 이상한 수사종결을 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박 씨가 돈을 받은 행위는 몇 가지 사실에서 변호사법위반 혐의가 짙어 진다.

당시 돈을 건네받은 경위에 대해 사업가 박씨는 "고소인(김 씨)이 저에게 A변호사 얘기를 하길래 그럼 내가 A변호사에게 물어 본다고 얘기를 하고 만나게 해 준 사실은 있다"고 진술하였다.

이어 "(고소인의) 사정을 듣고 A변호사를 찾아가 부탁을 하였더니 '내가 변호사로 선임될 수는 없고 자문을 해준다'고 했다. '자문을 해주면 자문료를 줄 수 있냐'고 물어보아 자문료는 준다고 했다"면서 "돌아와 고소인에게 정황설명을 해주었다. 이러한 자문을 받고 고소인이 나중에 자문료 명목으로 돈인지는 모르지만 뭉치를 갖고 와 이것을 A변호사에게 전해 달라고 놓고 갔다"고 진술했다.

사업가 박 씨는 계속해서 "고소인이 보자기를 놓고 갔기 때문에 제가 위 보자기를 A변호사에게 전달을 해준다고 얘기는 했다", "A변호사에게 전달해 달라고 하는 것이니까 자문료를 갖고 온 것으로 생각을 했다"고 진술했다.

액수에 대해서 물어보았느냐는 질문에는 "물어 볼 필요가 없어 물어 보지 않았다"면서도 "저는 고소인이 주는 주머니에 돈이 들었다는 것을 직감적으로 알았다. 저는 주머니를 받으면서 '알았다, A변호사에게 전해주겠다'고 했다"고 진술하였다.

변호사법 제109조 제1호는 변호사가 아니면서 금품, 향응 또는 그 밖의 이익을 받거나 받을 것을 약속하고 또는 제3자에게 이를 공여하게 하거나 공여하게 할 것을 약속하고 소송 사건, 수사 사건 등에 관하여 법률상담 또는 법률관계 문서 작성, 그 밖의 법률사무를 취급하거나 이러한 행위를 알선한 자는 7년 이하의 징역 또는 5천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그럼에도 수사 검사는 사업가 박 씨를 사기죄로 기소하면서 공소사실에 "그런데 사실은 피고인은 피해자의 남편을 위해 A00 변호사를 선임한 사실이 없었고, A00 변호사에게 수임료를 전달할 의사나 능력도 없었다"고 기소했다.

황종국 변호사는 "수사 검사가 변호사법 위반의 고소사실에 대하여 아무런 처분도 하지 않고 묵살한 것이나, 아무 근거자료도 없이 박00이 A00 변호사에게 수임료를 전달할 의사나 능력이 없었다고 하며 사기죄로만 기소한 것은 박00 사건이 전 검찰총장에게 불똥이 튀는 것을 차단하기 위한 조치라고 보는 것 외에는 달리 합리적으로 이해할 길이 없다"고 주장했다.

이어 "불과 5000만원 규모의 사기사건에 검찰이 이렇게 무리수를 두는 것은 그렇게 해서라도 은폐해야 할 무언가가 있기 때문 아니었겠느냐"며 "모종의 손길이 뒤에서 작용하지 않으면 설명하기 힘든 일이 벌어진 것"이라고 주장했다. 

한편 김 모씨와 민 모씨에 대한 무고사건 형사재판 3차 공판은 10월 24일 오후 3시 서울중앙지법 형사지법 503호에서 속개된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신문고뉴스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임채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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