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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국성폭력상담소협의회가 "성폭력가해자의 일방적인 후원/기부는 감경요인에서 배제되어야 한다"는 내용으로 기자회견을 열었다.
 전국성폭력상담소협의회가 "성폭력가해자의 일방적인 후원/기부는 감경요인에서 배제되어야 한다"는 내용으로 기자회견을 열었다.
ⓒ 박정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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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성폭력상담소에 정기후원금을 납부하면서 다시는 이와 같은 잘못을 반복하지 않겠다고 다짐하는 점(...) 300만 원 벌금형의 선고를 유예하기로 한다."(2015. 6.18 선고 2015노 95 판결)

지하철에서 한 여성의 치마 속을 촬영한 몰카 범죄자가 '성폭력 피해 단체'에 후원을 했다는 것이 반성의 근거가 돼 감형을 받는 사례가 있었다(1심 벌금 300만 원 → 2심 선고유예). 피고인은 재판부에 온라인 후원 송금 내역서를 복사해 제출한 것으로 추측된다.

성폭력 가해자가 감형을 목적으로 성폭력 피해 단체에 후원금을 내는 경우가 늘어나고 있다. 심지어 이런 후원과 기부 행위를 법원에서 '가해자의 반성'으로 판단해, '형량 감경 요인'이 되는 사례도 발생했다. 이에 대해 성폭력 상담소 및 여성단체가 반발하고 나섰다.

전국성폭력상담소협의회 상담 활동가들은 14일 오전 11일 서울중앙지방법원 앞에서 "일방적인 후원과 기부는 반성이 아니며, 감경요인도 될 수 없다"는 내용의 기자회견을 열었다.

"단체 후원하는 게 성범죄 양형 감경요소? 이건 아니다"

이들은 기자회견문을 통해 "현재 성범죄 양형기준의 감경요소 중 '진지한 반성'이라는 부분이 있다"라며 "단체에 후원해 반성했다는 것을 보여주는 게 가해자들이 찾은 새로운 길"이라고 주장했다. 또한 "이런 후원은 진정한 반성이 아니다, 이런 경로로 피고인들이 감형받는 것을 반대한다"라고 밝혔다. 성폭력상담소 조사 결과, 성폭력 가해자 측이 기부를 제안하거나 후원금이 납부된 것을 확인한 사례는 2년 7개월 동안 7개 기관에서 총 101건에 달했다.

이미경 한국성폭력상담소 소장은 "법원이 일방적인 후원·기부의 실태와 문제점을 파악해 이를 형량 감경요소에서 완전히 배제해야 한다"라고 밝혔다. 이어 법무법인이 성범죄를 '무죄, 불기소, 집행유예로 이끌어준다'고 홍보하며, 일방적인 후원·기부를 통해 감형을 받는 것을 독려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김미순 전국성폭력상담소협의회 상임대표는 성폭력 가해자들의 기부형태에 대해 발표했다. 김 대표는 ▲ 기부 즉시 기부영수증이 발급되는지 질의하는 경우가 많았고 ▲ 재판이 결정 되는 대로 후원을 중지하거나 ▲ 가족이나 변호인이 상담소에 '영수증 발급'을 문의하거나 ▲ 법무법인이 가해자 명의로 기부하는 경우도 있었다고 밝혔다.

"후원했는데 감경 안 됐으니 돈 돌려달라"는 사례도 있어

심지어 '후원했는데도 왜 감경이 되지 않느냐'며 화를 내거나 '후원한 돈을 돌려달라'는 경우도 있었다. 대표적인 사례로는 한국여성민우회에 2010년 무명으로 후원금 900만 원이 들어온 일이다. 후원이 들어온 지 몇 년 뒤에 "그 돈은 아들이 성폭력범죄로 재판을 받아서 입금한 것"이라며 한 남성의 전화가 걸려왔고, 그는 "변호사 조언을 받아 입금했는데, 생각만큼 감형이 되지 않았으니 후원금 절반을 돌려달라"라고 말했다고 한다.

정하경주 한국여성민우회 활동가는 "반성했다, 가족이 국가유공자다, 생계부양자다, 앞날이 창창한 의대생이다 같은 이유로 감형돼 집행유예되는 사례들이 부지기수"라며 "일부 변호사들이 성폭력 범죄 감형받는 팁으로 성폭력상담소에 후원하는 것을 안내하고, 이런 책까지 내고 있다"라고 비판했다.

이어 "성폭력 피해자 지원에 할애해야 할 시간이 성폭력 범죄 감형 목적으로 기부하는 행위를 걸러내는 데 사용되고 있다"라고 지적하면서 "법원이 '감형 목적 기부는 감형 사유가 아니며 가중 사유가 될 수 있다'는 점을 피력해야 한다"라고 주장했다.

기자회견은 '재판부의 귀'라는 퍼포먼스로 마무리됐다. 전국성폭력상담소협의회는 후원·기부를 비롯한 가해자 위주의 감경요인에 대한 비판과 기자회견 내용을 담은 의견서를 대법원 법원행정처에 제출했다.

'재판부의 귀' 퍼포먼스
 '재판부의 귀' 퍼포먼스
ⓒ 박정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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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폭력 피해자 국선변호사를 맡고 있는 정수경 변호사는 <오마이뉴스>와의 질의응답에서 "형사 재판에서 원칙적으로 피고인 측은 피해자의 의견서 등을 볼 수 있는 반면, 피해자 측은 판사가 특별히 허락하지 않는 이상 피고인이 어떻게 변명하는지 알 수 없다"라며 피고인이 어떤 감경사유를 내세우는지 재판과정에서 알기 힘들다고 밝혔다.

정 변호사는 "재판부가 통상적·의례적으로 (후원·기부를) 감경 사유로 꼽는 것 같다"라고 지적했다. 이어 "이 판결문을 피해자가 봤을 때 어떤 감정을 느꼈을지 고려해야 한다"라면서 재판부가 피해자 측에 더 귀를 기울여야 한다고 강조했다.


태그:#성폭력, #성폭력감경사유, #후원기부감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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