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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주호의 산수에 꽂히다

김구산 선생(오른쪽) 초대
 김구산 선생(오른쪽) 초대
ⓒ 문은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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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리 전시회까지 줄기차게 앞만 보고 달려온 문은희는 잠시 자신을 되돌아본다. 당시 그녀는 화곡동에 화실을 마련해 살고 있었다. 열정과 예술혼을 불사르며 끝없이 실을 뽑아낸 누에처럼 잠시 변신과 휴식이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백 장을 그려 한 장을 선택하는 작업 방식에 대한 회의가 들기도 했다. 수묵 선 하나를 그리는 것에 대한 두려움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두려움 그것은 새로운 시도에 대한 장애로 작용했다.

문은희는 휴식과 충전을 위해 종교와 철학에 대한 공부를 다시 시작했다. 동양화를 한다는 화가가 동양철학에 대한 이해가 너무 부족했기 때문이다. 그때 그녀에게 힘이 되어준 사람이 불교학자 김구산이다. 비교종교학연구소 대표로 있던 그가 동국대학교에서 불교철학 강의를 하고 있었고, 그 강의가 문은희에게 큰 공부가 되고 위안이 되었다. 김구산 강의는 서양의 종교와 동양의 종교를 비교하면서 쉽고 명쾌하게 설명하는 비교종교학이었다.

충주 화암리 아틀리에
 충주 화암리 아틀리에
ⓒ 문은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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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의의 핵심은 정체성 확립과 자연에 대한 이해 그리고 도덕성 회복이었다. 정체성 확립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나의 본성을 알고 역사를 이해하는 것이다. 더 나가서는 언어를 지키는 것이다. 인간은 자연의 산물이기 때문에, 자연에 순응하고 자연과 조화를 이루며 살아야 한다. 하늘이 아버지고 땅이 어머니다. 도덕성 회복을 인간성 회복으로 보고 있다. 그리고 무상, 윤회, 공, 해탈 등에 대해서도 배웠다.

그러한 가치관 때문인지 김구산 선생이 충주호변 화암리 마을에 자리를 잡았다. 문은희는 김구산 선생의 강의를 듣기 위해 화암리를 찾아왔고, 불교 강의와 충주호의 자연풍경(山水)에 빠져 1994년 화암리에 아틀리에를 지어 이사하게 되었다. 자연과 대화를 나누고 음악을 듣고 강의를 듣는 것이 그렇게 재미있었다고 한다. 그리고 불교적인 주제를 예술로 표현해보면 어떨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누드 콜라주를 시작하다

누드 콜라주 '무제'(1996)
 누드 콜라주 '무제'(1996)
ⓒ 문은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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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에는 도자기에 누드 그림을 잘라 붙이는 실험을 했다. 그런데 누드가 한 눈에 들어오지 않는 문제가 있었다. 누드가 한 눈에 들어오기 위해서는 평면에 잘라 붙여야 했다. 그리고 잘라 붙이다 보니 군상이 될 수 밖에 없었다. 군상의 표현은 연기, 윤회라는 불교사상과도 맥이 닿는 것 같았다. 이것이 있어 저것이 있고, 세상사 돌고 도는 것이라는 사상 말이다. 더 나가서는 무상과 공(空)을 표현하는 것 같기도 했다. 그때부터 문은희는 누드 콜라주에 몰두한다.

누드 콜라주에서는 필력보다는 형태와 구성이 중요했다. 누드 콜라주는 기존의 누드 그림에 또 다른 누드 그림을 잘라 붙이면서 구도를 잡아가는 작업이다. 그러므로 순간적인 집중보다는 지속적인 생각과 작업이 필요했다. 깊이 생각하면서 문득 문득 떠오르는 영감을 콜라주에 반영하는 것이다. 콜라주의 기본은 덧붙이기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서 덧붙여 만들어지는 공간이 중요함을 알게 되었다. 그게 바로 동양화에서 말하는 여백이다.

누드 콜라주 '회귀-넋'(2000)
 누드 콜라주 '회귀-넋'(2000)
ⓒ 문은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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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것은 또한 불교의 공(空)사상과도 통하는 것이다. 그 공은 색(色)이다. 색은 무상과 허무를 뜻하기도 한다. 초창기 누드 콜라주는 뒤엉킴이다. 이것을 김구산 선생은 불교적으로 '연기(緣起)의 파노라마'라고 멋지게 표현했다. 다른 말로 하면 관계고 인연이고 윤회다.

"문화백의 근작인 콜라주 기법의 누드회화에는 독특한 구조가 나타난다. 여기에서는 누드의 형태가 개별적으로 독립되어 있지 않고 서로 고리를 이루듯이 연결되어 있다. 어느 형태도 중심을 이루거나 대표적인 것이 없다. 그러면서도 이것은 저것에 의존하고, 저것은 이것에 의존하여 생명의 교향악을 이루고 있다. 이것은 그녀가 평소 실천해온 불교적 명상으로부터 이끌어낸 연기의 파노라마다. 모든 존재는 상호관계에 의해서만 그 존재성을 지닌다. 그러므로 무상한 것이고, 그 바탕은 아무런 성질도 형상도 지니지 않고 오직 연기의 그물로 몸을 싸고 있는 공인 것이다. 이들 근작에는 확실히 윤회의 고리(環)가 엿보인다."

그래선지 문은희는 이들 누드 콜라주에 무제, 회귀, 인연, 윤회 등의 제목을 붙였다. 그것은 불교공부와 그를 통한 성찰과 사유(思惟)의 결과다. 그런데 특이한 점은 정적인 산수로 돌아와 살면서 동적인 인간군상을 빽빽하게 그려냈다는 사실이다. 형상을 화면에 가득 채움으로서 무상과 공을 표현하려는 역설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미술평론가 김진하의 말을 빌리면 '형식과 내용의 반어적인 패러독스'다.   

1994년 7월 황의철 박사 세상을 떠나다

충주 아틀리에 작업을 도운 황의철 박사(오른쪽)
 충주 아틀리에 작업을 도운 황의철 박사(오른쪽)
ⓒ 문은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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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4년은 문은희가 충주에 새 아틀리에를 마련한 해다. 수묵 누드의 새로운 장르인 콜라주도 시도하면서 또 다른 예술실험을 시작한 중요한 해다. 그리고 1993년 한양대학교에서 정년퇴직한 남편 황의철 교수가 충주로 내려온 해이다. 오래간만에 모든 게 안정되는 듯한 느낌이었다. 공자의 말처럼 이순(耳順)이 넘어 천지만물의 이치를 이해하고 통달하게 된 걸까?

인생과 예술의 하이라이트 즉 절정기, 황금기에 이르게 된 걸까? 그러나 예술인에게는 그러한 시간이 오래 지속되지 않는 경향이 있나 보다. 황의철 박사가 교통사고로 세상을 떠난 것이다. 무더위가 한창인 7월의 일이다. 문은희에게 황박사의 죽음은 무상과 공을 절감케 하는 일대 사건이었다. 평생 자신의 예술을 알아주지 못한 남편에 대한 원망도 이제 마지막이었다. 

황의철 교수 정년퇴직 감사패
 황의철 교수 정년퇴직 감사패
ⓒ 이상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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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의철 박사는 공업규격 표준화와 품질관리에 평생을 바친 사람이다. 우리나라는 1961년 9월 30일 공업규격 표준화법이 공포되어 KS표시 허가제가 시행되었다. 그러나 1969년까지 KS표시 업체수는 170여 개, 제정 규격수는 1700여 개에 불과했다고 한다. 황 교수는 1969년 "표준화와 품질관리에 관한 공장 실태조사"를 통해 공업규격 표준화를 위한 정부의 강력한 행정지도를 건의한 바 있다.

그리고 생산자에게 표준화는 경영합리화의 기초라는 사실도 알렸다. 더 나가 대량생산을 가능케 해 생산비를 절감하는 효과를 가져다준다. 그러므로 제품의 원가절감에도 기여한다. 표준화는 또한 소비자에게 품질보증이 되어 선택과 구매의 기준으로 작용할 수 있다. 황 교수는 공업규격 표준화가 정부, 생산자, 소비자 모두에게 필요하고 도움이 되는 일임을 강조했다.

황 교수는 능률협회와 품질관리학회를 만들어 이러한 제도를 학술적으로 지원했다. 더 나가 현장을 찾아다니며 품질관리의 필요성을 역설하고 현장지도를 했다. 70년대에는 기업경영 진단팀을 만들어 원가절감운동을 지도했다. 또 품질관리대회의 심사를 맡아 생산성 제고에 기여했다. 황의철 교수가 이때 한 교육과 지도 그리고 평가는 '표준화와 품질관리를 통한 생산성 향상과 원가절감'이었다.

이런 일로 인해 황의철 교수는 문은희 화백의 예술에 관심을 보이지 못했던 것이다. 그 때문에 문화백은 '자신은 평생 남편의 등만 쳐다보고 살았다'고 불만스러워 한다. 그렇지만 남편의 죽음과 함께 그런 불만과 원망을 떠나보냈다고 한다. 문화백은 자연과 대화하고 예술을 벗하며 즐겁게 살기로 마음먹는다.  

누드 콜라주가 더 좋다고 말하는 사람들도 있다

무제(1996)
 무제(1996)
ⓒ 이상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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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 김진하가 말한 문은희 누드 콜라주의 패러독스는 어떤 방향으로 나아갔을까? 쉽게 말하면 충만 속에 비움을 추구하는 방향으로 나간다. 그 비움은 불교에서 말하는 공(空)이다. 그 비움이 콜라주의 내용을 철학적으로 충실하게 만들어간다. 즉 던져주는 메시지가 분명해진다는 뜻이다. 수묵 누드에서 내면의 감정과 고뇌를 표현했다면, 누드 콜라주에서는 내면 깊은 곳에 있는 생각과 사상을 표현했다고 볼 수 있다.

그러한 메시지를 전해주는 그림의 기교와 형식은 어떨까? '연기의 파노라마'와 '윤회의 고리'라는 종교철학이 구체화되어 나타남을 알 수 있다. 처음에는 선과 공간으로 이루어진 인간군상이 뒤엉켜 있다. 그리고 그 인간들이 숨어 있다. 그냥 몸짓으로 무언가를 말하는 것 같다. 그러므로 절규나 아우성 같은 정확한 메시지가 잘 드러나지 않는다.
회귀-무아(2000)
 회귀-무아(2000)
ⓒ 문은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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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무아'라는 제목이 붙은 2,000년 작품은 고뇌하는 한 인간이 주인공으로 나타난다. 그는 분리된 공간의 가운데 앉아 고개를 숙이고 있다. 그 주변에는 역시 함께 고뇌하는 인간들이 그들의 사상과 감정을 표현한다. 이처럼 시간이 지나면서 공간 속에 숨어있던 인물의 모습이 드러난다. 그리고 그들은 원을 그리거나 어떤 한 축을 중심으로 회전한다. 윤회, 연기, 고리라는 말이 여기서 나온 것이다.

하나 또는 여러 여인이 다른 포즈를 취하며 원을 형성해 가는 작품은 연기와 윤회를 얘기한다고 말할 수 있다. 황금빛 고리를 형성해 가며 돌아가는 작품이다. 제목을 연기 또는 윤회로 붙였으면 좋겠는데, 문은희는 '무제(Untitled)'라는 제목을 택했다. 이 그림은 마티스의 대표작 춤과 비교할 수 있는 누드 콜라주의 대작이다. 그것은 그림 속 누드의 생동감이 가장 뛰어나기 때문이다. 음악에 맞춰 춤을 추는 듯한 인간들의 모습이다. 그러므로 고뇌가 아닌 기쁨이 드러난다.

무제(2000년대)
 무제(2000년대)
ⓒ 문은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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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티스의 '춤'
 마티스의 '춤'
ⓒ 이상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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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처럼 문은희의 누드 콜라주는 추상성 속에서 구상성을, 군집성에서 독자성을 강조하는 방향으로 나가게 된다. 일부 콜라주에서는 서너 명의 여인들이 몽환적인 모습으로 등장한다. 이들에서는 약간의 에로티시즘도 나타난다. 특별한 누드 콜라주로, 한 여인이 화면의 3/4을 차지하는 작품도 있다. 이 여인은 무릎을 꿇고 고개를 떨군 채 슬픔과 고뇌를 삼키고 있는 모습이다. 이런 작품에서는 감정표현이 두드러진다.

이게 바로 문은희 화백의 누드 콜라주에 강하게 드러나는 감정이고 사상이고 메시지다. 문은희 화백은 지금도 누드 콜라주 작업을 하고 있다. 이제는 더해간다는 생각보다는 덜어낸다는 생각으로 작업을 한다고 한다. 그것은 비워간다는 의미도 되고, 완성의 경지에 이른 다음 내려간다는 의미도 된다. 그것은 그녀가 추구해온 비움의 미학, 공(空)사상과도 일맥상통한다. 그 때문인지 수묵 누드보다 누드 콜라주를 더 좋아하는 사람들도 있다.


태그:#화암화실, #누드 콜라주, #김구산 선생, #연기의 파노라마, #형식과 내용의 반어적인 패러독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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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심분야는 문화입니다. 유럽의 문화와 예술, 국내외 여행기, 우리의 전통문화 등 기사를 올리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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