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 유문철

ⓒ 유문철

장마가 끝났는데 비가 자꾸 내린다. 빗길을 달려 세종시에 간다. 제천시 농민회장님이 운전기사님이고, 직전 제천시 농민회장님이자 전농 충북도연맹 부의장님이 조수이고, 단양군 농민회장인 난 뒷좌석 오른쪽 회장석에 앉아서 간다. 삼성 이건희도 부럽지 않고, 김영록 농식품부 장관도 부럽지 않고, 문재인 대통령도 부럽지 않다.

호사를 누리며 세종시에 가는 이유는 전혀 호사스럽지 않다. 우리 주식인 쌀 농사가 망하다 망하다 이제는 쌀값이 너무 떨어져 수매가로 준 돈을 정부에서 도로 토해놓으라고 농민들을 닥달하고 있다. 그만 좀 닥달하라고 항의하러 세종청사에 가는 거다.

이른바 공공비축미 우선지급금 환수 조치. 말이 길고 어려워 우리 농민들은 비록 수매제도는 없어졌어도 벼 수매가 환수 조치라고 부른다. 산지 쌀값이 12만 원대로 떨어져 18만 원대로 예상하고 농민들에게 지급한 돈의 차액을 내놓으라고 문재인 정부가 김영록 장관을 앞세워 농민들을 을러대고 있다.

박근혜는 18대 대선 때 쌀값을 21만 원으로 유지하겠다는 공약을 내세워 농민들 표를 얻었다. 그리고는 밥쌀까지 수입하며 12만 원대로 폭락시켰다. 이에 항의하며 공약 이행하라던 백남기 농민을 물대포로 쏘아 죽이고는 사인까지 병사로 조작하다 결국 촛불혁명에 쫓겨났다.

쌀값 폭락의 역사는 유구하지만 노무현 정부 때 한미 FTA 체결 선결조건으로 쌀 의무수입량을 20만톤에서 41만톤으로 늘린 검은 머리 미국인 김현종의 활약이 직격타였다. 2005년 이에 항의하던 홍덕표, 전용철 농민이 경찰의 방패에 머리를 찍혀 살해되었다.

농민의 철천지 원수인 검은 머리 미국인 김현종을 문재인 대통령은 또 다시 통상교섭본부장에 앉혔다. 벼 수매가 환수 중단에는 일언반구도 없다. 대선 전 "농민은 식량주권 지키는 공직자"라던 문재인 대통령은 김현종 임명을 통해 개방적 통상국가 정책을 밀어붙일 태세다. 이는 지금까지처럼 내수보다 수출, 중소기업보다 재벌, 농업보다 수출제조업을 우선하겠다는 소리다.

이에 농민들이 세종청사로, 청와대로 가서 1인시위를 하는 거다. 이제는 농업을 더 이상 희생시키지 말라고, 수출보다 내수를 중시하라고, 재벌보다 중소기업과 소상공인을 우대하라고. 벼 수매가 환수 거부 투쟁은 우리 모두 더불어 살자는 싸움이다. 농민만 살자는 직업 이기주의가 아니다. 박근혜를 쫓아내는데 앞장선 전봉준투쟁단의 척양척왜 보국안민의 현재적 표현이다.

세종시 농식품부 정문에서 벼 수매가 환수 철회 1인 시위를 하며 김영록 농식품부 장관 좀 볼까 했더니 정문 수위 말로는 세종시에는 거의 오지 않는단다. 점심시간에 직원들이 식당 다녀오느라 정문을 많이 드나들었다. 하나 같이 말쑥하다. 농민이 있어야 농식품부도 있는건데 허름한 농민이 시위하는데 거의 눈길도 주지 않고 미안한 표정 짓는 이 하나 없다. 밥 먹고 커피 손에 들고 쪽쪽 빨며 종종거리며 건물로 들어간다.

이들을 물끄러미 쳐다보다가 함께 시위를 하던 황해문 충북도연맹 부의장께 물었다.

"저 사람들 중 농사 지어본 사람이 하나라도 있을까요?"
"개뿔, 농사의 농자나 알겄어?"


아스팔트 농사 좀 짓지 않았으면 좋겠는데 문재인 정부 들어 첫 아스팔트 농사다. 할 일 많은 문재인 정부 하는 걸 차분히 기다리지 않고 성급하게 보채고 생떼 쓰는 걸까?

농민들 신뢰를 얻지 못하는 김영록 장관 임명, 농민의 원수인 김현종 통상교섭본부장 재임명, 100대 국정과제에 농민의 요구사항과는 정반대의 농업정책 발표, 백남기 농민 사건 처리 지지부진. 어느 것 하나 기대에 미치는 것이 없다. 그래도 실망과 분노를 누르고 차분히 1인 시위를 한다.

제발 농민의 목소리에 귀기울여라. 문재인 대통령은 지난해 9월 제천을 방문했을 때 농민들에게 이렇게 말했다.

"농민은 식량주권 지키는 공직자입니다."

그런데 공직자 대접은 고사하고 어째 여전히 비국민 취급인가? 추적추적 내리는 빗길을 되밟아 단양으로 돌아간다. 빗물이 눈물이다.

▶ 해당 기사는 모바일 앱 모이(moi) 에서 작성되었습니다.
모이(moi)란? 일상의 이야기를 쉽게 기사화 할 수 있는 SNS 입니다.
더 많은 모이 보러가기


#모이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충북 단양에서 유기농 농사를 짓고 있는 단양한결농원 농민이자 한결이를 키우고 있는 아이 아빠입니다. 농사와 아이 키우기를 늘 한결같이 하고 있어요. 시골 작은학교와 시골마을 살리기, 생명농업, 생태운동을 하고 있습니다.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