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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선할 게 너무 많다."

마필관리사 양정찬 민주노총 전국공공운수노조 부산경남경마공원지부장이 2일 한 말이다. 두 달 사이 두 명의 마필관리사가 스스로 목숨을 끊은 가운데, 그는 참담한 심정을 이같이 나타냈다.

한국마사회 부산경남경마공원(렛츠런파크)에서 일했던 마필관리사 박경근(38)씨는 지난 5월 27일 마굿간 주변에서, 이현준(36)씨는 1일 진해에서 각각 죽은 채 발견되었다.

그것도 새 정부가 들어선 지 석 달여만에 같은 일터에서 2명의 비정규직이 스스로 목숨을 끊은 것이다. 이보다 훨씬 더 2011년 11월에는 박용석 관리사가 마사회의 폐단을 부르짖으며 자결하기도 했다.

이런 가운데 마필관리사가 어떤 직업이며, 근무 형태가 어땠는지 등에 대한 관심이 높다.

한국마사회 부산경남경마공원 고 박경근 마필관리사의 사망과 관련해, 민주노총 전국공공운수노동조합은 3일 오후 부산경남경마공원 앞에서 집회를 열었다.
 한국마사회 부산경남경마공원 고 박경근 마필관리사의 사망과 관련해, 민주노총 전국공공운수노동조합은 3일 오후 부산경남경마공원 앞에서 집회를 열었다.
ⓒ 윤성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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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필관리사 고용 구조와 근무 형태는?

마필관리사는 재하청 단계다. 한국마사회→마주(개인)→기수→조교사(협회)→마필관리사의 구조다. 마사회는 1993년까지 마필관리사를 직접 고용했지만, 경쟁체제 도입 등의 명분으로 고용 방식을 바꾸었다.

마사회는 '경쟁체제 도입을 통한 경주의 질 향상'과 '경마의 공정성 제고', '마필 생산 촉진 도모', '경마의 대중화' 등의 이유로 개인마주제로 전환했다.

마필관리사는 조교사협회(서울경마장) 혹은 조교사 개인(부산경남경마장)과 고용관계를 맺고, 조교사들의 지휘를 받는다. 마필관리사는 마필의 주행검사와 구사관리, 훈련 등을 직접 담당한다.

그들은 마방 청소에서부터 사양 관리, 순치조교, 발주조교, 주행검사, 경주전 훈련까지 거미줄처럼 엉킨 여러 분야의 업무를 동시에 수행한다. 마필관리사는 말을 24시간 관리해야 할 정도다.

근무시간은 조교사의 조 운영방침에 따라 차이가 있지만, 통상 경마가 없는 날은 오전 5시부터 오후 4시, 경마일은 오전 5시부터 오후 7시까지이며, 여름철 야간경마가 있는 날이면 오후 10시까지 연장된다.

양정찬 지부장은 "관리사들은 잠을 자다가도 마굿간에서 이상스러운 징후가 느껴지면 급히 나가서 돌발상황에 대처하는 등 일상 업무로 인간적인 권리를 누리지 못한다"며 "그러다가 별이 반짝이는 새벽 4시경 일어나 경주마 관리와 훈련을 준비하기도 한다"고 말했다.

조교사들은 마주들로부터 말을 위탁받고, 그 숫자가 30마리 안팎이며, 관리사 8~10명이 고용되는 것이다. 부산경남경마공원에는 말 900여마리가 있고, 관리사는 260명 정도다. 부산경남경마공원에는 33개조로 구성되어 있다.

"2011년 '근로조건 실태 보고서' 이후 개선 없어"

근무 환경은 매우 열악하다. 삼일노무법인이 2011년 낸 <부산경남경마장 마필관리사 근로조건 실태조사 보고서>를 보면, 그 실태가 구체적으로 드러나 있다. 공공운수노조는 "보고서가 나온 지 6년이 지났지만 크게 개선되지 않았다"고 했다.

관리사의 산재율은 매우 높다. 당시 관리사 산재율은 18.2%였고, 2008~2010년 관리사의 평균 재해율은 13.5%였다. 이는 당시 전국 산재 재해율 평균(0.7%)에 무려 26배 내지 19.3배나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말 접촉 업무는 조교사, 관리사, 기수, 장제사, 수의사가 하는데, 그 중에 산재 발생률이 가장 높은 직종은 관리사다. 다른 사람들은 한 가지 업무에 집중되지만, 관리사는 말을 24시간 관리하기 때문이다.

공공운수노조는 "마방 청소부터 훈련까지 거미줄처럼 엉킨 여러 분야의 업무를 동시에 수행하기 때문에 위험에 대한 노출 빈도가 높을 수밖에 없다"고 했다.

관리사는 낙마와 말 접촉작업 중 발생하는 사고가 거의 대부분이다. 관리사들은 다른 직종에 비해 퇴행성질환이 상대적으로 빨리 나타나는 것으로 조사되었다.

마필관리사의 근속년수도 길지 않다. 당시 조사에서 평균근속연수는 5년이었다. 관리사로 입사하게 된 이유는 '급여가 높다'거나 '말이 좋아서', '조교사가 되려고', '경마에 관심이 있어서' 등으로 나타났다.

또 관리사들은 자신이 하는 일의 미래에 대한 불안감을 가지고 있었고, 휴가와 관련해 대부분 '인원 부족으로 인해 거의 사용할 수 없다'는 응답이 많았던 것으로 나타났다.

마필관리사 인원 부족 ... 스트레스 심해

한국마사회 부산경남경마공원 고 박경근 마필관리사의 사망과 관련해, 민주노총 전국공공운수노동조합 양정찬 마필관리사노동조합 위원장이 3일 오후 부산경남경마공원 안에 있는 노조 사무실에서 설명하고 있다.
 한국마사회 부산경남경마공원 고 박경근 마필관리사의 사망과 관련해, 민주노총 전국공공운수노동조합 양정찬 마필관리사노동조합 위원장이 3일 오후 부산경남경마공원 안에 있는 노조 사무실에서 설명하고 있다.
ⓒ 윤성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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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필관리사는 인력도 부족했다. 1일 숨진 이현준씨가 속했던 조는 말 27마리에 관리사 6명이었다. 부산경남경마장은 처음 만들어질 때, 말 3.16마리당 관리사 1명이 되도록 설계했다.

그런데 현재 부산경남경마장에는 관리사 1명이 평균 4.5마리 내지 5마리를 담당하는 조도 있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양정찬 지부장은 "마필관리사 숫자를 늘려야 한다. 그래야 다치는 게 줄어들 수 있고, 스트레스도 줄어들 수 있다"며 "관리사가 적다는 게 가장 큰 문제다"고 말했다.

그는 "일하는 관리사 인원이 턱없이 부족하다"며 "부족한 인원분의 임금을 더 주겠다고 생색내면서 실제로는 관리사 고용을 회피하는 일을 마사회는 모른 척한다"고 했다.

또 그는 "부족한 인원으로 날쌘 경주마를 돌보려고 하니 자연스레 서두르게 되고, 서두르다 보니 예상하지 못한 일들로 많이 다치기도 한다"며 "이런 저런 이유로 산재율이 엄청나게 높은 것"이라 했다.

이현준씨가 속해 있었던 조는 지난해 12월 팀장이 산재가 나서 6개월간 병가였다. 여름이 되면서 관리사들이 휴가를 가기도 했다. 이현준씨는 3주 가량 장염에 설사를 하면서 몸 상태가 엉망이었다.

이석재 공공운수노조 부산본부 조직국장은 "고인은 팀장이 병가 중일 때 팀장 역할까지 했고, 특히 성적 스트레스로 인해 원형탈모까지 있었다"고 말했다.

고 박경근씨의 죽음 이후 유족측으로부터 위임을 받은 공공운수노조는 한국마사회측에 '관리사의 직접 고용' 등을 요구했다. 마사회와 공공운수노조가 2개월 동안 13차례 협의를 했지만, 합의에 이르지 못했다.

이현준씨가 자살한 그날(8월 1일), 마사회는 '마필관리사(박경근) 사망 사고 관련'이라는 입장설명 자료를 냈고, 마사회는 쟁점인 마필관리사의 직접 고용은 수용하기 어렵다고 했다.

양측은 일부 합의하기는 했지만, 공공운수노조가 요구했던 '노조 활동 보장'과 '임금 저하 없는 인력 충원' 등은 합의하지 못했다. 두 번째 관리사의 사망 이후 마사회 입장이 어떻게 나올지 궁금하다.

민주당 부산시당-노동당 경남도당 논평 내

정치권도 나서서 대책 마련을 요구하고 있다. 2일 더불어민주당 부산시당은 논평에서 "마필관리사의 잇따른 죽음은 비정규직이라는 우리 사회의 구조적 모순이 야기한 사회적 타살"이라 했다.

민주당은 "마필관리사의 잇따른 죽음에 대한 진상을 규명하고, 열악한 처우와 불안정한 고용환경에서 일하는 분들의 생존권과 인권을 보호하기 위해 법적 제도적 개선노력을 다할 것"이라 했다.

노동당 경남도당도 이날 "마사회야말로 적폐청산 대상 1호 공기업이다"는 제목의 논평을 냈다. 이들은 "먼저 돌아가신 박경근씨의 장례조차 아직 치르지 못하고 있는 상황에서 또 한 명의 노동자가 과중한 업무량과 스트레스로 인해 사망했는데도, 비정규직이라는 이유로 마사회가 계속 책임을 회피하려 해서는 안 된다"고 했다.

노동당 경남도당은 "마사회의 관리감독기관인 농림축산식품부가 마사회에 대해 철저한 감사를 실시하고 전면적인 개혁을 단행할 것을 촉구한다"며 "임원의 고액연봉이나 권력형 비리를 근절하고 정규직 중 고연봉자의 임금상승을 억제하는 대신, 비정규직을 직고용하고 처우를 개선할 것을 강력히 촉구한다"고 했다.

한국마사회 부산경남경마공원 마굿간.
 한국마사회 부산경남경마공원 마굿간.
ⓒ 윤성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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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그:#한국마사회, #마필관리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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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 부산경남 취재를 맡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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