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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란 창의 고성이씨 청도 오의사 숭모단
 임란 창의 고성이씨 청도 오의사 숭모단
ⓒ 정만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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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 수성구에서 팔조령을 넘으면 청도군으로 들어선다. 지금은 도로와 터널을 이용해 간단히 지나칠 수 있는 고개로 여겨져 별로 주목을 끌지 못하지만 팔조령은 '영남대로'였다. 부산에서 한양으로 가는 나그네들은 모두 이 고개를 넘어야 했다. 1592년 임진왜란을 일으켜 조선에 쳐들어온 일본군들도 4월 20일 이 고개를 넘어 대구로 진입했다.

대구에서 팔조령을 넘어 청도군으로 들어서면 불과 몇 분 지나지 않아 유등지라는 연못에 닿는다. 연꽃이 많이 핀다고 하여 속칭 '연지'로 널리 알려진 유등지 옆 얕은 언덕에 '청도 오의사 숭모단'이 있다. 이곳 숭모단비(崇慕壇碑)에 모셔져 있는 다섯 분 의사들은 모두 고성이씨 문중 인물들인데, 주소로 찾아가려면 청도군 화양읍 유등리 1737-8을 검색하면 된다.

비석 앞면에는 '壬亂(임란) 倡義(창의) 固城李氏(고성이씨) 淸道(청도) 五義士(5의사) 崇慕壇(숭모단)'이라는 열여섯 한자가 새겨져 있다. 뒷면에는 다섯 분의 존함, 즉 '李磬(이경), 李海(이해), 李潛(이잠), 李濂(이렴), 李澈(이철)'이 뚜렷하다.

함께 의병을 일으킨 고성이씨 사촌 형제 네 명과 종숙

비석 좌우에는 다섯 분의 모습을 아로새긴 동판 부조와 공적을 밝힌 돌판도 세워져 있다. 비문을 읽어본다.

'서기 1592년 임진년 4월 14일, 헤아릴 수 없는 왜군들이 부산포에 갑자기 들이 닥쳤다. "명나라로 들어갈 길을 빌려 달라"는 구실을 앞세워 우리나라를 침입한 것이다. 이것이 7년 전쟁, 임진왜란의 시작이며 우리나라는 태평의 무방비 상태에서 기습을 당한 것이다.

목숨을 걸고 항전하던 동래부사 송상현은 순국하고 왜군들은 삼랑진에서는 큰 저항을 받았다. 밀양부사 박진은 힘을 다해 싸웠으나 중과부족으로 밀렸다. 왜군은 파죽지세로 4월 20일, 상륙한지 7일 만에 청도가 함락되었다.

고요하던 협촌에 하늘이 깨지는 듯한 조총소리를 듣고 군수마저 혼비백산하여 관졸들을 데리고 최정산으로 사라졌다. 백성들은 우왕좌왕하며 산과 계곡으로 도망치는 참담한 지경에 이르렀다. 왜군은 의기충천하여 굶주린 이리떼처럼 이르는 곳마다 산야 촌락을 불 지르고 살육을 자행, 생지옥을 방불하게 했다.

이에 비분강개한 고성이씨 일문 5의사가 분기하여 책을 접고 결연히 구국성전에 몸을 던졌다. 의병을 일으킨 5의사는 이경(李磬), 이해(李海), 이잠(李潛), 이렴(李濂), 이철(李澈)이다.'

남원성 전투에서 전사한 영령들을 위로하는 '남원 만인의총'
 남원성 전투에서 전사한 영령들을 위로하는 '남원 만인의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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숭모단비 옆에 다섯 의사들의 공적을 아로새긴 빗돌이 있다. 이경 의사는 곽재우 의병군에서 활동한 선무원종 3등공신이다. 선무원종 3등공신인 이해 의사도 곽재우 의병군에서 활동했는데, 도원수 권율의 명을 받아 남원성 전투에 참여했다가 끝내 순절했다.

선무원종 2등공신인 이잠 의사는 전쟁이 일어났을 때 의병을 일으켜 철마산성과 오례산성 전투 때 공을 세웠다. 이잠 의사는 왜군들이 김시민 장군이 이끄는 조선군에 대패한 1차 진주성 전퉁 패전의 치욕을 씻기 위해 9만여 대군을 몰아 공격해온 2차 진주성 싸움에서 순국했다.

진주성 촉석루에서 내려본 남강과 의암(논개 투신 장소)
 진주성 촉석루에서 내려본 남강과 의암(논개 투신 장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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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렴 의사와 이철 의사도 오례산성, 철마산성, 유천 일원에서 의병 활동을 했다. 또 곽재우 의병군에 들어 화왕산성 회맹에 참여하는 등 전쟁에 끝날 때까지 나라를 위해 목숨을 걸고 적과 싸웠다. 이철은 이잠의 동생이고, 이경은 종숙, 이해와 이렴은 사촌형이다.

비문을 쓴 경북대 문경현 명예교수는 '고성이씨 일문 5의사여! 님들의 구국충정은 청사에 길이 빛나리니 대구망우당공원 임란호국영남충의단에 임란창의사 315위와 함께 모셔 민족의 추앙을 받고 있도다. (중략)  4종질, 형제, 숙질, 일문 5의사는 민족백대에 충신의사의 귀감으로 유방백세 빛나리니, 이에 장하고 거룩한 님들의 이름을 돌에 새겨 천추만대에 기리노라.'라고 찬탄했다.

김우용 의병장을 모시는 청휘재
 김우용 의병장을 모시는 청휘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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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도군 풍각면 수월리 83에 있는 청휘재는 김우용(金遇鎔, 1545∼1630) 의병장을 모시는 재실이다. 경산시 용성면 덕천리 231-1의 남천서원은 의병장 김우련(金遇鍊, 1552∼1632)을 제향하는 공간이다. 

둘러볼 때 마음이 느긋해지는 의병장 재실

고성이씨 5의사 숭모단을 둘러본 다음 청휘재(淸輝齋)로 간다. 청휘재가 문천서원 등 다른 유적지보다 숭모단에서 가까이 있기 때문이고, 청휘재 다음에 방문할 문천서원의 김우련이 김우용의 동생이기 때문이기도 하다.

김우용은 생몰 연대를 보면  86세나 되는 천수를 누렸다. 의병장들의 안타까운 전사를 볼 때마다 심정이 무거웠는데 이곳에서는 그런 조바심 없이 유적지를 둘러볼 수 있겠다 싶어 문득 마음이 가벼워진다.  

김우련 의병장을 모시는 남천서원
 김우련 의병장을 모시는 남천서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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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우용은 최문병(崔文炳, 1557∼1599)이 경산 자인에서 창의할 때 동생 김우련과 함께 의병군에 동참했다. 이때 이미 김우용 ‧ 김우련 형제는 영천에 사는 종질(사촌의 아들) 김대해(金大海) ‧ 김명해(金明海) ‧ 김홍해(金洪海)와 종질서(사촌의 사위) 정대임(鄭大任)이 의병을 일으켜 왜적과 싸우고 있다는 소식을 들은 터였다.

형제는 최문병, 김홍, 류인춘, 박영성, 권삼로, 이상, 윤기, 이시발, 김진, 이시오, 장천기, 박춘, 이춘암, 박몽량, 김응광, 안천민, 최동립, 이기업, 이시정, 박형, 전극창, 이억수 등과 함께 의병 부대를 결성하였고, 6월 9일에는 문천 회맹에도 참가했다. 최문병은 김우용, 김우련, 전극창, 박몽량, 안천민, 이춘암이 문천회맹에 참여하기 위해 길을 떠날 때 자신의 두 아들 최경지와 최희지를 데리고 가도록 했다.

자인 의병군은 6월 17일 문천에서 왜적과 혈전을 치른 이래 경주 서천 전투, 문경 당교 전투, 팔공산 회맹, 화왕산 회맹 등에도 가담했다.

김대해를 기리는 반계서당
 김대해를 기리는 반계서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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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히 1차 경주성 전투인 서천 싸움에서 김우용 ‧ 김우련 형제는 종질 김대해를 잃는 슬픔을 겪기도 했다. 전투가 실패로 끝난 뒤 김대해가 보이지 않아 알아보니 '나는 살아서 돌아오지 않을 것이다. 자유의(紫襦衣, 붉은 저고리)를 보고 내 시신을 찾으라.'는 유언을 남기고 싸움터로 들어갔다는 사실이 확인되었다.

김우용 ‧ 김우련 형제는 주검들이 썩어가고 있는 싸움터를 뒤진 끝에 붉은 옷을 입은 채 여전히 칼을 붙잡고 있는 김대해를 찾아 영천 북안 서당리로 와서 장례를 치렀다. 김대해는 영천시 임고면 고천리 245 고천서원과 영천시 북안면 반계리 130 반계서당에서 모시고 있다.

경북 경산이 배출한 대표적 의병장 중 한 사람인 최문병을 모시는 용계서원의 사당
 경북 경산이 배출한 대표적 의병장 중 한 사람인 최문병을 모시는 용계서원의 사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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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산 지역을 대표하는 의병장 중 한 사람인 최문병도 일찍 세상을 떠났다. 처음 군사를 일으킬 당시 36세 청년이었던 최문병은 전쟁이 끝나자 문득 병을 얻어 1599년 43세의 한창 나이에 운명했다. 사람들은 1712년(숙종 38) 사당을 지어 그를 기렸고, 사당은 1786년(정조 10) 들어 서원으로 승격되었다. 경산시 자인면 원당리 243 용계서원이 바로 그곳이다.

오의사 숭모단, 청휘재, 문천서원, 용계서원, 반계서당 등 의병장들을 추모하는 공간을 줄곧 둘러보았으니 이번에는 성격이 다른 곳을 찾아보아야겠다. 의병 투쟁의 현장 용산산성이다. 경산시 용성면 곡신리 675 마을회관에서 2km를 오르면 닿는다. 완만하고 그늘이 짙어 걷기에 딱 좋은 길이다.

자인 지역 의병들의 거점 용산산성의 겨울 풍경
 자인 지역 의병들의 거점 용산산성의 겨울 풍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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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그:#김우련, #김우용, #김대해, #오의사, #최문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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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편소설 <한인애국단><의열단><대한광복회><딸아, 울지 마라><백령도> 등과 역사기행서 <전국 임진왜란 유적 답사여행 총서(전 10권)>, <대구 독립운동유적 100곳 답사여행(2019 대구시 선정 '올해의 책')>, <삼국사기로 떠나는 경주여행>,<김유신과 떠나는 삼국여행> 등을 저술했고, 대구시 교육위원, 중고교 교사와 대학강사로 일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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