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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창희

ⓒ 이창희

ⓒ 이창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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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창희

작년 11월의 주말이었나 봐요. 광장에서 또 한 번의 '찐~한' 연대를 확인한 다음 날 아침. 울진서 대가족을 이끌고 올라온 동생은 아침 일찍 집으로 출발하고, 저는 기차 시간까지 여유가 있길래 서울 산책에 나섰습니다.

인사동에서 경복궁을 지나, 청와대로 가는 골목으로 들어섰어요. 어깨에 둘러멘 가방에는 어제의 흔적들이 가득했습니다. 세월호 리본, 다양한 구호를 외치는 스티커, 그리고 광장에서 받은 수많은 유인물들 같은 것 말이에요.

어제의 시위에서 경찰 바리케이드가 가로막고 있던 곳에 도착했을 즈음이었어요. '특별 경계 구역입니다. 검문에 협조해 주십시오'라고 쓰인 팻말 앞으로 검은 안경을 쓴 경찰들이 지키고 계셨지요.

"가방을 좀 봐도 될까요?"

검문에 응해달라고 하니, '불심검문에 응대하는 법'과 같은 수많은 글들이 떠올랐지만, 지레 겁을 먹었는지 가방을 열고 있더라고요. 가방에서 유인물들을 꺼내면서 "이건 가지고 들어가실 수 없습니다. 맡기고 가시겠습니까?"라고 말하더군요.

이미 가방을 뒤지는 손을 만난 후부터, 그 안에 들어가야겠다는 생각은 멀~리 안드로메다로 보내버렸던 것 같아요. 기분은 이미 나빠질 만큼 나빠진 후였고요.

"아니에요. 됐어요."

선글라스 그녀의 손에 들려있던 유인물들을 거칠게 다시 돌려받고는, 열렸던 가방을 다시 닫고 길을 되돌아 나왔습니다. 그리고, 그 길을 16일 다시 걸었네요.

서울 출장에서 예정되었던 회의를 마치고 났더니, 내려가는 기차까지 두 시간이 남은 거예요. 딱히 할 것도 없고, 누군가를 불러내기엔 어중간한 시간이라 무작정 '촛불'의 흔적을 따라 새 주인을 맞이한 청와대까지 걷기로 합니다. 오랜만에 신은 구두가 걱정스러웠지만, 뭐 어떻게 되겠죠!

아직 태극기가 걷히지 않은 시청 광장과 무거운 슬픔이 가슴을 울리는 세월호 광장을 지납니다. 공기마저 달라진 대선 후의 광장을 지나려니, 괜히 기분이 좋아져서 고생하시는 경찰들에게도 '안녕하세요!' 인사를 하게 되네요.

'촛불혁명'의 흔적이 가득한 광화문을 지나, 그 날의 '진입'에 검문으로 대응했던 그곳에 도착했어요. 오늘은 검은 안경을 벗은 경찰관 두 분이 지키고 계시더라고요.

"저, 그냥 들어가도 되나요?"
"(뭐, 그런 걸 물어보냐는 심드렁한 목소리로) 네."
"진짜요? 와~"
"(두 눈이 똥그래져서) 왜요?"
"저, 지난번에 여기서 검문받았거든요."


가려졌던 길에 다시 들어섰습니다. 세월호가 깊은 물에서 신음한 이후로는, 청와대 주변의 골목골목을 사복 경찰들로 막아가면서까지 절대 진입을 허용하지 않던 그곳에, 드디어 발을 내딛습니다. 분명 기분 좋은 산책인데 주책맞게 왜 자꾸 눈물이 나는지 모르겠네요.

해가 북악산 너머로 기울자, 붉은 노을까지 더해졌네요. 하늘도 같이 울어주겠다는 얘기인가 봐요. 왠지 <반지의 제왕>에서 절대반지와 함께 사우론이 사라지고 난 후 만나게 된, 중간계의 '화창한' 하늘 같아요.

새로운 시대가 시작되었습니다. 우리, 제대로 즐기고 계속 같이 응원해요. 우리가 몰아낸 어둠은 아직도 다시 부활할 그 날만을 기다리며, 호시탐탐 기회만 노리고 있잖아요. 우리 밖에서 우리를 못마땅해하는 그들이 가장 바라는 것은, 바로 우리끼리 싸우는 것 아닐까요? 저는 이렇게 돌아온 '시민의 시대'를 좀 더 오래 즐기고 싶습니다.

첨언) 게다가, 포항으로 돌아오기 위해 찾아온 서울역에서는 헌법재판소의 판결에 대해 이의를 제기하는 발언이 광장을 가득 채우네요. 미래의 대한민국을 위한 싸움은, 아직 끝나지 않았습니다. 힘내요, 우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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