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돌 스타'도 아닌데 왜 '내빈'들은 무대 위에 줄곧 앉아 있을까? 이를 올려다봐야 하는 아이들도 곤혹이고, 무대에 있는 내빈들도 곤혹이다. 무대에 오른 탓에 행사 시간 내내 등짝이 가려워도 시원하게 긁기도 어렵다.
'아이돌 스타'도 아닌데 왜 '내빈'들이 줄곧 무대에?상당수의 학교에서는 졸업식·입학식 등 큰 행사 때마다 번번이 위와 같은 모습을 보인다. 하지만 서울 금나래초등학교는 정반대의 모습을 보였다. 16일, 이 학교 강당에서 열린 학교 해오름식(개교식)에서다.
서울시교육감, 남부교육장, 금천구청장, 금천구의회 의원들을 모두 아이들 뒷전에 앉힌 것. 이 학교 교직원들의 의자도 아이들 뒤에 있었다. 해오름식의 주인인 아이들을 앞장세우기 위해서다.
이날 오전 10시 금나래초 강당에는 이 학교 학생과 교직원, 그리고 조희연 서울시교육감, 차성수 금천구청장 등 1000여 명이 모여들었다.
무대 바로 앞에는 일곱 줄의 의자가 부채꼴 모습으로 놓여 있다. 이 학교 학생들 200여 명이 이 의자에 앉았다. 이어 여덟 번째 줄에 조 교육감을 비롯한 이른바 '내빈'들이 자리 잡았다.
"오늘 자리는 국회 본회의장처럼 의자들을 부채꼴 모양으로 놓았습니다. 한 분 한 분 소중한 존재이기 때문이죠. 게다가 학생들을 맨 앞에 앉도록 했습니다. 개교식의 주인공이고 학교의 주인이기 때문이죠."이 학교 문병화 교감의 설명이다. 개교식을 준비하면서 이 학교 교직원들은 여러 차례 회의를 열었다. 이런 자리 배치는 문 교감의 제안을 교직원들이 흔쾌히 받아들이면서 가능하게 됐다.
몇 해 전부터 개교식 자리 배치 문제로 몇몇 학교가 갈등을 겪기도 했다. '아이들을 맨 앞에 앉히자'는 제안을 관리자들이 거부하면서 벌어진 일이다. 서울시교육청 관계자는 "학생을 앞에 앉히고 교육감을 뒤에 앉힌 개교식은 금나래초가 처음"이라고 말했다.
여느 학교 행사의 경우 이른바 '내빈'들의 축사 문제 또한 풀어야 할 과제였다. 10여 명의 내빈이 서로 축사를 먼저 하려고 하면서 의전문제 등도 발생하기도 했다. 이런 재미없는 '축사 이어달리기'에 상당수의 아이들이 하품을 할 수 밖에 없는 형편으로 내몰리기 일쑤였다.
하지만 이 금나래초는 내빈들의 축사를 3~5초짜리 동영상 인사로 대신했다. 학생들을 위해 교직원들이 깔끔하게 사전 편집 작업을 수행한 것이다.
대신 이 학교는 10여 명의 교직원들이 무대 앞에 서서 '빨주노초파남보'라는 노래를 불렀다. 아이들은 손뼉을 쳤다. 학생들도 가만있지 않았다. 합창단을 꾸려 병설 유치원 교가와 초등학교 교가를 불렀다. 이 교가는 이 학교 교사들이 머리를 맞대고 만든 것이다.
다음은 이날 아이들이 부른 <금나래의 꿈>이라는 제목의 금나래초 교가다. 이 노랫말은 이 학교의 '교훈'이기도 하다.
"더불어 배워요. 함께 놀아요. 다 같이 웃어보아요. 모두가 행복한 금나래." 1시간쯤 걸린 행사가 끝난 뒤 조 교육감에게 "뒷전에 앉으니 기분이 나쁘지 않았느냐"는 질문을 던졌다. 돌아온 대답은 다음과 같았다.
"뒤에 앉아서 학생들을 지켜보니까 아주 좋았다. 오늘은 금나래초에서 역사적인 날인데, 그 주인공은 아이들이다. 아이들이 지루해하지 않게 내빈들의 축사를 영상으로 한 것도 좋았다. 다른 학교들도 이렇게 했으면 좋겠다."5학년 학생 "앞에 앉으니 정말 우리가 주인이라는 생각이..."개교식에 참석한 안선우 학생(5학년)도 "선생님들이 우리가 주인이라고 하면서 앞에 앉게 해주셔서 정말 주인이라는 생각을 했다"라면서 "개교식을 봐서 기분이 좋았다"라고 말했다.
이 학교 배장혁 학교운영위원장도 "지금 시대적 분위기는 참여와 혁신, 소통이 아니냐"라면서 "학생들과 소통하기 위해 학생들을 행사장 앞에 앉히는 교직원들의 마음이 가슴으로 느껴졌다"라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