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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미국방화협회(NFPA)는 미 연방 소방국(USFA)과의 협업을 통해 '제4차 미국소방 수요조사(Fourth Needs Assessment of the U.S. Fire Service)'라는 제목의 의미 있는 보고서를 내놨다. 수요조사는 2001년, 2005년, 그리고 2010년에 이어 네 번째로 이뤄졌다.

5년 주기로 꾸준한 연구가 진행됐다는 점에서 보면 소방 조직이 얼마만큼 사람을 살리는 전문조직으로 거듭나기를 원하는지에 대한 그들의 끈질긴 열정과 노력을 느낄 수 있다.   

수요조사에서는 인력, 예산, 장비, 훈련, 보건 및 안전 등을 포함한 미국소방이 현재 당면하고 있는 문제들을 다각도로 분석해 그에 따른 수요를 파악하고 연방차원에서 어떻게 해결해야 할지에 관한 방향을 제시하고 있다.

이렇게 해서 나온 결과는 연방정부의 '소방관 지원 보조금'(Assistance to Firefighters Grant)과 '적정 소방인력 보조금'(Staffing for Adequate Fire & Emergency Response Grants)이라는 프로그램을 통해 예산에 반영된다.  

2016년 발표된 '제4차 미국소방 수요조사' 인포그래픽 (자료출처: 미국방화협회)
 2016년 발표된 '제4차 미국소방 수요조사' 인포그래픽 (자료출처: 미국방화협회)
ⓒ 이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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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의 역사와 문화 전반에서 찾아볼 수 있듯이 그들은 하나의 정책을 만들 때에도 다양성을 바탕으로 한 사람 사이의 '조정(Coordination)과 협업(Cooperation)'이라는 마법을 통해 모두에게 안전하고 효율적인 작품을 만들어 낸다. 이는 수요조사에 참여한 자문위원들의 면면을 살펴봐도 그렇다.

위원회는 미 연방 소방국, 공공안전부문 담당자, 순직소방관 협회, 미국 여성소방대원 협회, 미국 흑인소방대원 협회, 미국 의용소방대원 협회, 미국 소방대원 협회, 소방안전보건담당관 협회, 미국 소방서장 협회, 미국 소방국장 협회, 미국방화협회 등 다양한 사람들이 모여 제 각기 목소리를 내는 구조로 돼 있다.

여기에서 나온 안건들이 최종적으로 정리되면 연방정부의 안전을 향한 과감한 투자가 시작된다.

3만 개의 소방서와 110만 명이 넘는 소방관을 보유한 거대한 나라 미국은 5년마다 수요조사라는 조직 진단을 통해 더 많은 사람을 살리는 전문조직으로 거듭나고 있다.   

얼마 전 대한민국을 이끌어갈 새로운 대통령이 선출됐다. 대통령의 여러 공약 중에는 안전하고 건강한 대한민국을 만들겠다는 정책도 담겨 있다.

하지만 지나온 세월동안 소방조직 개편을 포함한 우리나라 재난관리시스템의 역사를 살펴보면 기대보다는 우려가 앞선다. 문제가 생길 때마다 보여준 '땜질식 처방'에 더 이상 신뢰를 보낼 수 없기 때문이다.

2004년 국민의 염원을 담아 만들어진 소방방재청은 10년 만에 국민안전처로 통합되는 어색한 변화를 겪어야만 했고, 국민안전처 역시 '국민불안처'라는 여론의 비판을 받은 채 3년도 되지 않아 역사의 저편으로 사라질 전망이다.

이번 대통령의 공약을 보면 새로운 소방청을 만든다고 한다. 하지만 기관의 명칭만 바뀐다고 해서 하루아침에 재난에 강한 소방조직이 되는 것은 아니다.

재난대응의 중심에 서 있는 소방이 충분히 제역할을 할 수 있도록 정확한 수요조사가 선행돼야 한다.

수요조사에서는 조직 이기주의를 넘어 안전을 염원하는 다양한 분야의 전문가들이 모여 대승적 차원에서 소방의 역할을 정해야 하고, 그 역할을 안전하고 효과적으로 수행할 수 있도록 필요한 것들을 추진하는 것이 옳다.

부족한 인력과 장비, 모든 소방공무원의 국가직 전환 등 살펴볼 과제들이 산적해 있다. 

새로운 정부에 거는 국민들의 기대가 그 어느 때보다 각별하다. 이번 기회를 통해 안전은 특정 정치인이나 정당이 바뀌더라도 결코 변하지 않는 최고의 가치라는 상식을 보여주길 바란다.


태그:#이건 소방칼럼니스트, #이건 선임소방검열관, #미국소방 수요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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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출생. Columbia Southern Univ. 산업안전보건학 석사. 주한 미 공군 오산기지 선임소방검열관. 소방칼럼니스트. <미국소방 연구보고서>, <이건의 재미있는 미국소방이야기>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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