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평양 조선중앙통신=연합뉴스) 지난 14일 새로 개발한 지대지 중장거리 전략 탄도미사일(IRBM) '화성-12'형의 시험발사를 진행했다고 조선중앙통신이 15일 전했다. 2017.5.15
 (평양 조선중앙통신=연합뉴스) 지난 14일 새로 개발한 지대지 중장거리 전략 탄도미사일(IRBM) '화성-12'형의 시험발사를 진행했다고 조선중앙통신이 15일 전했다. 2017.5.15
ⓒ 연합뉴스

관련사진보기


사람들은 과거를 통해 현재를 파악하는 능력을 갖추고 있다. 사람들은 이 능력을 확장해, 현재를 통해 미래를 유추하기도 한다. 하지만 타고난 능력이라고 해서 모두가 쓸 줄 아는 것은 아니다.

어떤 방법을 써서 계속 실패해 온 일이 있다고 하자. 그것도 한두 해도 아니고, 5~60년을 똑같은 방식으로 줄기차게 실패했으며, 그러는 동안 문제는 나날이 심각해져 갔다고 치자.

이때 '이 방법이 뭔가 잘못된 게 아닌가' 생각하는데 비상한 지능이 필요하지는 않을 터이다. 하지만 두 세대 넘게 똑같은 실패를 되풀이해 왔으면서도 '이제까지 해 온 방식 그대로, '더 세게' 밀고 나가야 해'라고 말하는 이가 있다면 어떨까?

이런 경우, 이 사람에 대해 두 가지 가능성을 생각해볼 수 있다. 하나는 그의 판단능력이 '비상한 지능'과 대단히 거리가 먼 경우이고, 다른 하나는 그 아둔한 짓의 결과를 상쇄하고도 남을 만큼 이익을 얻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날로 발전하는 북한 미사일, 늘 똑같은 한미 대응

지난 14일 북한은 또다시 탄도미사일을 발사했다. 평안북도 구성 일대에서 발사된 이 미사일은 고도 2000km를 넘어선 것으로 추정된다. 북한이 미사일 실험을 할 때마다 그랬듯, 이번 역시 고도, 속도, 사거리 등 거의 모든 영역에서 진전된 결과를 보였다.

북한이 미사일을 발사한 후 어떤 일이 일어날지는 뻔한 일이었다. 미 백악관은 북한을 맹비난하면서 "더 강력한 제재"를 요구할 것이고, 일본은 거품을 물고 공황상태에 빠질 것이고, 한국 보수언론은 진보세력을 비난하기 시작할 것이다.

그 다음 어떤 일이 벌어질지도 쉽게 예측할 수 있다. 유엔의 공동성명이 나올 것이고, 아마도 대북제재 결의가 나올 것이다. 하지만 몇 주 뒤면, 아무 일 없었다는 듯 북한을 까마득히 잊을 것이다.

그리고 북한은 다시 더 개량된 미사일을 쏘거나 훨씬 강력한 핵실험을 할 것이다. 그러고는 또다시 비난-제재-망각의 순환이 시작된다.

가끔 '변주'가 등장하기도 한다. 한국과 미국에 새 대통령이 들어설 때 간혹 '대화' 이야기가 나오는 경우다. 하지만 이 시나리오도 언제나 같은 궤도를 따라 돌게 되어 있다.

'대화 제의'에는 언제나 '북한이 핵을 포기하는 것을 전제로…'라는 단서가 붙고, 북한은 여지없이 다시 뭔가를 쏘거나 터뜨리며, 이어 '대화 분위기에 찬물을 끼얹었다'라는 언론 보도가 나오면서 모든 일은 원상 복귀한다.

북한이 왜 자꾸 도발을 하느냐고?

북한은 왜 자꾸 무기를 만들고, 개량하고, (적절한 때를 골라) 무력시위를 벌이는 것일까? 아마도 가장 속 편하고 게으른 답변은 '전쟁광이라서'일 것이다. 한 마디로 '미쳐 날뛴다'라는 것이다.

우리뿐 아니라, 미국과 일본 국민들 다수가 이런 생각을 가지고 있다. 더욱 놀라운 점은, 적잖은 정치 지도자와 군의 고위 관계자까지도 그렇게 믿는다는 점이다. 북한이 정말 미쳐서 그러는 것이라면, 방법은 전쟁 하나밖에 없다.

하지만 북한에 대해 '초강력 대응'을 주문하는 사람들조차도 '전쟁하자'고 나서는 이들은 극히 드물다. 지난 대선에 출마했던 홍준표는 "대통령이 되면 김정은이를 무릎 꿇리겠다"고 말하면서도 엉뚱한 주장을 폈다.

"문재인 좌파정권이 들어설 경우 미국의 트럼프가 북한을 선제 타격할 수 있다."

'선제타격론'은 보수 강경파가 주장해 오던 '북핵 문제 해결책'이 아니었던가? 문재인이 집권하면 미국이 북한을 폭격하고, 홍준표 정권이 들어서야 미국이 북한과 평화적 대화를 시작한다는 말일까? 그렇다면 김정은 무릎은 어떻게 꿇릴 계획이었을까?

무릎에 경첩 같은 것을 달아 리모컨으로 조종하는 게 아닌 이상, 전시작전권도 없는 한국 대통령이 북한 지도자의 무릎을 꿇리기는 매우 어렵다. 박근혜, 이명박, 김영삼, 노태우, 전두환은 물론, '반공의 화신' 박정희와 이승만도 못한 일 아닌가.

북한은 왜 자꾸 위험한 도박을 감행하는 것일까? 다수의 전문가들은 우리가 믿는 것과 전혀 다른 해답을 내놓는다. '공포감'에서 비롯한 '생존전략'이라는 것이다.

북한은 미국을 깊이 두려워한다

북한은 '요새 국가'로 불린다. 주요 군 시설과 본부, 폭격을 대비한 대피소는 물론 핵심적 산업시설 다수가 땅속 깊이 건설되어 있다. 북한이 남침 후 미군 폭격에 의해 나라가 초토화되는 경험을 했기 때문이다.

역기서 '초토화'란 표현을 은유나 과장으로 쓴 게 아니라는 사실을 짚고 넘어가야 할 것 같다. '초토(焦土)'란 농사 등을 짓기 위해 산야를 불 지른 뒤 남겨진 검은 잿더미 땅을 말한다. 미군의 표현을 빌리면, 전쟁 이후 북한은 "석기시대로 되돌아간 꼴"이 되었다.

군사전문가이자 역사가인 이안 그린할지(Ian Greenhalgh)의 분석이 당시 상황을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될 듯하다. 그는 <베터란스 투데이> 기고문 "북한은 왜 미국을 증오하는가"라는 질문을 던진 뒤에 이렇게 썼다.

"북한 사회에는 증오에 찬 반미 메시지가 끊임없이 흘러나온다. 하지만 북한 전문가 블레인 하든이 <워싱턴포스트>에 썼듯, 이들의 증오심 모두가 정치선전에 의해 날조된 것은 아니다. 이들의 반미 정서 가운데 상당 부분은 "역사적 사실에 기초한다. 북한은 강박적으로 간직해 온, 하지만 미국인은 아무렇지도 않게 기억에서 털어버린 그 사실 말이다."

북한 사람은 곱씹어 온 반면, 미국인들은 잊어버린 역사적 사실이란 무엇일까? 그린할지의 칼럼을 계속 읽어보자.  

"전쟁 당시 미군은 한반도에 폭탄 63만5000톤과 네이팜탄 3만2557톤을 쏟아부었다. 이는 2차 세계대전 태평양 전쟁 내내 투하한 폭탄보다도 많은 양이다. 이 사실을 아는 미국인들이 얼마나 될까?"

칼럼은 당시 폭격이 민간인에 대한 고려 없이 무차별적으로 이뤄지는 경우가 많았다는 사실도 지적한다. 군인이든 민간인이든 미군 폭격기의 공습은 두려움의 대상이었지만, 폭격을 피해 살아남는다고 공포감을 온전히 떨쳐버릴 수 있는 것은 아니었다.

브루스 커밍스가 <북한: 또 하나의 나라>에서 지적했듯, 미군은 댐이나 보를 폭파해 논을 수몰시키는 작전을 쓰곤 했다. 식량 공급을 차단하기 위한 의도였지만, 살아남은 자에게는 천천히 다가올 고통스러운 죽음을 의미했다.

이제는 도발-제재-망각의 악순환을 끝낼 때다

자신들이 전쟁을 시작했으니, 당해도 싸다고 말하는 이가 있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이 글의 목적은 '샘통'인지 아닌지를 가리는 게 아니다. 중요한 점은 그 공포가 현재까지 강박으로 살아남아 북한을 움직이고 있으며, 그로 인해 우리의 안전뿐 아니라 사회적 진보까지 위협하고 있다는 점이다.

북한이 미국에 지닌 그 깊은 공포감이 현실적 위협에 기반한 것인지 여부를 떠나, 북한은 그렇게 굳게 믿고 있다. 미국은 언제든 자신들을 공격해올 수 있다는 것이다. 북한은 공포감에서 끊임없이 무장하고, 이 무장이 다시 미국을 자극하는 악순환이 되풀이 되어 왔다. 

'미사일 개발에 쓰인 비용은 주민들 몇 년 치 식량'이라는 비난이 북한에게 쏟아지지만, 자신들 목숨이 위협받고 있다는 생각에 사로잡힌 사람들에게 '식량'은 부차적인 문제로 보일 수밖에 없다. 따라서 북핵 문제 해결의 핵심은 북한의 강박적 경계심과 편집증적 공포를 해소하는 데 있다.

북한에 대응한 무력시위와 대북 제재가 이 목적을 이루는 데 있어 효과적인가? 이 질문에 답하기 전에, 지난 60년간 쭉 그렇게 해 왔다는 사실을 기억할 필요가 있다. 때로는 분노와 분노가 만날 때보다 공포와 공포가 만날 때 더 끔찍한 사태가 벌어진다.

북한이 핵과 미사일의 성능을 강화하면서, 미국 내에서도 북한에 대한 공포감이 서서히 확산되고 있다. 북한이 미국 본토에 핵탄두를 발사할 능력이 있는지, 설사 그렇다고 해서 북한이 그런 자멸적 선택을 할 것인지 여부는 중요치 않다. 본래 공포는 합리적인 사고의 결과로 발생하는 게 아니다.

북한에 대해 합리적인 정보를 얻을 수 없다는 점은 미국도 마찬가지다. 더구나 9·11과 보스턴 테러 등으로 미국인은 외부 위협에 대한 막연한 공황 같은 것을 갖게 되었다. 한국의 연이은 보수집권 이후 강화된 남북갈등은 미국인의 공포감을 부채질하는 결과를 초래했다.

가장 위험한 상황은 이런 막연한 공포감이 서로 충돌할 때다. 예측불가능한 트럼프의 집권은 서로의 오판을 유도하기 쉬운 상황으로 번지기 쉽다.

북한을 제대로 이해해야 우리가 산다

문재인 대통령이 선거운동 때 "대통령 되면 북한 먼저 가겠다"는 말을 해서 보수 정치권과 언론에게 '종북'에, '빨갱이'라며 융단폭격을 당했다. 나는 그게 왜 욕먹어야 할 말인지 지금까지도 모르겠다.

'급한 불 먼저 끄자'고 이야기하면 '종불'이 되고, 급한 병부터 치료하자고 하며 '종병'이 되는가? 그는 우선순위를 언급했을 뿐이다. 보수언론은 북한이 미사일 한 번 쏘면 온 지면을 북한 이야기로 채우면서도, 대통령이 북핵 문제를 직접 나서서 해결하겠다는 데에는 거품을 물고 반대한다.

그럼 어떻게 하란 말인가? 지난 반세기 넘게 실패한 길로 쭉 가자는 말인가? 뱀이 사람을 무는 것은 두려움 때문이다. 상대가 치명적 무기를 들고 있고, 그가 궁지에 몰려 있을 때 위협하는 것은 현명한 일이 아니다. 그를 위해서가 아니라, 나를 위해 현명한 일이 아니라는 것이다.

이제 도발-비난-제재-망각으로 반복되어 온 그 지겨운 악순환을 끊을 때다. 그러기 위해 가장 중요한 것은 북한을 제대로 이해하는 것이다. '북한을 이해하는 것'은 '북한을 좋아하는 것'과는 다른 일이다. 도시 문제를 이해하려고 노력한다고 해서 도시문제를 좋아하는 게 아니듯 말이다.

그렇지 않으면 한국 사회는 한 발자국도 나아가기 어렵다. 그동안 권력이 온갖 부패와 실정을 저지르면서도 '북한 위협' 하나로 계속 집권해 온 것을 봐도 알 수 있듯 말이다.


태그:#북핵, #탄도미사일, #대북제재, #대화, #북한
댓글65
이 기사의 좋은기사 원고료 10,000
응원글보기 원고료로 응원하기

언론학 교수로, 미국 펜실베니아주립대(베런드칼리지)에서 뉴미디어 기술과 문화를 강의하고 있습니다. <대한민국 몰락사>, <망가뜨린 것 모른 척한 것 바꿔야 할 것>, <나는 스타벅스에서 불온한 상상을 한다>를 썼고, <미디어기호학>과 <소셜네트워크 어떻게 바라볼까?>를 한국어로 옮겼습니다. 여행자의 낯선 눈으로 일상을 바라보려고 노력합니다.

오마이뉴스 김도균 기자입니다. 어둠을 지키는 전선의 초병처럼, 저도 두 눈 부릅뜨고 권력을 감시하는 충실한 'Watchdog'이 되겠습니다.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