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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왕좌왕, 좌충우돌, 허겁지겁, 우여곡절… 조금은 앳돼 보지만 하얀 가운, 병원이라는 공간 덕분에 버젓한 의사처럼 보이기도 하는 인턴들이 살아가는 속사정입니다.

의사들 세계에서 인턴들은 '선생'으로 불리기도 하지만 '고인나(고작 인턴 나부랭이)'로 불리기도 하고, '초턴'에서 '말턴'으로 계급장을 갈아 달 듯 호칭이 바뀌어가며 과정을 마치게 됩니다.

의사들 세계에서 이비인후과 전공의들은 귀 둘, 코 둘, 목구멍 하나 이렇게 다섯 구멍을 통해 각종 병을 찾아낸다고 해서 '오공(五孔) 수사대'라는 별칭으로 불리기도 하는 모양입니다.

 <의사가 말하는 의사> / 지은이 이현석 외 25인 / 펴낸곳 부키(주) / 2017년 3월 3일 / 값 14,800원
<의사가 말하는 의사> / 지은이 이현석 외 25인 / 펴낸곳 부키(주) / 2017년 3월 3일 / 값 14,800원 ⓒ 부키(주)
<의사가 말하는 의사>(지은이 이현석 외 25인, 펴낸곳 부키)는 이처럼 의료관련 분야에서 현직으로 종사하고 있는 전공별 의사 26명이 토크쇼를 하듯 경험하였거나 겪고 있는 이야기들을 써내려간 내용입니다.

저자 대부분은 현직의사입니다. 하지만 저자 중에는 의사자격증을 갖고 의료전문기자로 활동하거나, 국경없는의사회 구호활동가로 활동하는 분도 있고, 사회단체나 공공기관에서 근무 중인 분들도 있습니다. 

이들은 출신대학도 다르고, 의대에 입학하게 된 동기, 의사가 되기까지의 과정도 같지 않습니다. 근무하고 있는 장소나 업무 내용도 다르고, 병원에서 전공하고 있는 과까지 다 다릅니다. 이들 26명의 저자들이 갖는 공통점은 의대를 나와 의사자격증을 갖고 관련 직종에 현직으로 종사하고 있는 근무자들이라는 것뿐입니다.

이들의 이야기를 읽다보면 의사가 돼 가는 과정은 대충 어림하는 것보다 훨씬 지난합니다. 일반대학에는 없는 '유급'이라는 제도 때문이기도 하겠지만 사람의 목숨을 다루어야 할 전문가로 가는 길이기에 많은 어려움이 부과 될 거라 어림됩니다. 

'전문의'라는 세 글자는 의대 6년, 인턴 1년, 레지던트 4년…, 짧게 잡아도 11년이나 되는 세월을 견디고, 코스마다 시험에 합격해야만 얻을 수 있는 묵직한 자격이라는 것도 실감할 수 있습니다.

작업환경의학과, 소아과, 호흡기내과, 소아청소년과, 산부인과, 가정의학과, 정형외과, 마취통증학과, 신경과, 안과, 응급의학과, 비뇨기과, 정신건강의학과, 재활의학과, 신경외과, 이비인후과…. 저자들이 종사하고 있는 전공과 중 일부입니다. 이게 병원에 있는 전공의 전부는 아닐 겁니다. 

병원 층별 복도를 따라다니다 보면 즐비한 칸칸이 방마다 '과'를 안내하고 '호실'을 알려주는 팻말들이 가지런하게 붙어있습니다. 다닥다닥한 팻말 중에는 일상에서 익숙한 과(명칭)들도 있지만 아주 생소하기만 한 과들도 없지 않습니다.

하지만 일상에서 익숙한 과 이름이라고 해서 그 과에서는 어떤 병을 치료하고, 어떤 일을 하는지 까지를 세세히 알고 있는 사람들은 흔하지 않을 것입니다.

병원 과, 아는 것 같지만 모르기 일쑤

성인남녀들 중 '산부인'과라는 말이 생소하다고 할 사람은 없을 것입니다. 하지만 산부인과가 사실은 '산과(Obstetrics)'와 부인과(Gynecology)를 합쳐 산부인과(OBGY)로 불리는 것이라거나, 산과는 뭐며 부인과는 뭔지 등을 구체적으로 알고 있는 사람은 흔하지 않을 것이라 생각됩니다.   

다양한 분야(과)에 종사하고 있는 저자들이 자신들이 치료하거나 전공하고 있는 영역을 사는 이야기처럼 쉽고 재미있게 소개하고 있어 복잡 난해하기만 한 다양한 전공들을 이해하는 데 길라잡이가 돼 줍니다.

오후 진료를 마치고 장례식장을 찾아갔다. 나의 '마지막 회진'이었다. 딸을 꼭 살려 달라시던 아주머니의 노모께서 먼저 알아보고 맞아 주셨다. 가족들은 내 손을 잡고 고맙다고 하셨다. 웃고 있는 아주머니의 영정 아래 국화꽃 한 송이를 올려놓고 나오는데 딸이 따라 나오며 종이가방 하나를 건넸다.
"어머니가 혹시 선생님이 오시면 꼭 전해 드리라고 하셨어요. 지난 번 외출했을 때 어머니가 직접 고르신 거예요."
차에 돌아와 가방을 열어 보았다. 병을 낫게 해 주지도 못한 못난 의사를 위해 아주머니가 하늘에서 보내 주신 선물은 '하늘색 셔츠'였다. 나도 모르게 뜨거운 눈물이 볼을 타고 주르륵 흘렀다. - 책, 252쪽

저자 중 1명, 이비인후과 전공의인 김동은씨 글 중 일부입니다. 희귀암에 걸린 50대 아주머니를 치료하지만 결국 그 환자는 세상을 떠납니다. 하지만 그 환자는 그냥 떠나지 않고 의사에게 선물을 남기고, 장례식장을 찾은 의사에게 그 선물이 전달됩니다.

치료과정 등이 구체적으로 묘사되지는 않았지만 환자와 의사를 넘어서는 인간미, 치료과정에서 교감을 이뤘을 감사하는 마음과 측은지심이 의술을 넘어서는 따뜻함으로 그려집니다.

부 좇는 의사들에겐 눈엣가시, 환자들에게 따뜻한 희망

과거 한때(지금도 그런 의사가 전혀 없고는 할 수 없겠지만) 병원에서 만나는 의사들은 얄팍한 의료지식을 배경으로 노골적 또는 은근슬쩍 환자에게 군림하려는 고자세였습니다. 손자 또래의 새파란 의사가 할머니 같은 환자에게 반말을 하는 경우도 없지 않았습니다.

시대가 바뀌고 환경이 달라진 때문이기도 하겠지만 요즘은 그런 의사들이 거의 보이지 않습니다. 하지만 환자가 갖는 불안한 심리와 의료지식이 없다는 것을 이용해 하지 않아도 될 고가의 치료를 교묘히 부추기는 의사는 없지 않은 것 같습니다.

주변에 그런 의사들이 좀 있다고 의사들을 부정적으로 볼 것은 아니라는 걸 26명의 저자들이 들려주는 이야기에서 읽을 수 있습니다. 의사를 부와 명예 수단으로 여기는 일부 의사들에게는 눈엣가시처럼 보일지 모르지만 책에서 읽을 수 있는 의사들 이야기는 우리나라 의료종사자들이 나갈 바를 가리키는 이정표이자 희망입니다. 병원신세를 져야 할 사람들 가슴을 따뜻하게 해줄 솜이불 같은 활동(의술)들이기에, 행여 내가 병원엘 가게 되면 저런 의사들을 만났으면 하는 바람을 갖게 합니다.

'의사 지망생 궁금증 27문 27답'이 4장에 부록처럼 들어가 있어, 의사를 지망하는 사람들에게는 아주 유용한 정보가 될 것이며, 의사가 되기까지의 과정이 궁금한 사람들에겐 맞춤식 답으로 읽혀질 거라 생각됩니다.

의사가 되기까지의 과정, 의사들이 살아가는 그들만의 세계를 알아가는 것도 재미있지만, 다양한 병원, 다양한 과에서 어떤 병을 치료한다는 걸 좀 더 구체적으로 알게 되는 상식 수준의 의료지식도 얻게 되리라 기대됩니다.

덧붙이는 글 | <의사가 말하는 의사> / 지은이 이현석 외 25인 / 펴낸곳 부키(주) / 2017년 3월 3일 / 값 14,800원



의사가 말하는 의사 Episode 2 - 26명의 의사들이 솔직하게 털어놓은 의사의 세계

인도주의실천의사협의회 지음, 부키(2017)


#의사가 말하는 의사# 이현석 외 25인# 부키(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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