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오지 마을에 영준씨가 이룬 꿈의 결과를 보고 싶었다

아이들은 돌산을 1~2시간 걸어서 학교에 온다.
 아이들은 돌산을 1~2시간 걸어서 학교에 온다.
ⓒ 조수희

관련사진보기


공정 여행가 한영준씨는 볼리비아 오지 마을 뽀꼬뽀꼬에 학교를 세웠다. 이름조차 낯선 마을이지만, 영준씨가 이룬 꿈의 결과를 보고 싶었다. 영준씨는 뽀꼬뽀꼬에 있는 동안 환경이 좀 힘들 수 있으니 물, 음식, 텐트를 가져오라고 했다. 환경은 힘들지만, 분명 마을 사람들과 좋은 시간 보낼 거라는 말도 덧붙였다.

뽀꼬뽀꼬는 근처 도시 수크레에서 2시간을 차로 가야 갈 수 있다. 가는 길은 험난했다. 1시간쯤 달리니 차는 어느덧 울퉁불퉁한 비포장도로에 가드레일 하나 없는 절벽 산길을 가고 있었다. 고소공포증 환자인 나는 차창 밖만 슬쩍 넘겨봐도 손에 식은땀이 났다. 얼마 전에 온 큰 비 때문에 도로 곳곳에는 바윗덩어리가 굴러다녔다.

뽀꼬뽀꼬는 인구 700명, 해발 1800m에 위치한 오지다. 뽀꼬뽀꼬와 수크레를 오가는 버스는 매일 딱 1대만 있다. 전기는 마을 중심부 위주로만 들어오고, 인터넷은 영준씨의 몇 개월에 걸친 노력 끝에 올해 안에 설치가 예정됐다. 행정구역상 뽀꼬뽀꼬는 원래 수크레가 아닌 포토시 주에 속한다. 그러나 뽀꼬뽀꼬에서 포토시 주로 가는 도로가 없어 포토시 주에서 가난하고 멀리 떨어진 뽀꼬뽀꼬를 방치한다.

뽀꼬뽀꼬 마을
 뽀꼬뽀꼬 마을
ⓒ 조수희

관련사진보기


뽀꼬뽀꼬에 도착하니 점심시간이었다. 위생적으로 안전한 먹거리를 구하기 힘드니 물과 음식을 가져오라는 영준씨와의 말과는 달리 학교 영양사 선생님이 도착하자마자 와서 점심 먹으라고 했다. 점심 메뉴는 삶은 감자와 파스타. 음식이라고 해봐야 빵, 과일, 과자 정도만 가져 왔을 뿐인데 한 시름 놓았다.

뽀꼬뽀꼬 학교는 12시부터 시작한다. 12시부터 3시까지 초등학생 아이들 수업이 있고, 3시부터 6시까지 중고생 아이들 수업이 있다. 아이들은 내게 달려와 "Hola, Como te llamas?" '안녕하세요. 이름이 뭐예요?'라고 인사를 건넸다. 리 산드로라는 아이는 내가 가져온 우쿨렐레를 처보고 싶다고 계속 졸랐다.

리 산드로는 엄마와 단둘이 살고 있다. 집에 돌아가 봐야 할 일이 없으니 숙제를 느긋하게 해서 학교에 최대한 오래 남아 있었다. 레이디라는 여자아이는 나를 볼 때마다 사진 찍어 달라고 했다. 아이들은 나를 보고 낯설어하지 않았다. 작년 한 해만 200명의 한국인 후원자 방문객이 다녀간 덕이었다.

학교 아이들
 학교 아이들
ⓒ 조수희

관련사진보기


2층으로 된 건물에는 도서관, 교실 1개, 식당, 화장실 2개, 교사용 방 4개가 있다. 뽀꼬뽀꼬 학교는 아이들에게 놀이터 같은 곳이었다. 학교가 끝난 3시가 지나도 아이들은 빨리 집으로 돌아가지 않았다. 놀 거리가 없는 집보다 친구들도 있고 편의시설도 있는 학교가 아이들에겐 나았다. 아이들은 내 주위를 빙빙 맴돌며 놀아달라고 하고, 내가 알아듣든 말든 개의치 않고 스페인어로 계속 말을 걸었다.

마을 사람들도 나를 환영해 줬다. 아침에 동네 산책하러 나갔다가 우연히 마주친 둘리아는 20살, 젊은 아기 엄마였다. 안되는 스페인어로 어설픈 대화를 나누다 보니 둘리아의 집에 도착했다. 둘리아의 집에는 할머니부터 둘리아의 딸까지 4대가 같이 살았다. 내 기준으로 봤을 때 집안 세간살이는 단출하다 못해 궁핍했다.

마당은 시멘트 마감이 제대로 되지 않아 흙먼지가 날렸다. 주방이라고는 먼지 날리는 마당 한구석 모닥불, 마른 나뭇잎과 가지를 엮어 만든 그늘이 전부였다. 냄비는 다 찌그러지고 그을음이 잔뜩 묻어 요리할 수 있는지 의심스러울 정도였다. 상하 수도 시설 따위 없어 부엌에는 수십 마리의 파리가 날아다녔다.

말은 통하지 않아도 사람들 환대를 느낄 수 있었다

학교 아이들
 학교 아이들
ⓒ 조수희

관련사진보기


둘리아의 할머니, 어머니에게 인사를 하고 부엌에 나무판자를 깔고 앉았다. 할머니는 내게 "남편은 있니?"라고 물으신다. 남편은커녕 남자친구도 없다고 웃으며 말하자 할머니는 어떻게 그럴 수가 있냐며 화들짝 놀라신다.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때는 어느덧 점심시간. 둘리아의 어머니는 매운 감자조림을 점심으로 내놓았다. 수십 마리의 파리가 날아다니는 그 부엌에서 만든 요리다. 다행히 나는 비위가 좋은 편이여서 한 그릇을 다 먹었다. 둘리아의 어머니는 석류와 구아바 한 봉지까지 챙겨 주셨다.

뽀꼬뽀꼬 학교 아이들
 뽀꼬뽀꼬 학교 아이들
ⓒ 조수희

관련사진보기


뽀꼬뽀꼬 학교 아이들
 뽀꼬뽀꼬 학교 아이들
ⓒ 조수희

관련사진보기


뽀꼬뽀꼬에 오니 비록 말은 통하지 않아도 사람들의 환대를 느낄 수 있었다. 둘리아 뿐만 아니라 마을 어르신들은 내가 지나가면 앉아서 얘기 하다 가라고 나를 붙잡으셨다. 안되는 스페인어로 대충 손짓 발짓을 섞어 한국이 얼마나 먼지, 나는 왜 남편이 없는지(할머니들의 최대 관심사였다), 학교를 만든 영준씨와는 무슨 사이인지 매번 열심히 설명했다.

한달 동안 혼자 남미 여행을 하며 친구도 사귀지 못했고 혼자 밥 먹는 일이 태반이었다. 현지 사람과의 접촉도 거의 없었고, 돈 아끼겠다고 호스텔 부엌에서 혼자 파스타나 해 먹었다. 외로워 죽겠다고 매일 SNS에 우울한 글 따위나 남겼었다. 지속가능성, 대안적인 삶을 탐구하겠다고 떠난 여행이었지만 말도 안 통하는 남미에서 내가 원하는 주제로 여행하기란 쉽지 않아 더 우울했다.

뽀꼬뽀꼬에 5일 동안 있으며 남미 여행 내내 나를 따라오던 외로움은 사라졌다. 뽀꼬뽀꼬 마을의 가난함은 마을 사람들과 나의 마음을 전혀 잠식하지 못했다. 말도 안 통하는 나에게 어떻게든 한 마디라도 더 걸려고 다가오던 아이들, 며칠 있다가 가는 나에게 음식을 나눠주던 마을 사람들 덕에 혼자 지내며 우울했던 남미 여행의 기억을 지우고 다시 길을 떠날 힘을 얻었다.



태그:#세계일주, #볼리비아, #지속가능성, #NGO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