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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유문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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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양으로 돌아가는 기차에 올랐다. 박근혜 파면과 마무리 촛불축제까지 모두 보았다. 시원섭섭하기도 하고 맥이 풀려 팔다리가 흐느적거리기도 한다. 멍하기도 하다.

10년 전, 산골 처가로 귀농해서 얌전히 유기농 농사짓던 순둥이가 갑자기 용맹한 아스팔트 농사꾼이 되어 서울살이 얼마던가? 그동안 몸도 많이 상하고, 적지 않은 가산도 탕진하고, 농사도 제대로 짓지 못했다.

이제 이것으로 더는 아스팔트 농사 지으러 서울행 기차에 오를 일이 없을까? 트럭 끌고, 트랙터 끌고 서울로 올 일이 없을까? 촛불 승리 축제와 환호가 한없이 기쁘면서도 마음이 갈피를 잡지 못한다.

농사꾼으로 산 지난 10년은 농촌에 대한 환상과 로망이 처참히 무너지는 세월이었다. 농사꾼이 되기 전 녹색평론을 오랫동안 읽고 석유에 기반한 산업문명과 자본주의의 근본적 문제를 깊이 고민한 끝에 농사꾼이 되었음에도 그렇다. 스콧 니어링의 자서전과 < Living The Good Life>를 읽고 그가 말한 444 원칙에 따라 농사일 하고, 문화적 삶을 누리고, 사회참여를 하는 삶을 꿈꾸었다.

막상 현실로 마주한 농촌과 농민, 농사의 현실은 솔직히 지옥도나 다름없다. 쓰레기장이나 다름없이 파괴되고 더렵혀진 농촌, 수탈되다 못해 자포자기 농사를 짓는 뿔뿔이 흩어진 농민, 생명으로 대접하지 않고 먹고사니즘과 돈으로만 환산되는 농업. 내 눈에 농촌은 아비규환의 연옥이다.

농사를 시작하고 인류는 문명이라는 단계로 돌입했다. 신분제, 계급제는 농사를 통한 자연파괴가 있었기에 가능했다. 인간이 인간을 착취하는 인간 심성의 파괴의 시원은 농업혁명에 있다. 인간 심성만 파괴된 것이 아니다. 농업혁명이라고 하지만 지구 자연계의 입장에서는 재앙이었다. 석탄과 석유를 마구잡이로 파내 쓰면서 가능해진 산업혁명은 농업혁명의 변형일 뿐이다.

농사를 지으면서 유구한 농업혁명의 실체와 산업혁명의 이중모순이 응축된 농촌의 비참함에 절망했다. 내가 백남기 농민께서 물대포를 맞는 순간 세상으로 뛰쳐 나간 건 이미 내 안에 응축된 분노와 한탄이 임계점을 넘었기 때문이기도 하다. 백남기 농민 물대포 사건은 현상적으로는 박근혜 정권의 패악이지만 근본적으로는 우리 문명의 밑바탕에 깔린 패악성과 패륜성을 보여주는 것이다.

촛불 승리 축제, 일상의 혁명 다 좋은 현상이다. 그렇게라도 이 세상이 조금씩 나아진다면 얼마나 좋을까? 그러나 우리가 바라는 세상이 이 세상의 근원적 모순을 직시하지 않고 현상에만 머물러 있음에 슬픔이 인다. 소멸되는 시골에 살기에 그런 모습이 내 눈에는 잘 보인다. 내가 돌아가는 농촌이 연옥이듯이 서울도 지옥이다. 단순히 민주주의, 좋은 대통령, 비정상의 정상화로만 해결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지인의 충고대로 한 번에 모든 것이 변할 수는 없다는 말이 맞을 수도 있다. 하지만 난 촛불광장에 사람들이 모여 외치듯이 우리의 인식이 좀 더 근본적인 곳으로 향하는 사람들이 많을수록 세상은 더 빨리 변한다고 생각한다. 일상의 여러가지 관습과 고정관념, 습속에 젖어 그 너머를 보지 못하기에 세상은 더디 변하기도 하고 더 많이 망가지기도 한다.

정치? 중요하다. 그러나 그 정치가 수구정당과 보수정당의 시소게임이어서야 무슨 의미가 있을까? 이명박·박근혜 정권 때보다 김대중·노무현 정권 때가 더 낫지 않았느냐고 말한다. 몇몇 분야에서 개선과 개혁이 있었던 건 사실이다. 하지만 자연환경을 무작스럽게 파괴하는 토건족의 세상, 이 사회 절대 다수인 노동자-농민의 때려죽이고 가두는 세상은 두 기득권 엘리트 담합 체제에서 바뀌지 않았다.

이번 주말이 지나고 촛불 승리의 기쁨이 가라앉을 때면 우리는 차분히 이 세상에 대해 따져 보았으면 한다. 이 세상이 아비규환 지옥이 아니라 뭇생명과 인간이 공존하고 사는 평화세상이 되려면 우리가 무엇을 해야 하는지 생각해 보았으면 한다. 정치를 바꾸는 것은 기본이고 내 삶을 어떻게 바꿔야 하는지 생각해 보았으면 한다.

나 역시 내 자리에 다시 서서 유기농에 안주하며 자위하지 않으려 한다. 생명과 공생하는 더 나은 농사법은 무엇인지 고민해 보려 한다. 서로 시샘하고 증오하고 할퀴는 사이를 넘어설 방법은 무엇인지 생각해 보려 한다. 두렵다. 광장보다 무서운 곳이 삶터이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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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북 단양에서 유기농 농사를 짓고 있는 단양한결농원 농민이자 한결이를 키우고 있는 아이 아빠입니다. 농사와 아이 키우기를 늘 한결같이 하고 있어요. 시골 작은학교와 시골마을 살리기, 생명농업, 생태운동을 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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