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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유문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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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혜 탄핵 파면 첫 날이 지났다. 헌법재판소에서 역사적인 탄핵 판결 순간을 지켜보고 단양으로 돌아가려던 일정이 우연인듯 필연인 듯 뜻하지 않게 바뀌었다.

사정은 이렇다. 그저(3월 9일)께 상경을 했다. 호기롭게 박근혜 탄핵 파면 8대0을 페이스북에 선언하고 거금 오백원을 걸었다. 평소 관상쟁이 재주가 있다고 주위에서 얘기를 들은데다 백남기 농민 투쟁에 참여하고부터 샤먼의 능력까지 생겼다.

아스팔트 농사 지으며 현장민심, 바닥민심, 역사적인 큰 흐름을 읽는 안목이 생겼다고 자신했다. 4.13 총선 여소야대를 맞췄고, 백남기 농민 서울대병원 부검정국 승리를 맞췄다. 이재용 구속도 맞췄다. 탄핵 8 대 0도 확신했다.

겉마음과 달리 시간이 다가올수록 내면 깊은 곳에서 불안이 밀려왔다. 아무래도 안되겠다 싶어 서울에 와서 촛불집회에 참가했다. 촛불에너지를 헌법재판소에 마지막으로 보냈다.

어제 11시. 이정미 재판관이 박근혜를 파면한다는 발표를 듣고 일말의 걱정을 했던 최악의 상황을 피했다는 안도를 했다. 박근혜 하나 쫓아내는 것이 이리도 힘든가 하는 자괴감도 들었다. 한편으로는 4개월이 넘도록 펼쳐진 1500만이 넘는 촛불 민주주의의 대역사가 승리한 짜릿한 감격도 밀려왔다.

만감이 교차하니 눈물도 나고 팔다리도 흐느적거렸다. 8.15 독립을 맞은 독립군과 민중의 미음이 이랬을까? 10월 25일 저녁 6시, 백남기 농민 장례식장에서 경찰들이 물러날 때 울었다. 12월 9일 오후 네 시, 전봉준투쟁단이 되어 사투를 벌이며 트랙터 몰고 국회에 도착해 박근혜 탄핵 가결한다던 정세균 국회의장의 발표를 듣고 울었다. 3월 10일 오전 11시, 박근혜 탄핵 파면 소식에 또 울었다. 투쟁은 눈물인가?

감격의 여운을 마음에 담고 헌법재판소로 향했다. 안국역을 나서자마자 탄기국 태극기 늙은이들이 좀비처럼 달려들어 때리고 발로 찼다. 박정희 신의 딸 박근혜가 초라하고 비루한 인간임을 인정할 수 없는 퇴물들의 발악이었다.

폭행을 당하고 잠시 뒤 우연인지 필연인지 단양에서도 전화가 왔다. 단양군 박근혜퇴진행동 동지가 단양촛불집회를 취소하자는 지역여론을 알려왔다. 박근혜가 탄핵된 마당에 불필요하게 실망한 사람들을 자극할 필요가 없다는 의견이었다.

난 그동안 박근혜와 개누리당 지지가 압도적인 단양군의 의식개혁과 향후 지역정치개혁을 위해 어려운 상황에서도 촛불을 이끌었다. 정작 축하와 기쁨을 누려야 할 자리를 접어야 하는 상황과 탄기국의 난동이 겹쳐졌다. 박근혜 탄핵 파면의 기쁨이 싸늘히 식었다.

이 땅의 냉엄한 현실이 내게 동시에 다가왔다. 기차역으로 가던 발걸음을 돌려 광화문광장으로 돌아왔다. 헌재 탄기국과 단양에서 불어온 찬바람에 얼어붙은 내게 봄볕이 내리쬐었다. 촛불시민들의 밝은 웃음이 들려왔다. 이곳은 봄이다. 이곳은 해방구다. 이곳은 꼬뮌이다. 얼어붙은 몸과 마음이 봄눈 녹듯 녹아내렸다.

오후 내내 광화문 촛불광장에서 촛불시민 자유발언을 듣고, 구호를 외치고, 노래를 부르고, 촛불을 들었다. 그래, 지금 이 순간을 즐기자. 하늘문이 활짝 열리고 봄볕이 쏟아져 내리지 않는가? 광장에 춤추는 촛불과 하늘에 그려진 달빛이 아름답지 않은가?

단양에서 또 다른 전화가 왔다. 단양군농민회 70대 농민이다.

"유 회장 한결 애비, 수고 많았어. 백남기 회장 때부터 겨울 아스팔트 바닥에서 고생한 보람이 있네 그려. 난 아까 탄핵 발표날 때 조마조마 하더라고. 박근혜가 탄핵 되니까 유 회장 생각이 나더라고. 그래서 전화 했지. 여직 서울이라고? 그려, 신나게 놀고 풀고 내려 오게. 여기서도 한잔 하고. 이제 농사 시작해야지?"

그렇다. 백남기 농민 때부터 따지니 겨울이 두 번 지났다. 달 수로는 15개월, 날 수로도 5백일이 다 되었다. 그동안 서울대병원 농성장, 장례식장, 대학로, 서울시청광장, 광화문광장, 청와대 앞에서 수도없이 촛불을 들었다. 우연인지 필연인지 또 한번 광화문에서 촛불을 든다. 오랜 싸움의 한 매듭을 짓는 촛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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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북 단양에서 유기농 농사를 짓고 있는 단양한결농원 농민이자 한결이를 키우고 있는 아이 아빠입니다. 농사와 아이 키우기를 늘 한결같이 하고 있어요. 시골 작은학교와 시골마을 살리기, 생명농업, 생태운동을 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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