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전 시엄니께 전화가 왔다. 대뜸 "혜원아, 내일 집에 있냐?" 하고 물으신다. 산골 사는 며느리, 어디 출근하지 않고 집에 콕 박혀 있는 줄 뻔히 아시면서도 저렇게 물으시는 까닭은 단 하나.
"오늘 오후에 택배 좀 부치련다. 가래떡 선물이 들어왔거든. 양이 꽤 많다. 받으면 아마 좀 놀랄걸?""어머니, 안 그래도 전에 보내주신 떡 다 먹었는데, 어떻게 아셨어요? 간식으로도 밥 대신으로도 먹다 보니 금세 먹네요. 저 내일 집에 있어요. 보내주시면 잘 먹겠습니다.""굴 얼린 것도 넣을 테니 해동해서 먹어라. 어묵도 하나 사서 같이 넣어줄까?""겨울이라 그런지 어묵을 자주 먹어서 집에 많이 쟁여 놨어요. 어묵은 괜찮아요, 넣지 마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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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적당히 무거운 택배 상자 도착. 상자 뚜껑을 여니, 바로는 정체를 모르겠는 비닐봉지가 가득하다. 종합선물세트라도 앞에 둔 것처럼 마냥 설렌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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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닐봉지 가득한 음식들, 이건 '종합선물세트' 다음 날 오후, 적당히 무거운 택배 상자 도착. 상자 뚜껑을 여니, 바로는 정체를 모르겠는 비닐봉지가 가득하다. 은근 설렌다. 종합선물세트라도 앞에 둔 것마냥. 비닐봉지가 많은 걸 보니 가래떡과 굴 말고도 분명 뭔가 더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아니나 다를까, 어머니 말씀대로 대량의 가래떡과 함께(알록달록 여러 빛깔 떡은 기본) 생선 거리가 가득하다. 예쁘게 거절했던 어묵 한 봉지도 끝내 담겨 있다.
요즘 왜 그런지 생선이 자꾸 먹고 싶었는데, 시점 참 기막히다. 다른 땐 생선을 보면 비릿한 기운을 먼저 느끼곤 했는데 이날은 보기만 해도 군침이 돌았다. 정말 생선이 먹고 싶긴 했나 보다(태어날 때부터 고기는 몸에서 받지 못해 아예 못 먹고, 닭고기도 당근 못 먹고. 그런 특이 체질인 내 몸에서 단백질 빈고리를 채워 주던 달걀도 요즘 양껏 못 챙겨 먹고. 게다가 겨울이고……. 나름 분석해 본, 내가 요즘 생선이 당기는 까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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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상자를 여니 대량의 가래떡과 함께(알록달록 여러 빛깔 떡은 기본~) 생선 거리들이 가득하다. 예쁘게 거절했던 오뎅 한 봉지도 끝내 담겨 있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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택배 받고서 전화드린다.
"어머니, 생선 엄청 많네요! 제가 요즘 생선이 막 당겼는데, 어떻게 아셨어요? 그런데요, 굴이랑 같이 있는 노란 생선은 뭐예요?""그거, 큰애네 부부가 결혼기념일에 제주도 여행 다녀와서 나 먹으라고 준 돔이다. 이거, 너네 줬다고 큰애한테 말하면 절대 안 된다. 프라이팬에 기름 조금 두르고 구워 먹으면 맛있을 거다.""걱정 마세요. 말씀 안 드릴게요."'귀한 돔인데, 어머니가 드시지, 왜 보내셨어요…….' 마음속에서 풀썩 솟구치는 이런 말, 이젠 하지 않으련다. 이미 보내신 거, 잘 먹어드리는 게 효도일 테니. 실은, 얼린 건데도 냄새가 구수하고 빛깔도 고와서 음식 욕심 잘 없는 나인데 먹어보고픈 마음이 다 일어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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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요즘 왜 그런지 생선이 자꾸 당기던데, 시점 참 기막히다. 다른 땐 요리 앞둔 생선 재료를 보면 비릿한 기운을 먼저 느끼곤 했는데 이날은 생선을 보기만 해도 군침이 다 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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떡보다 생선에게 눈길을 주며 행복한 상상 시작.
'얼린 고등어는 조림하고, 얼린 오징어는 볶음도 하고, 김치전도 하고. 돔은 살살 구워 먹고. 어? 근데 얼린 굴은 뭘 해 먹지? 그나저나 어머니 말씀처럼 가래떡 깜짝 놀랄 만큼 많이 보내셨네! 떡국도 해 먹고, 떡볶이도 해 먹고, 가래떡 구이도 해 먹고. 사람들 초대해서 가래떡 잔치라도 벌여 볼까나?' 상자에서 꺼낸 먹을거리들 차곡차곡 정리하는데, 울 시엄니, 꼭 산타할머니 같다. 떡 떨어진 건 어찌 아셨고, 생선 먹고 싶은 건 어찌 눈치채셨고, 무엇보다 오징어 넣고 김치전 한번 해 먹고 싶던 요 마음은 또 어찌 읽으셨는지…….
'혜원아, 내일 집에 있냐?' 시엄니, 아니 산타할머니의 정다운 전화 목소리가 다시금 들리는 듯하다. 받기만 하는 못난 자식들. 설 때 뵈면 용돈 봉투 좀이라도 두둑이 건네 드려야겠다. 그러기 위해서라도 열심히 살면서, 기쁜 마음으로 돈도 정성껏 벌어야겠다. (귀촌 전에는 적긴 해도 달마다 꼬박꼬박 용돈을 드릴 수 있었는데. 귀촌한 뒤에는 무슨 무슨 날 때만 간신히 얇은 봉투 건네 드리며 지내온 몇 년, 늘 죄송하기만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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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엄니 말씀처럼 깜짝 놀랄 만큼 많은 가래떡이 왔다. 떡국도 해 먹고, 떡볶이도 해 먹고, 가래떡 구이도 해 먹고. 사람들 초대해서 가래떡 잔치라도 벌여야 하려나 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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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골 사는 시간이 쌓이면서 시엄니께도 조금씩 정이 쌓여간다. 그러면서 '시'엄니가 조금씩 그냥 엄니처럼 느껴지려고 그런다. 하늘에 계신 울 엄니, 나 이렇게 시엄니랑 조금씩 친해져도 괜찮죠? 그래도 질투, 안 하실 거죠?ㅜㅜ (훈훈한 시엄니 이야기, 시작할 때는 당근 눈웃음 이모티콘으로 마무리할 줄 알았건만. 쓸데없이 하늘에 잘 계실 친정엄마를 건드려서 어쩔 수 없이 눈물 이모티콘으로 마무리……. 제목에라도 눈웃음으로 시작해서 그나마 다행. 못난 며느리에 못난 딸 같으니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