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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이즈 감염인들에게는 병원의 문턱이 누구보다 더 높다.
 에이즈 감염인들에게는 병원의 문턱이 누구보다 더 높다.
ⓒ 대한에이즈예방협회 대구경북지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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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잇몸이 흘러내린다 해도 치과 갈 자신이 없어요. 특수 장갑이 없다, 가림막이 없다, 전용 의자가 없다며 돌려보는 병원이 많거든요. 어렵게 치료를 받는다 해도 의료진의 얼굴에서 드러나는 경멸 어린 표정과 감염될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의 시선을 극복하기가 정말 어려워요."

HIV/AIDS(후천성면역결핍증, 에이즈) 감염인들이 상담하면서 하소연하는 말입니다. 이들에게는 병원의 문턱이 누구보다 더 높습니다. 특히 치과 가기는 정말 두렵다고 합니다. 당장 치료가 시급해도 이런 모욕감을 참고 치료를 받거나 아니면 치료를 포기하는 것밖에는 다른 방법이 없습니다.

대한에이즈예방협회 대구경북지회에 상담을 받기 위해 오는 감염인의 대다수는 치아가 듬성듬성 빠져있거나 아예 잇몸이 내려앉아 충치로 고통을 호소합니다. 이런 감염인들의 치과 치료를 위한 이동치과버스가 있지만 치료를 받아야 하는 감염인의 수요에 비해 턱없이 부족합니다.

지난해 10월 HIV/AIDS 감염인 중 한 사람은 스케일링을 받기 위해 병원을 방문했습니다. 진료를 위한 준비가 덜 되었다는 병원 측의 말에 따라 이미 한차례 예약이 연기된 뒤였습니다. 하지만 그가 안내되어 간 곳은 일반진료실이 아닌 장애인 구강진료실이었습니다. 그 방은 진료용 의자와 칸막이, 주변 기구까지 온통 비닐이 장막처럼 에워싸고 있었습니다.

그는 "내가 이렇게 더럽고 무서운 병에 걸린 사람이구나"라는 자괴감이 들었지만 수모는 그것으로 끝나지 않았습니다. 이후 돌아오는 비난은 도저히 견디기 힘들 정도였습니다.

당시 감염인의 병원 치료에 대한 사건이 기사화되자 그에게 수많은 비난의 댓글이 쏟아졌습니다. 그 댓글은 '비닐장막'을 뛰어넘은 '폭력' 수준이었습니다. 댓글에는 '에이즈환자가 스케일링을 하겠다고 하는 게 우습구먼', '병원이 잘하고 있구만 뭐가 문제', '무슨 인권침해? 치료해 주는 걸 고맙게 생각해야지' 등의 막말로 가득 찼기 때문입니다.

그는 "의료인조차 환자를 차별하고 혐오하니까 일반인들의 반응은 오죽하겠어요"라며 "댓글을 읽고 나니 살고 싶은 힘이 없어지더라고요. 나는 살 가치가 없구나 하는 자괴감이 들었지요. 이제 죽을 지경이 되어도 병원에 가지는 못할 것 같아요"라고 말했습니다.

에이즈 감염인을 둘러싼 편견의 장막, 걷어내야

세계 에이즈의 날(12월1일)을 하루 앞둔 지난 2014년 11월 30일 오후 서울 보신각 앞에서 한 시민이 '나는 에이즈 감염인, 꼭 안아주세요'라고 적힌 팻말을 든 채 프리허그를 요청하고 있다.
▲ '나는 에이즈 감염인, 안아주세요..' 세계 에이즈의 날(12월1일)을 하루 앞둔 지난 2014년 11월 30일 오후 서울 보신각 앞에서 한 시민이 '나는 에이즈 감염인, 꼭 안아주세요'라고 적힌 팻말을 든 채 프리허그를 요청하고 있다.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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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자에 대한 의료거부는 명백히 법률위반입니다. 의료법 제15조(진료거부 금지)에 의하면 의료인은 진료나 조산 요청을 받으면 정당한 사유 없이 거부하지 못합니다. 이를 위반하게 되면 1년 이하의 징역이나 500만 원 이하의 벌금에 처해질 수 있습니다.

굳이 법률을 따지지 않더라도 누구나 아프면 치료를 받아야 합니다. 인간의 생명은 존엄하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혐오한다는 이유로 치료를 받지 못하는 것은 원시시대에나 가능하기 때문입니다.

헌법에도 모든 국민은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가치를 가지며 행복을 추구할 권리를 가진다고 되어 있습니다. 특히 국가는 개인이 가지는 불가침의 기본적 인권을 확인하고 이를 보장할 의무를 진다고 되어 있습니다.

HIV/AIDS는 침과 땀, 공기로는 전혀 감염되지 않는다는 것은 이미 오래 전에 판명났습니다. 지금은 치료약의 개발로 당뇨병, 고혈압과 같은 만성질환처럼 약을 복용하면 평생 살 수 있다는 것도 증명되었습니다.

약자의 권리가 보장된다면 다수의 권리도 보장받을 수 있다는 인권의 기본 개념에 비추어 생각해본다면, 무지와 편견의 비닐장막을 씌우는 사람들과 그 비닐장막 속에서 모욕적인 치료를 받아야 하는 사람들 중에 후자의 권리가 우선 되어야 함은 자명하다고 생각됩니다.

후천성면역결핍증예방법, 의료법, 감염병의 예방 및 관리에 관한 법률, 국가인권위원회법 등 여러 법이 있지만 사회적 낙인으로 의료접근이 어려운 감염인에게는 법 보다 사회의 따뜻한 시선이 더 중요합니다.

그런데도 법은 편견과 무지로 소외당하는 감염인에게 최소한의 생명줄이나 마찬가지입니다. 차가운 사회적 냉대를 이겨내기 위해서는 공정하고 평등한 법률적 환경이 중요하기 때문입니다.

치아가 빠져도 병원에 가기를 포기하는 감염인과 감염인을 대하는 비감염인간의 경계를 허물 수 있다면 우리 헌법 제10조는 유효하며 유의미하다고 봅니다. 왜냐하면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고 모든 국민에게는 스스로 치료받을 권리를 보장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덧붙이는 글 | 이 글을 쓴 이도원씨는 (사)대한에이즈예방협회 대구경북지회 활동가입니다.



태그:#HIV, #에이즈, #감염인, #HIV/에이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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