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를 쓰며 아주 특별하게 기억해야 할 필요가 있을 때 날짜를 함께 기록해둔다. 한계령 노래가 된 <한계령에서 1>을 썼던 1981년 10월 3일이 그랬고, 꼭 10년 뒤인 1991년 10월 3일에 쓴 <한계령에서 2>가 그랬다. 이제 오늘을 오랜 세월이 흘러도 잊지 않으려 날짜를 기록해두며 시 한 편 썼다.
광장에 깃발 나부낀다광장엔 바람 불고 깃발 나부낀다광장엔 함성 가득하고 염원은 하늘로 치솟았다망설이지 말고 나가 기필코 찾자 우리의 희망사람답게 살 수 있는 자유 아닌가짐승의 세상 아닌 사람 사는 세상다시 찾자는 함성깃발 가득 나부낀다꽃 향 가득 번질 줄 믿었니 어리석게모른 척 외면하면 감춰질 줄 알았니 바보같이그런 어리석음과 바보스러움이배신에 치를 떨며이 차가운 광장으로 우리를 나서게 했다설마 아닐거라고아니 아니라고 언제까지 그럴래계절은 깊어 차가운 바람 우는데이제 다시 돌아서기엔 지나친 길목 멀다다시 돌아서기엔 지나친 길목 멀다원수 마귀 맞서 싸울 때뒤로 물러설 자리 미리 살피지 말라흉측한 저 무리 놓아줄 이유 찾지 말라은혜 베풀어 덕 본다 생각 아예 마라그들 자라 부릴 패악질또 다시 이 광장에 나서야 된다외면하면 안 된다사나운 저들 감춘 발톱양의 탈을 쓰고 선한 척거짓 눈물 속으면 기어코 드러내무참히 당하니 끝까지 단죄하라진군의 북 이미 울렸다광장엔 함성 가득하다밀고 나가 이겨 찾을 목적 사람다움 아닌가광장엔 바람 불고 깃발 나부낀다광장엔 함성 가득하고 염원은 하늘로 치솟았다망설이지 말고 나가 기필코 찾자짐승의 세상 아닌 사람 사는 세상다시 찾자는 함성깃발 가득 나부낀다- 2016. 11. 24 광화문광장 캠핑촌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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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낭송 장성하 작가가 촬영해 준 시낭송 모습으로 갑작스럽게 현장에서 불려나가 ‘한계령에서 1’을 낭송했다. 자신의 시를 낭송하는 게 대단할 일도 없지만 낭송 직후 몇 분이 다가오셔서 “박근혜에게 들려주면 딱 좋을 시”라며 “어떻게 그 긴 시를 모두 외우냐”고 한다. 이젠 내가 쓴 시를 다 외우진 못하지만 정말이자 거의 모든 자작시들을 외웠던 적이 있다. |
ⓒ 장성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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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 없이 나왔던 광화문광장이지만 지금은 이곳 광장에서 많은 이들과 함께 찬바람 무릅쓰고 텐트에서 생활한다.
솔직하게 말하면 산에서 캠핑을 할 때보다 더 힘들다. 물을 사용하는 것부터 시선을 돌려봐야 날카롭기만 한 도시의 풍경까지 모두 지치고 힘겹다.
다행이라면 화장실 사용에 큰 문제가 없다는 것 정도다.
지난 22일엔 광장에 갑작스럽게 불려나가긴 했지만 <한계령에서 1>을 낭송했다. 낭송을 들은 이들이 말했다.
"한계령이 딱 박근혜한테 들려주고 싶은 노래고 시네요. 내려가라 하고, 잊으라 하니 말입니다."이 광장에서 몇 편의 시를 쓸지는 아직 모른다. 그러나 지금의 이 기억들이 앞으로 쓸 글과 시에서 다양한 방법으로 녹여질 것이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정덕수의 블로그 '한사의 문화마을'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