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최순실 국정농단' 사태로 정국이 한 치 앞을 내다보지 못한 가운데 박근혜 대통령이 지난 4일 대국민 담화문을 발표했다. 본인의 정치적 타격은 물론 최측근들이 줄줄이 검찰 조사를 받는 것에 따른 결정이었다. 이날 담화문은 지난 10월 25일 이후 두 번째로 발표된 것으로 현 사태에 대한 대통령의 사과가 담겨있다.

하지만 이날 대통령의 사과는 싸늘한 여론을 잠재우지 못했다. 이날 발표된 갤럽조사 결과에 따르면, 박 대통령에 대한 국정 지지도는 5%로 나타났다. 헌정 사상 최저치다. 야당은 사과의 진실성이 떨어진다며 담화문을 평가절하 했다. 5일에는 20만명이 넘는 시민들이 광화문 일대에서 촛불을 들었다. 시민단체, 학교 등은 시국선언을 이어가며 대통령에 대한 압박수위를 높여갔다.

이번 사태의 본질과는 별개로 대통령의 사과전략은 문제가 없었을까? 김영욱, 양정은 연구자가 쓴 '한국인의 사과지형'이라는 논문을 통해 박근혜 대통령이 발표한 두 차례의 담화문을 분석했다.

일상에서 자주 쓰이는 '사과전략'

 박근혜 대통령이 지난 4일 대국민담화를 하고 있다.
 박근혜 대통령이 지난 4일 대국민담화를 하고 있다.
ⓒ 청와대

관련사진보기


사과는 우리 일상에서 자주 하는 일이다. 사소한 말다툼을 하거나, 실수 혹은 고의로 잘못을 했을 경우 화해와 용서를 구하기 위해 사과를 한다. 학술 논문을 보지 않더라도 우리는 사과에는 몇 가지 유의사항이 있음을 안다. 자신의 잘못을 인정 하거나, 앞으로는 어떻게 할 것인지 대책을 세우는 것 등이 대표적이다.

사과의 효과를 높이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할까?  김영욱 교수는 사과를 할 때 "대중이 잘 이해할 수 있는 단어를 사용하고, 이야기 구조로 말해야 한다"고 했다. 사과 메시지에는 당사자의 진정성, 미래 전망 등이 포함 돼야 하는 것으로 풀이할 수 있다.

사과전략은 해외에서도 활발히 연구되고 있다. 위기 커뮤니케이션의 대표적 학자인 베노이트는 이미지 회복 방법으로 크게 다섯 가지 전략을 제시했다. 부인, 책임회피, 피해축소, 개선행위, 사과가 그것이다. 그는 사과가 가장 효과적이며 필수적인 전략이라고 소개했다. 쿰즈 또한 위기 속성과 발전단계 등을 고려했을 때 가장 적절한 이미지 회복 전략은 사과라며, 사과는 조직의 진정성을 보여주고 대중과의 지속적인 관계를 형성하는데 중요한 역할을 한다고 주장했다.

■ 박 대통령 사과전략, '초월전략'이 눈에 띄어 

 박근헤 대통령이 지난 4일 머리 숙여 사과하고 있다.
 박근헤 대통령이 지난 4일 머리 숙여 사과하고 있다.
ⓒ 청와대

관련사진보기


지난 2000년 7월부터 2010년 6월까지 정부와 기업, 개인 등이 발표한 89건의 사과문을 분석한 김영욱 교수의 연구에 따르면, 정부가 사과문을 발표 할 때 '초월전략'을 가장 많이 쓰인 것으로 확인됐다. 초월전략은 사과를 할 때 '국민을 위해 일하다 보니 부득이하게 잘못을 저질렀다'는 주장을 담고 있다.

즉, 국민이라는 초월적 존재를 부각함으로써 자신의 잘못과 책임을 희석시키려는 의도다. 대통령 등 권위자의 이 같은 전략은 체면의식과 관련이 깊다. 체면은 우리나라의 중요한 문화적 특징 중 하나로 권위자가 남에게 사과를 회피하기 위해 쓰는 방법 중 하나다. 박 대통령이 발표한 두 차례의 담화문(사과문)에도 이 같은 전략이 확인됐다. '초월전략'이 담긴 박 대통령의 담화문을 살펴봤다.

"저의 선거운동이 국민들에게 어떻게 전달됐는지에 대해 개인적인 의견이나 소감을 전달해주는 역할을 했습니다(2016-10-25, 1차 담화문)"

"국가 경제와 국민의 삶에 도움이 될 것이라는 바람에서 추진된 일이었는데 그 과정에서 특정 개인이 이권을 챙기고 여러 위법 행위까지 저질렀다고 하니 너무나 안타깝고 참담한 심정입니다(2016-11-04, 2차 담화문)"

박 대통령은 '국민과 나라를 위한다'는 명분을 내세움으로써 자신과 정부의 체면을 지키려는 모습을 보였다. 하지만 이러한 담화내용은 갈등 해소에 큰 도움을 주지 못한다. 사과문 이후 불거진 싸늘한 여론과 야당의 비판적 목소리가 이를 잘 설명해주고 있다.

'희생양 만들기', '입지 강화'로 돌파구 마련하기도 

위기가 발생했을 때 책임자는 종종 '개인적 일탈'로 규정한다. 책임을 본인이 지기보다 다른 사람에게 떠넘기는 전략으로 일종의 '희생양 만들기'다. 위기를 개인화함으로써 조직 전체의 체면이 손상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한 시도로 볼 수 있다. 그러나 이 방법 역시 문제 해결을 어렵게 할 수 있다. 다음 사례가 대표적이다. 박 대통령은 이번 사태를 특정 개인의 사건으로 치부했고 본인은 그 책임에서 한 발 물러나려는 모습을 보였다.

"존경하는 국민 여러분, 먼저 이번 최순실 씨 관련 사건으로 이루 말할 수 없는 큰 실망과 염려를 끼쳐드린 점 다시 한 번 진심으로 사과드립니다(2016-11-04, 1차 담화문)"

'입지 강화'전략도 빈번하게 사용된다. 이는 우리나라의 '정(情)' 문화와 관련된 것으로 당사자가 이전의 선행을 드러냄으로써 선처를 호소하는 방법이다. 또 본질과 다른 사건을 말함으로써 돌파구를 마련하려는 의지도 포함된다. 하지만 자칫 자신의 행위를 정당화 혹은 책임을 축소하려는 의도로 비칠 수 있으며 사과의 진실성을 의심 받을 수 있다. 다음과 같은 내용이 대표적이다.

"저로써는 조금 꼼꼼하게 챙겨보고자 하는 순수한 마음으로 한 일인데 이유여하를 막론하고 국민 여러분께 심려를 끼치고 놀라고 마음 아프게 해 드린 점에 대해 송구스럽게 생각합니다(2016-10-25, 1차 담화문)"

"국민 여러분, 지금 우리 안보가 매우 큰 위기에 직면해 있고, 우리 경제도 어려운 상황입니다. 국내외의 여러 현안이 산적해 있는 만큼 국정은 한시라도 중단되어서는 안 됩니다(2016-11-04, 2차 담화문)"

"저는 청와대에 들어온 이후 혹여 불미스러운 일이 생기지 않을까 염려하여 가족과의 교류마저 끊고 외롭게 지내왔습니다(2016-11-04, 2차 담화문)"

담화문에 담겨진 박 대통령의 사과전략은 크게 '초월전략'과 '희생양 만들기', '입지강화'로 나타났다. 대부분 체면, 정에 의존한 내용이었다. 김 교수는 이 같은 사과전략에 대해 "인정(人情)에 약한 한국인의 문화적인 특징이 반영됐다"며 "동정표현, 애매모호함 등으로 자신의 체면을 유지하기 위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사실 이러한 사과방식은 우리 일상에서 흔히 발견된다. "예전에는 잘 했잖아~ 이번만 봐줘" 라거나 "다 이유가 있어서 그런 거야 미안해"는 등의 표현이다. 친한 사람과의 관계에서는 적절하다고 볼 수 있지만 대통령의 담화문에는 그렇지 않다. 이성보다 감정에 치우진 사과는 오히려 사태를 더욱 키울 뿐이다.

최순실 국정농단 사태에서 박 대통령은 사건의 책임으로부터 하루 빨리 벗어나려는 모습을 보였다. 사과문에 진실성과 순수성이 의심받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때문에 국민들은 분노를 삼키지 못하고 있으며, 박 대통령이 이번 사태의 총 책임자로서 합당한 처벌을 받길 원한다. 현 상황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박 대통령이 적극 나서야 한다. 진솔한 사과와 명확한 대책이 필요할 때다.


#박근헤대통령#최순실게이트#박근헤게이트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