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늦잠을 자기엔 너무 설레는 아침이었다. 전날의 피로와 걱정은 어디로 사라졌는지 모두가 즐거운 마음으로 아침 일찍 일어나 호텔 로비로 내려갔다. 조용한 호텔로비에서 셀카도 찍고 호텔 앞 골목길에서 상쾌한 아침 공기도 마시며 하루를 시작했다.

호텔 조식뷔페는 어딜 가나 비슷하다. 특색없는 빵과 음료로 즐비한 아침을 먹으러 갔다.

"햄이 왜 이리 짜냐?"
"바게트가 너무 딱딱한데!"
"베이컨을 튀겼냐, 왜 이리 딱딱하고 비틀어졌지?"
"와~ 플레인 요거트 종류가 엄청난데!"

투덜대긴 했지만 즐거운 수다였다. 온 가족이 파리 하늘 아래서 첫 끼를 먹고 있다는 것 자체가 꿈만 같았다.

식사가 끝나고 우리는 맨 먼저 파리의 상징, 에펠탑에 가보기로 했다. 첫 번째 서바이벌 과제는 '지하철표' 구입하기였다. 여행책자를 꺼내놓고 읽어가며 파리 시내에서 온종일 사용할 수 있고, 박물관 할인도 되는 표를 사 보려했지만 지하철표 자판기는 우리 마음대로 조작되지 않고, 안내소엔 사람이 없고... 벨을 누르고 사람을 찾자 반대편 안내소로 찾아오라는데 어디 있는지 찾을 수도 없고... 복잡하지도 않고, 크지도 않은 로터리를 세 바퀴, 네 바퀴 돌았다. 대체 파리 시내로는 언제 갈 수 있을지. 그렇게 우리는 한 시간을 지하철 입구에서 헤맸다. 알고 보니 코앞에 있는 안내소 입구를 찾지 못해 그 난리를 겪었다.

파리 지하철표 끊기 자판기는 어려워ㅠㅠ
파리 지하철표 끊기자판기는 어려워ㅠㅠ ⓒ 최혜정

표를 끊고 지하철(M10)로 파리 시내로 이동했다. 에펠탑으로 가는 길을 어렵지 않았다. 내리는 곳에도, 내려서도 온통 관광객 물결로 넘쳐났기 때문에 사람들이 많이 가는 곳으로 아무 생각 없이 따라가도 될 듯했다.

에펠탑으로 걷는 길은 복잡했지만 점점 더 커져가는 에펠탑을 보며 걷는 길은 두근두근 설렘 그 자체였다. 에펠탑은 1889년 만국 박람회를 위한 기념물 공모전에서 당선된 구스타브 에펠의 작품이다. 320.75m 높이의 탑을 세우는 데 1만 8000개의 철골과 250만 개의 리벳이 사용됐고 50명의 엔지니어와 132명의 숙련공이 투입됐다고 한다. 27개월의 공사 기간 동안 단 한 건의 사고도 없이 완공돼 장안의 화제가 되었다고 한다.

건설 초기에는 파리의 미관을 해친다는 이유로 모파상을 비롯한 프랑스 지식인과 시민의 거센 항의에 부딪히기도 했단다. 우리가 본 첫 번째 파리는 깨끗하지도 낭만적이지도 않았지만 아름다웠다. 그 아름다움은 눈에 보이는 아름다움이 아니라 문명의 아름다움이었다. 에펠탑을 만들고 지켜온 인간의 의식과 능력 앞에 나의 인간됨까지 감격스러웠다. 다른 땅의 인간의 역사를 보는 일은 낯설고 신비롭다. 모두 다 같은 인간인데 각기 다른 모습의 문화를 만들어낸다는 것이 얼마나 경이로운 일인지!

에펠탑을 오르는 일은 다른 날로 미루어두고 소르본느로 이동했다. 다시 지하철을 탔다. 파리의 지하철은 땀냄새와 분주함으로 얼룩진 매캐한 도시의 향취를 뿜어낸다. 수많은 이방인의 두근거림과 뜨거운 열기가 만들어내는 그 냄새는 뜨거운 태양 아래에서 노래하는 길거리 가수와 거리의 화가를 떠오르게 한다.

그러나 실상은... 거리에는 예술가보다 관광객들에게 기념품을 파는 상인들, 꾀죄한 걸인들이 넘쳐난다. 노트르담으로 가는 길에 만나는 소르본느의 먹자골목에서 가장 먼저 만날 수 있는 것은 자기네 가게로 오라고 호객행위를 하는 상인들이다. 이태리, 터키, 중국 인도, 타이, 일본 등 세계 각국의 요리를 맛볼 수 있다는 관광책자의 말과는 달리 거기서 거기, 비슷해 보이는 메뉴들이 즐비한 거리에서 가이드의 안내도 없이 맛집을 찾는 것은 그야말로 재수다. 아니면 관광책자를 탐독한 훌륭한 여행자이거나! 우리는 그냥 아무 가게로 들어가서 첫 번째 프랑스 현지식을 먹었다. 음... 맛은 괜찮았지만 벌써 김치생각이 났다.

소르본느 먹자골목 첫번째 프랑스 현지식
소르본느 먹자골목첫번째 프랑스 현지식 ⓒ 최혜정

파리의 7월 날씨는 뜨겁다. 말도 못하게 뜨겁다. 게다가 버스도 지하철도 음식점도, 에어컨을 틀지 않는다. 정말 덥다. 다행히 노트르담과 오르세는 시원했다. 지친 몸을 쉬게 하기에 충분했다.

노트르담을 바라보며 빅토르 위고의 작품 <노트르담의 곱추>, 영화 <노틀담의 곱추>, 뮤지컬 <노트르담 드 파리> 같은 것을 떠올려 보았지만 사실 그만큼 멋있지는 않았다. 예술은 아름다움을 극대화시키는 힘이 있다. 주어진 것이 사물이든, 인물이든, 상황이든 예술이라는 렌즈를 통과하면 그것은 실존보다 아름다워진다. 예술가의 뛰어난 감성으로 화려하게 꾸며졌기 때문이리라.

하지만 사진으로만 보던 고딕양식의 성당을 실제로 볼 수 있다는 것은 충분히 놀라웠다. 섬세한 부조와 벽화들, 햇살이 비치는 스테인드글라스, 웅장한 크기와 세월을 담은 엄숙함에 박수를 보낼 만했다. 하지만 뭐니뭐니해도 놀라운 건 미사를 돕는 TV가 모두 'LG'와 '삼성'이라는 것이었다! 하하하, 대한민국 만세!

성당 안에는 기도를 위한 초를 팔고 헌금함도 보이고 기념품도 살 수 있었다. 2층 올라가보는 데는 따로 돈을 내야했다. 에스메랄다를 사랑했던 콰지모도의 슬픔은 관광객들이 채워 넣는 헌금함 속으로 저 밑바닥에 깔려버린 듯했다.

기차역을 바꾸어 만들었다는 오르세 미술관은 참 예뻤다. 미술관의 전신은 오르세 궁이었다고 한다. 1804년 화재로 전소되자 만국박람회 100주년을 기념해 기차역을 세웠다. 하지만 이용객 감소로 폐쇄되자 1986년 이탈리아 건축가 아울렌티의 노력으로 미술관으로 다시 태어난 것이다. 오르세는 미술에 문외한인 나도 그림을 보고 즐기고 싶어질 만큼 잘 정돈되고 세련된 미술관이었다. 마네, 모네, 고흐, 밀레.... 미술 교과서 속 그림들이 진품의 권위를 자랑하며 당당히 걸려있었다. 그런데 정신없이 그림을 보다보면 잠시 착각을 하게 된다. 한국의 어느 미술관이라고! 여기저기서 한국말들이 수도 없이 들린다.

오르세의 아름다운 예술품들을 감상하다 지치면 잠시 들러야 할 명당이 있다. 오르세의 시계를 마주하고 왼쪽, 화장실 가는 길 맞은 편 계단 밑! 거기에 잠시 멈춰서야 할 이유가 있다. 거기엔 정말 에어컨이 팡팡 나온다. 겨울 관광객에는 히터가 팡팡 나오길!

관광을 마치고 호텔로 돌아오는 길, 전날 봐두었던 '크레페' 집에 들렀다.

크레페 전문집 숙소앞
크레페 전문집숙소앞 ⓒ 최혜정

"이래 맛있는 걸, 와 인제 알았노!"

우리 음식에 비유하자면 밀전병을 좀 달달하게 구워 고기나 야채를 싸먹었을 뿐인데 우리 대장님은 감격을 하셨다. 하긴 그 크레페는 에펠탑 앞 노점상에서 파는 누텔라 범벅 크레페하고는 차원이 달랐다. 우리 동네 가까이에 있는 맛집이라면 자주 들릴 것 같은 곳이었다. 그립다.

호텔에서의 마지막 밤은 드디어 만나게 될 캠핑카를 상상하며 열심히, 무척 열심히 짐을 다시 싸는 것으로 마무리했다.


#유럽여행기#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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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고, 쓰고, 말하고. 책의 의미를 찾아 헤매는 독서 탐색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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