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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크래들 마운틴 중턱에 있는 허름한 오두막집이다. 벽난로에는 장작이 불만 붙이면 탈 수 있도록 준비해 놓았다.
 현수교를 따라가노라면 깊은 계곡까지 갈 수 있는 산책로
현수교를 따라가노라면 깊은 계곡까지 갈 수 있는 산책로 ⓒ 이강진

멜버른(Melbourn)을 떠난 배는 밤새도록 바다 위를 달려 데번포트(Devonport) 항구에 들어서고 있다. 이백여 미터의 길이에 자동차를 천 대까지 실을 수 있는 큰 배라 그런지 걱정하던 멀미는 하지 않았다.

갑판으로 나간다. 봄이라고 하지만 쌀쌀한 날씨다. 싸늘한 바람이 온몸을 휘감는다. 상쾌하다. 바다의 정취를 만끽하기에는 조금은 추운 날씨가 좋다.

안내 방송이 나온다. 내릴 시간이다. 조금은 인내심을 갖고 배에서 빠져나가는 자동차 행렬에 동참한다. 아직은 관광객으로 붐비는 때가 아니라고 하지만 배에는 많은 사람으로 붐빈다.

오늘은 직장 생활을 하는 지인이 시드니에서 비행기를 타고 와 합류하는 날이다. 항구에서 한 시간 정도 걸리는 론체스톤(Launceston) 공항으로 향한다. 가는 길에 아침 식사를 하려고 그럴듯한 식당을 찾아 들어섰다. 이른 아침이지만 사람이 많다. 배에서 봤던 사람도 심심치 않게 보인다. 관광객이 주로 찾는 식당이라는 느낌이 든다. 그러나 뜨내기를 상대로 하는 식당이라는 생각은 들지 않는다. 음식도 맛있고 깔끔하다.  

차창 밖으로 펼쳐지는 태즈메이니아(Tasmania)의 풍경을 즐기며 운전한다. 호주 내륙에서 흔히 보이는 지평선은 보이지 않는다. 높고 낮은 산이 지평선을 가로막는다. 한국 시골 경치와 비슷하다는 생각이 든다. 봄을 맞아 갈아 놓은 검붉은 땅이 푸른 초원과 잘 어울린다. 농사에 대해 아는 것이 없지만 기름진 땅이라는 것을 쉽게 짐작할 수 있다. 

공항에서 지인과 합류한다. 우리는 이틀 밤을 지내며 온 거리를 비행기로는 두 시간도 걸리지 않아 도착한 것이다. 여행하는 방법이 가지각색이듯이 사는 방법도 가지각색이다. 어느 방법이 더 좋다고 할 수는 없다는 것은 누구나 수긍한다. 그러나 가끔 한 가지 방법만을 고집하는 사람을 만나기도 한다. 안쓰럽다.

태즈메이니아에서의 첫 관광을 시작한다. 지인이 인터넷으로 찾아 놓은 카타렛 계곡(Cataract Gorge)을 찾아간다. 요즈음은 인터넷 덕분에 생소한 곳에서도 가볼만한 곳을 쉽게 찾을 수 있다. 얼마 전 호주 전역에 있는 관광 정보 센터(information centre)의 존폐에 대해 방송에서 이야기하는 것을 본 적이 있다. 호주를 처음 찾은 사람에게 큰 도움을 주었던 정보 센터가 인터넷 때문에 폐쇄될 위기에 처한 것이다.

론체스톤이 한눈에 보이는 가파른 도로를 올라 계곡에 도착했다. 우리를 처음 맞는 손님은 공작 무리다. 서너 마리의 화려한 수놈 공작과 더 많은 숫자의 암놈 공작이 우리를 무시하며 여유 있게 노닐고 있다. 가까이 다가가도 놀라지 않는다. 사람 알기를 우습게 아는 공작들이다. 호주가 동물의 천국이라면 너무 과장한 표현일까.

산책로를 찾아 걷는다. 깊은 계곡을 가로지르는 멋진 현수교를 건넌다. 다리 위에서는 중국 관광객들이 사진을 찍느라 분주하다. 요즈음은 어디를 가도 중국 관광객을 볼 수 있다. 그래서일까, 예전에는 거리에서 사람을 만나면 일본 말로 나에게 한마디씩 던지던 호주사람들이 요즈음은 중국말로 인사말을 던진다. 

계곡을 따라 잘 정비된 산책로를 웅장함과 아름다움에 매료되어 계속 걷는다. 물줄기가 멀리까지 보이는 전망대에서 사진도 찍는다. 계속 걷다 보니 발전소가 나온다. 깊은 계곡에 지은 발전소다. 폐쇄된 발전소이지만 지금은 비디오와 시청각 자료로 화려한 옛 모습을 재현하고 있다.

 1895년에 완공해 1955년까지 전기를 공급했던 발전소. 지금은 관광객을 위한 전시관으로 사용하고 있다.
1895년에 완공해 1955년까지 전기를 공급했던 발전소. 지금은 관광객을 위한 전시관으로 사용하고 있다. ⓒ 이강진

생각보다 오랜 시간을 산책했다. 예약한 숙소로 향한다. 태즈메이니아 최고의 관광지 크래들 마운틴(Cradle Mountain) 근처에 있는 숙소다. 산 중턱을 따라가는 도로가 운치 있다. 웅장한 산과 깊은 계곡을 지난다. 사진에 담고 싶은 수많은 풍경을 지나치는 아쉬움을 남기며 운전한다. 

숙소가 가까워진다. 외진 곳이다. 우리가 찾아오지 못할 것을 걱정하며 마중까지 나온 주인의 도움을 받아 숙소에 도착했다. 크래들 마운틴 중턱에 있는 허름한 오두막집이다. 벽난로에는 장작이 불만 붙이면 탈 수 있도록 준비해 놓았다. 호주 시골에서 흔히 만날 수 있는 털털하며 마음씨 좋은 주인의 세심한 배려가 느껴진다.       

짐을 풀고 근처를 잠깐 걸어본다. 주인이 심은 노란 수선화가 주위에 만발하다. 산속의 밤은 일찍 찾아온다. 어둠이 깔리는 수풀 속에서는 발걸음 소리에 놀라 도망가는 동물 소리가 요란하다. 태즈메이니아 데블(Tasmania Devil)이라는, 이곳에서만 서식하는 못생긴 동물일 것이라는 상상을 하며 늦은 저녁을 산책한다.

오두막으로 돌아오니 벽난로에서 장작이 타오르고 있다. 감자를 구워 먹는다. 포도주도 한잔 한다. 장작불에 구운 감자와 빨간 포도주가 어울릴 것 같지 않다. 그러나 깊은 산 속 오두막집에서 벽난로를 배경으로 마시는 포도주와 감자의 맛이 일품이다. 음식은 분위기에 민감하다는 사실에 동감한다.   

밤하늘을 보려고 밖으로 나갔다. 반달이 떠 있음에도 셀 수 없는 별이 총총하게 보인다. 싸늘한 날씨에 보는 별의 모습은 더 깨끗하게 보인다. 윤동주의 시 '별 헤는 밤'이 떠오른다. 오늘 밤은 모든 것을 사랑할 수 있을 것 같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호주 동포 신문 '한호일보'에도 연재하고 있습니다.



#호주#태즈메이니아#멜버른#론체스톤#오두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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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드니에서 300km 정도 북쪽에 있는 바닷가 마을에서 은퇴 생활하고 있습니다. 호주 여행과 시골 삶을 독자와 함께 나누고자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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