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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황금들녘으로 변해가는 유기농 논
황금들녘으로 변해가는 유기농 논 ⓒ 유문철

황금들녘 만든 농부들, 쌀값 때문에 시름이 깊다

추석을 맞아 도시 나간 자식들이 고향을 찾아 잠시 활기가 돌던 산골마을은 연휴가 끝나고 다시 고즈넉해졌다. 사람들이 떠나고 마음이 허전해진 농부는 말없이 서있는 벗들을 만나러 집을 나선다. 콩밭, 수수밭을 지나 논으로 향한다.

벼가 하루가 다르게 익어가며 논은 가을옷으로 갈아입고 있다. 황금들녘이라 했던가? 농사를 짓든 안짓든 우리 마음 속에는 원초적 기억이 있다. 가을 들녘을 생각하면 무엇이 떠오르는가? 이삭이 여물어 고개를 숙인 논의 모습이지 않은가? 몇 해전인가 일본에서 농사 경험이 없는 도시인에게 설문조사를 한 적이 있다. 그들은 농촌에서 떠오르는 첫 이미지를 황금들녘이라고 대답했다.

누렇게 변해가는 황금들녘은 어느 유명 미술관에 걸린 고금의 어떤 그림과 조각들보다도 내 눈에는 아름다운 예술품으로 보인다. 벼를 벨 때까지 날마다 논은 조금씩 조금씩 노랗게 변한다. 벼이삭은 여물수록 점점 더 고개를 숙인다. 바람이 불면 파도처럼 군무를 추며 쏴아쏴아 하며 마른 이삭과 잎이 환호성을 지른다.

이 아름다운 논그림을 그린 농부 예술가들은 자신들의 작품에 스스로 경탄하지만 한편으로는 시름이 깊다. 쌀값이 떨어지다 떨어지다 못해 80킬로 한 가마가 생산비에도 훨씬 밑도는 12-13만원 한다는 흉흉한 소문에 깊은 한숨을 내쉰다. 유기농쌀 값이야 이보다 낫지만 나만 값을 좀 낫게 받는다고 어디 마음이 편할 손가?

고향 다녀온 도시 사람들이 수입밀가루 음식 덜 먹고, 외식 덜하고 힘들더라도 장 보아서 집밥 한 그릇씩이라도 더 먹으면 어떨까? 이왕이면 마트보다 생협이나 직거래로 밥상 차리면 더 좋다. 그러면 우리 농민들의 꺼진 어깨가 조금은 펴지지 않을까?

추석 연휴가 끝나고 농부는 다시 농사일을 손에 잡는다. 포항에서 나이 지긋한 여사님께서 애써서 농사짓는 모습을 잘 지켜보고 있다며 연휴 마지막날 유기농쌀을 꼭 드셔보시겠다며 쌀 주문을 하셨다. 며칠만에 방아를 찧는다. 도정기가 힘차게 돌아간다. 30킬로가 좀 넘는 콤바인 포대 하나를 넣으면 20킬로 좀 넘게 쌀이 나온다. 이를 수율이라고 하는데 도정율에 따라 70~80프로 사이다.

현미에 가까운 5분도미로 방아찧다가 보면 왕겨가 벗겨지지 않은 채 나오는 볍씨가 종종 있다. 방아를 찧고 쌀 포대에 담기 전에 볍씨를 골라낸다. 포항 여사님은 전에 구입하던 ㅎ생협 5분도미에도 볍씨가 섞여 있으니 크게 신경쓰지 않아도 된다고 하셨다. 하지만 눈에 띄는 볍씨를 그냥 자루에 넣을 수 없어 눈에 띄는 대로 골라낸다.

볍씨 한 톨을 물고 가는 개미 제 몸피의 서너배나 큰 볍씨를 작은 개미가 물고가는 모습이 경탄스럽다
볍씨 한 톨을 물고 가는 개미제 몸피의 서너배나 큰 볍씨를 작은 개미가 물고가는 모습이 경탄스럽다 ⓒ 유문철

 볍씨 한 톨을 물고 가는 개미
볍씨 한 톨을 물고 가는 개미 ⓒ 유문철

제 몸보다 큰 볍씨를 물고 가는 개미, 저렇게 쌀 한 톨이 귀중하거늘...

그런데 이게 웬 일인가? 볍씨를 골라놓은 자리에서 개미 한 마리가 제 몸보다 서너배 큰 볍씨를 입에 물고 뒷걸음으로 힘겹게 걸어간다. 볍씨 골라내길 멈추고 자그마한 개미가 하는 모양새를 내려다 본다.

가만 보니 힘을 꽁꽁 쓰는 모양새가 신기하기도 하고 기특하기도 하다. 개미의 몸피로 따지면 아마도 이 볍씨 한 톨이 서너 해 양식이 될 만하니 저리도 애쓰면서 식구들과 나누려고 집으로 가져가려는 것이겠지.

아! 이렇게 작은 개미도 볍씨 한톨을 이토록 귀중히 여기며 집으로 가져가려 저리도 힘을 꽁꽁 쓰는데 우리네 사람들은 쌀을 이렇게 천대하고 있으니 이를 어쩌나? 수천수만년 우리네 목숨을 이어준 쌀 한톨의 귀중함을 잊고 값이 싸기만 하면 수입농산물 먹고 살아도 좋다는 사람들이 너무도 많다.

무위당 장일순 선생은 '나락 한 알 속에 우주가 담겨 있다'고 말씀하셨다. 장일순 선생이 평생 공부한 해월 최시형 선생은 '밥 한 그릇 속에 세상만물의 이치가 담겨 있다'고 말씀하셨다. 우리 쌀을 천시하는 사람들은 이 말씀들이 뜻하는 바를 조금이라도 이해할 수 있을까?

유기농 농사짓는 사람들은 남몰래 농약 치면서 턱없이 값을 비싸게 받는 사기꾼이라는 소리를 하는 이들이 많다. 소비자도, 농민들도 유기농 농사짓는 이들을 왜 이리도 미워하는 걸까? 유기농 농부들은 국립농산물품질관리원과 친환경인증기관에서 1년마다 까다로운 심사를 받고 있다.

작물과 흙에서 잔류농약이 기준치 이상으로 검출되어 인증취소가 해마다 일어나고 있다. 농가의 잘못일 수도 아닐 수도 있는 상황에서 국립농산물품질관리원은 대부분의 경우 농가의 잘못으로 간주하고 인증을 취소해 버린다.

김대중 정부 첫해인 1998년 친환경농업육성법이 시행되어 노무현정부 때에는 20만 농가까지 늘어났던 친환경 인증 농가는 이제 5만 농가가 조금 넘는다. 잔류농약 기준의 까다로운 인증 및 갱신 절차와 저농약 인증제 폐지, 친환경 농가의 판로 문제로 친환경 농가와 재배 면적은 급속히 줄어 들었다.

기존 유통라인에 들어가지 못하는 유기농쌀, 도농직거래 외엔 방법 없어

나락 한 알 속의 우주 갓 방아찧은 쌀 한톨한톨은 우리 생명이 담겨있다
나락 한 알 속의 우주갓 방아찧은 쌀 한톨한톨은 우리 생명이 담겨있다 ⓒ 유문철

유기농이 비싸다고? 이번에 여름배추가 금배추가 되면서 한포기에 1만원에 팔려서 도시민들이 아우성을 쳤다. 마찬가지로 산지에서 밭떼기와 계약재배로 1천원 정도에 판 농민들도 한숨짓기는 마찬가지다. 이 사이에서 희희낙락하는 건 중간유통상들이다.

친환경 농산물은 더한 어려움이 있다. 공판장에서도, 산지거래인도 친환경농산물은 취급하지 않는다. 몇몇 생협과 일부지역 학교급식, 대형 마트와 백화점에 납품하는 규모화된 일부 친환경 농민들 외에 대다수는 각자도생식 직거래에 의존하고 있다.

여러 유통상을 거친 친환경농산물은 금값이겠지만 기존 유통라인에 들어가지 못하는 대다수 친환경 농산물은 도농직거래 외에는 방법이 없다.

유기농쌀을 예로 들어볼까? 생협에서는 80킬로 한가마 기준 30만원선에 팔리고 있다. 일반 관행쌀의 두 배가 조금 못된다. 난 도농직거래로 34만원에 팔고 있다. 백화점과 대형마트에서는 유기농쌀에 온갖 브랜드와 요란한 포장을 달고 제멋대로 팔고 있다.

유기농쌀 한 가마에 30만원이 넘는다고 해봐야 밥한그릇 100g으로 치면 400원이다. 자판기 커피 한 잔 값밖에 되지 않는다. 국산 농산물 중 가장 천대받는 쌀은 관행이나 유기농이나 매한가지다.

올해도 풍작을 이룬 논을 바라보면서 쌀값 폭락으로 전국의 쌀 농사짓는 농민들이 수심에 가득차 있다. 올해 아홉해째 유기농 벼 수확을 앞두고 있는 나도 마찬가지로 마음이 무겁다. 그렇지만 수천년 이어져온 이 벼농사를 내 대에서 그만둘 수는 없다.

내가 죽는 날까지 짓고, 아이가 이어서 짓고, 또 아이의 아이가 이어서 짓기를 바란다. 굳이 유기농 쌀을 주문하는 포항의 어느 여사님과 볍씨 한 톨을 물고 가는 작은 개미를 보며 다시 힘을 내며 농부는 논물보러 다시 논으로 향한다.

덧붙이는 글 | 유문철 시민기자는 충북 단양에서 유기농 농사를 짓고 있으며 녹색당 농업위원으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본 기사는 블로그 <단양한결농원 한결아빠의 유기농사 이야기>에도 함께 실립니다.



#유기농쌀#단양한결농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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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북 단양에서 유기농 농사를 짓고 있는 단양한결농원 농민이자 한결이를 키우고 있는 아이 아빠입니다. 농사와 아이 키우기를 늘 한결같이 하고 있어요. 시골 작은학교와 시골마을 살리기, 생명농업, 생태운동을 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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