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유 처녀는 외로운 여인으로 그 몸을 정결히 하여 이 세상에서 71세를 살았도다. 그 곧고 깨끗한 정절, 원한 맺힌 기운이 구천에 사무친다."

1862~1863년 거제도호부사를 지낸 하겸락(河兼洛, 1825~1904년)의 문집 '사헌유집'의 <부거제>(附巨濟)조에 기록된 유섬이 관비의 삶의 편모에 관한 글이다.

유섬이는 전라도 최초의 천주교 신자인 복자 유항검(아우구스티노, 1756~1801)의 딸이다. 지금까지 알려진 그녀에 관한 기록은 하겸락의 문집에 나온 단 한 줄이 전부다.

경상대 명예교수인 강희근(요셉) 시인이 유섬이의 일생을 시극에 담아냈다. 시인의 상상력으로 가톨릭 역사 속에 묻혀 있던 한 여인의 삶이 21세기에 되살아난 것이다.

 강희근 시인의 <순교자의 딸 유섬이> 표지.
강희근 시인의 <순교자의 딸 유섬이> 표지. ⓒ 가톨릭출판사

시극 <순교자의 딸 유섬이>는 천주교 마산교구 창설 50주년 기념으로 기획되었고, 가톨릭출판사에서 발간했다.

주인공 유섬이는 1801년 신유박해 때 아버지(유항검)와 어머니(신희), 오빠 둘(유중철, 유문석), 큰오빠의 아내 이순이 등 일가족 5명이 순교한 집안의 딸로서 아홉 살의 어린 나이로 거제도 관비로 귀양을 가 71세까지 살다가 동정녀로 죽었다.

이 작품은 모두 4막으로 구성되었다. 제1막은 <피어린 초남이 마을>, 제2막은 <안골의 달>, 제3막은 <매화나무에 매화>, 제4막은 <유처녀의 성(城)>이다.

유섬이가 가족들과 헤어져 관비로 묶여 오는 상황(1막)으로부터 거제에서 양반가에 위탁관리되는 시기(2막), 아리따운 처녀로 성장하여 수많은 곳으로부터 들어오는 혼담을 물리치는 시기(3막), 정절을 지키기 위해 흙돌집(토굴)을 짓고 그 속에 들어가 25년간 주님과 함께하는 시기(4막)로 이어진다.

천주교 마산교구장 배기현 주교는 추천사에서 "전라도 땅 양반 가문의 따님이 천주교 박해로 관비가 되어 어린 나이에 경상도 땅 거제도로 끌려갔다가 끝내 무덤 하나 남기고 간 이 이야기가 가슴을 미어지게 한다"고 썼다.

시극을 쓴 강희근 시인은 <시인의 말>에서 "갈매기 우는 바닷가 섬마을에서 홀로 눈물 흘리며 섬처럼 떠서 파도에 일렁이는 삶을 살아낸 그 생애를 두고 나는 도무지 다른 일을 할 수 없었다"며 "전 4막으로 유섬이의 생애를 극화하면서 유섬이가 되어 같이 기도하고 같이 울었다"고 했다.

그는 "주인공 유섬이가 시대의 흐름에 풀잎 하나로 떠다닐 때도 양모와 이웃들이 주변에 있었던 것처럼 이 시극도 풀잎 같은 시정이 흐르도록 도와주신 고마운 분들이 이웃에 있었음을 밝힌다"고 덧붙였다.

강희근 시인은 시극을 주제로 천주교 마산교구 내 거제, 진주, 창원, 마산지역 성당에서 9~10월 중 기념강연하고, 시극 무대 공연은 내년 9월에 같은 4개 지역 문화예술회관에서 열린다.


#강희근 시인
댓글2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오마이뉴스 부산경남 취재를 맡고 있습니다.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