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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머니의 치부책과 외삼촌이 기록해준 장부
어머니의 치부책과 외삼촌이 기록해준 장부 ⓒ 나관호

어머니의 유품을 정리하다 아주 오래된 어머니의 치부책을 찾았다. 외삼촌이 어머니와 관련된 것을 정리해두신 치부책도 있었다. 그것을 보며 오랜 옛날을 생각해 보았다. 내가 초등학교 입학할 무렵까지 어머니는 나를 업고 밤마다 여러 이웃집을 다니셨다.

갈림길이 나오면 나에게 묻곤 하셨다. "둥개둥개, 내 아들! 관호야! 오늘은 어디로 갈까?" 그러면 나는 가만히 있다가 "이쪽!!"이라고 외쳐다. 그러면 어머니는 그곳으로 가셨다.

어느 집에 다다르면 잠시 망설이다가 "○○○ 엄마 있수"라고 아주머니를 찾았다. 병철이 엄마는 어머니를 집으로 들이지 않았다. 가만히 들어보면 빌려간 돈을 달라고 어머니가 말씀하셨다.

그러나 돈을 빌려 간 ○○○ 엄마는 밤에 어머니가 찾아 왔다고 뭐라고 하고, 돈을 갚는 다는 말을 하지 않았다. 어린 나이의 나였지만 모든 상황을 다 이해하고 있었다. 어린 나는 어머니 등을 토닥거리며 위로하곤 했다.

이웃사람들이 어려울 때는 어머니를 찾아와 돈을 빌려 갔지만 갚지 않은 경우가 많았다. 아버지 몰래 빌려주신 돈이었다. 어떤 경우 집에 돈이 없으면 어렵다는 사람을 그냥 돌려보내지 못하고 다른 집에 가서 어머니가 빌려다가 그 사람을 돕기도 했다.

  아기처럼 순수하고 예쁘신 어머니
아기처럼 순수하고 예쁘신 어머니 ⓒ 나관호

어머니는 어렵다는 사람을 그냥 냉정하게 뿌리치지 못하는 성품이시다. 사실을 알게 되신 아버지가 모든 엉뚱한(?) 빚도 갚아주셨다고 들었다. 어머니의 그런 성품은 노년에 들어서도 마찬가지였다.

어머니가 다른 집에서 돈을 빌려다가 또 다른 사람을 도와주셨는데 그 사람이 도망가는 바람에 여동생과 내가 큰 빚을 갚아 주기도 했다.

어떤 여자가 찾아와 남편이 빚을 갚지 않으면 구속당한다고 말했다. 어머니는 한 푼도 없었지만, 그 사람 처지가 불쌍해 교회에 같이 다니는 사람 집에 가서 본인이 급하게 쓸 곳이 있다고 하면서 돈을 빌려 그 여자를 도와주셨다.

어머니의 DNA다. 그러나 그런 어머니를 나는 사랑한다. 손해 보며 남을 도우며 사셨던 어머니의 '성품 DNA'를 사랑한다.


 미소가 아름다운 어머니
미소가 아름다운 어머니 ⓒ 나관호

아버지가 국정교과서처럼 원칙과 큰 길을 가르쳐 주었다면 어머니는 참고도서 같았다. 그러다 보니 어머니를 통해 직접 배우기보다, 내 스스로 참고해 삶을 배웠다.

어머니가 남긴 다른 유품인 성경책 속에서 사랑을 본다. 요양병원에서 환자 유품을 정리하는 과정에서 잃어버린 성경책이다. 성경책 뒤에 나와 여동생 이름을 써 놓고 날마다 기도하신 어머니의 사랑이 기록되어 있었다. 잃어버린 것이 무척 아쉽다.

큰 재산이나 인생길을 열어 주는 등 큰 도움을 주지는 못하시지만 당신이 할 수 있는 최선, 기도를 통해 자식들을 도우신 것이다.

내가 대학을 졸업할 무렵 어느 날, 어머니는 초등학교 동창생이 유명 화장품 회사 사장이라며 좋아하셨다. 초등학교 동창 소식을 전해 들은 모양이었다. 나에게 은근히 자랑하셨다.

나에게 도움을 줄 수 있을까 생각하신 모양이었다. 어머니와 나는 서로 바라보며 웃었다. 그만큼 모든 것을 나에게 대입해 살아오신 어머니시다. "어머니 감사합니다. 보고 싶네요." 


 내가 그려드린, 어머니 이름 켈리그라피
내가 그려드린, 어머니 이름 켈리그라피 ⓒ 나관호

어머니가 요양병원에 계실 때 어머니 사랑에 감사해 어머니 이름을 넣은 켈리그라피(손글씨)를 써서 어머니 머리맡에 놓았었다. 어머니는 인지 못하시지만 내 마음을 전하고 싶었다. 사람들에게도 보이고 내 어머니에 대한 존재를 알리고 싶었다.

어머니의 유품을 보며, 생각하며 어머니를 떠올린다. 손해 보며 사셨고, 자식에게 헌신적으로 사셨던 어머니의 눈물과 사랑 앞에 경의를 표한다. 어머니의 그 눈물과 사랑이 헛되지 않을 것이라 믿는다. 어머니는 강물 같아서 마르지 않고 영원히 흐를 것이기 때문이다.

"어머니! 사랑합니다."

덧붙이는 글 | 나관호는 '크리스천커뮤니게이션연구소' 소장이며 북칼럼니스트로 서평을 쓰고 있으며 북컨설턴트이다. '나관호의 삶의 응원가'운영자로 세상에 응원가를 부르고 있으며, 따뜻한 글을 통해 희망과 행복을 전하고 있다. 또한 역사신학과 커뮤니케이션 이론을 강의하고 있으며, 심리치료 상담과 NLP 상담을 통해 사람들을 돕고 있는 목사이기도 하다.



#어머니#치부책#어머니 사랑#나관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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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제이 발행인, 칼럼니스트다. 치매어머니 모신 경험으로 치매가족을 위로하고 있다. 크리스천커뮤니케이션연구소 소장이다. 기윤실 선정 '한국 200대 강사'로 '생각과 말의 힘'에 대해 가르치는 '자기계발 동기부여' 강사, 역사신학 및 대중문화 연구교수이며 심리치료 상담으로 사람들을 돕고 있는 교수목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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