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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훈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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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빠가 받은 시민기자 명함을 보고 부러워하며 자신도 기사를 써 명함을 받겠다던 어린이 시민기자 후보생을 기억하시나요? (관련기사: 최연소 시민기자에 도전합니다) 진지하게 기사를 쓰겠다는 딸의 다짐을 들으며 부녀 시민기자의 탄생을 상상했었습니다.

자신의 이름이 적힌 시민기자 명함을 위해 금방 다섯 개의 기사를 써내려 갈 것처럼 보였습니다. 딸이 나름의 첫 글을 쓴 다음날 저는 기대에 차서 두 번째 기사는 언제 쓰냐고 물었습니다. 한데 딸은 기사를 다섯 개나 써야 하느냐며 아저씨들(신문사)에 대해 불만을 표현했습니다. 기자 명함을 언급해 보았지만 딸이 기사를 쓰게 하지는 못했습니다.

이렇게 부녀 시민기자 탄생의 꿈은 사그라드는 것 같았습니다. 그런데 한 달여가 지나서 딸은 갑자기 기자 명함 이야기를 꺼내며 다시 기사를 쓰겠다고 연필을 들었습니다. 여전히 써야 하는 기사 숫자에 대해서는 불만이 있었지만 그래도 그 명함(딸은 이름표라 부릅니다)은 꼭 받아야겠다고 합니다.

"아무래도 이름표(시민기자 명함)는 받아야겠어. 어떤 걸 기사로 쓰면 좋을까?"

A4용지 한 장과 연필을 가져와 초보 시민기자인 저도 어려워하고 고민하는 질문을 던집니다. 천장을 바라보며 뭔가를 생각하기에 기사는 다른 사람들에게 뭔가 새로운 소식을 알려주는 것이라 말해주니 뭔가 생각이 난듯 씨익 웃습니다.

"아빠 나 방학이었잖아. 방학 때 외할머니랑 놀았던 것을 쓰면 되겠다 그치?"

아직 익숙치 않은 한글 맞춤법을 아빠에게 물어가며 외할머니와 함께 스케이트 탔던 이야기를 씁니다. 한 줄 한 줄 사뭇 진지하게 글을 쓰는 딸의 모습을 보니 웃음이 삐질삐질 새어나옵니다. 웃음을 꾹 참으며 기사쓰는 딸을 지켜보는데 스케이트 이야기를 쓰다 갑자기 자기 소개를 합니다. 한 가지 이야기를 써야하지 않을까라고 제안하자 딸이 대답합니다.

"그래도 아저씨들(신문사)이 내가 누군지는 알아야 하지 않겠어?"

자기 소개를 간략히 하고는 자신이 이 글을 쓰고 있는 이유를 솔직하게 밝힙니다. 아빠가 받았던 그 이름표(시민기자 명함)를 꼭 받고야 말겠다는 의지를 열정적으로 표현합니다. 아저씨들(신문사 기자님들)에게 잘 봐달라는 당부와 함께 기사를 마무리하는가 싶었는데 뜬금없는 자기고백이 이어집니다.

"아~ 학교가기 싫다."
"그런데 내가 왜 이런 얘기까지 쓰고 있지? 아하하하!"


어린 시민기자 후보생에게 한 가지 이야기로 종이의 여백을 채운다는 것은 어려운 일이겠죠. 자기가 쓴 글을 읽어보고는 여러 가지 이야기를 쓴 것이 이상해 보이는지 머리를 긁적이며 웃습니다. 나름 글을 쓰고나서 퇴고하듯 중간중간 자신이 쓴 글을 들고 읽어보는 모습도 인상적입니다.

방학이 끝나는 주라서 낮엔 얼마나 힘을 빼며 놀았는지 늦은 밤 코피가 살짝 나는데도 종이의 빈 칸을 다 채우겠다며 연필을 놓지 않습니다. 피곤해 보이기도 하고 글감도 떨어진 듯 보여 다음에 더 써보자 설득해 글쓰기를 마무리하도록 하고 잠자리로 보냅니다.

딸은 학교 숙제로 어쩔 수 없이 그림일기를 쓸 때와는 다른 아이가 되어 글을 씁니다. 자기가 하고 싶은 것을 한다는 건 어린아이에게나 어른에게나 즐거움인가 봅니다. 앞으로 언제 또 이름표 생각이 나서 기사를 쓰겠다고 할지 모르겠지만, 아이가 삐뚤빼뚤 써 내려갈 또 다른 이야기들이 은근히 기대됩니다. 이렇게 부녀 시민기자의 꿈은 계속됩니다.

▶ 해당 기사는 모바일 앱 모이(moi) 에서 작성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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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그:#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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