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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에 깨어 침대에 누워있다가 식당으로 내려가 시간을 보니 5시 30분이다. 어제 쓰지 못한 일기를 쓰고 아침 산책은 나가지 못했다. 침대로 돌아가 보니 친구는 벌써 떠날 준비를 하며 배낭을 정리한다.

식당에서 빵과 뜨거운 물만 부으면 되는 우거지국으로 아침을 먹었다. 아침을 먹고 출발하려던 중년 여성이 우리에게 토마토 1개와 양파 1개를 준다. 우리가 요리를 해 먹는 것을 알고 남은 것을 주는가 보다. 이런 때는 '그라시아스(감사합니다.)'라고 인사하고 받는 게 서로에게 기분이 좋은 것이다. 토마토는 가다가 간식으로 먹고, 양파는 와인에 넣어 양파 와인을 만들어 먹어야겠다.

어제는 피곤하여 시내 산책도 생략하였고 아침 산책마저 하지 못했다. 오늘은 아소프라까지 21.5Km를 걸을 계획이다. 문제는 아소프라에는 알베르게가 하나 밖에 없는 것이다. 일찍 도착해야 침대를 배정 받을 수 있다.

알베르게를 나와 조금 걸으니 성당이 나오고 성당 옆에는 바가 있는데 여기에서 아침을 먹는 순례자들이 보인다. 마을을 벗어날 즈음 다른 마을 보다 더 잘 조성해 놓은 공동 묘지가 보인다. 가이드북을 보니 묘지 입구의 장식은 13세기에 만들어진 것이라고 한다. 다시 밀밭과 포도밭 사이를 걷는다.
나바레테 성당 ⓒ 이홍로
성당 옆 바 ⓒ 이홍로
마을 공동묘지 ⓒ 이홍로
포도밭 사이 순례길 ⓒ 이홍로
카미노를 세 번째 걷는 이유

1시간 정도 걸으니 작은 마을이 나타났다. 입구의 바에서는 순례자들이 커피와 빵을 먹고 있다. 조금 더 걸으니 작은 성당이 나타나고 그 앞에는 쉬어 갈 수 있는 벤치가 두 개 있다. 잠시 쉬고 있는데 한국인 순례자 한 분이 인사를 한다. 우리에게 오렌지를 주셔서 맛있게 먹었다.

이 분은 부여가 고향이시고 용인에 사시는 분인데 카미노길을 세 번째 걷는다고 한다.  같이 걸으며 많은 이야기를 들었다. 73세이신데 몸이 가뿐하시다. 대기업에 다니시다가 퇴직한 후 남미 배낭 여행을 다녀오셨고, 그 다음 여기 카미노를 걸으셨다고 한다. 두 번째는 처남이 카미노 이야기를 듣더니 같이 걷자고 하여 1년만에 다시 카미노를 걸었다고 한다. 이번 세 번째는 사연이 있다. 이 분이 참석하는 모임 회원들이 카미노 이야기를 듣더니 여러명이 카미노 안내를 해 달라고 하였단다.

보통 카미노를 준비하려면 1년 정도의 시간이 걸린다. 항공권도 미리 예약을 해야 저렴하게 구입할 수 있고 체력도 단련해야 한다. 카미노에 같이 가겠다고 안내를 부탁한 사람이 일곱 명이었는데, 이들이 예정된 기일이 다가오니 하나, 둘씩 이런 저런 이유로 못가겠다고 하더니 결국 자신 혼자만 남았다는 것이다. 그동안 준비하는 과정을 옆에서 보고 있던 아내가 "당신 걷기 좋아 하는데 혼자라도 다녀 오세요."  그래서 세 번째로 카미노를 걷는데 하루에 15Km 이내로 조금씩 걸으며 카미노를 제대로 느끼고 있는 중이라고 한다.

이 분이 카미노를 세 번씩 걸은 이유는 첫 번째 길은 야고보 성자의 순례길을 걸으며 자신의 신앙을 확인해 보기 위함이었단다. 더불어 자신이 어떻게 살아 왔는지 돌아보는 시간이 되었다는 것이다. 내가 무엇을 위하여 그렇게 바쁘게 살아 왔는지, 이 길을 걸으며 생각해 보니 좀 늦더라도 여유를 가지고 살 것을 하고 생각하였다는 것이다. 또한 이 길을 걸으며 그동안 회사 생활하면서 자신을 괴롭혔던 사람들을 용서하였다고 한다. 모든 미움들을 이 길에 버렸더니 마음이 그렇게 편할 수 없단다.

두 번째 처남하고 카미노를 걸을 때는 카미노의 문화, 풍광이 눈에 들어왔다고 한다. 처남이 걷다가 쓰러져 구급차를 부르는 일도 있었는데, 카미노에 대해 좀 더 알게 되었다고 한다.

세 번째 카미노를 걸으며 삶의 여유를 찾았다고 한다. 50일 동안 하루에 15Km 정도 걸으며 마음에 드는 마을을 보면 그 마을에서 하루 쉬면서 정말 오랜만에 삶의 여유라는 것을 찾았다고 한다. 과연 나는 이 카미노를 다시 찾고 싶은 마음이 생길까?
벤토사 마을 입구의 바 ⓒ 이홍로
포도밭이 있는 순례길 ⓒ 이홍로
순례길 풍경 ⓒ 이홍로
나헤라 - 급수대에서 물을 받고 있는 순례자 ⓒ 이홍로
2시간 정도 같이 걷는 동안 세계 곳곳을 여행하며 겪은 이야기를 재미있게 들었다. 이야기를 하며 걷다 보니 나헤라에 도착했다. 같이 걷던 어르신은 여기에서 묶는다고 한다. 오전 11시에 하루 일정을 끝낸다면 정말 걸을 만하겠다. 라헤라는 강과 암벽이 멋지게 어우러진 곳이다. 이곳에는 산타마리아 데 레알 수도원이 있는데 그 뒤에는 붉은 암벽이 있고 동굴이 있는데 수도사들이 기도를 하던 곳이었다고 한다. 우린 멀리서 구경하고 직접 올라가지는 않았다.

우린 라헤라 시내를 걷다가 바에서 맥주 한 잔하며 점심을 먹었다. 여기서 5Km 떨어진 아소프라까지 걸을 계획이다. 이곳에는 침대 60개의 알베르게가 하나 밖에 없기 때문에 일찍 도착해야 된다.
나헤라 성당 ⓒ 이홍로
아소프라로 가는 언덕길 ⓒ 이홍로
아름다운 구름이 있는 순례길 ⓒ 이홍로
이소프라 마을 ⓒ 이홍로
아소프라 입구의 알베르게 ⓒ 이홍로
바에서 쉬고 있는 순례자들 ⓒ 이홍로
아소프라 광장 ⓒ 이홍로
아소프라 성당 ⓒ 이홍로
아소프라 마을 풍경 ⓒ 이홍로
침대를 차지하기 위한 순례자들의 경쟁

라헤라에서 점심을 먹고 출발하며 시계를 보니 12시, 한 시간 반 정도 걸으면 목적지 아소프라에 도착한다. 그런데 지금 시간이 가장 걷기 힘든 시간이다. 스페인의 강열한 태양은 정말 견디기 힘들다. 이 힘든 길을 여유있게 쉬면서 걸으면 좋은데 알베르게가 하나 밖에 없는 마을이어서 빨리 걸어야 된다. 며칠 전에는 침대가 없어 알베르게를 두 번이나 놓친 적이 있다. 오늘 아소프라에서 알베르게를 잡지 못하면 10Km를 더 걸어 시리뉴엘라까지 걸어야 된다. 아소프라까지 걷는 순례자들은 이런 정보는 알고 걷는다.

1시간 30분 정도 걸으니 멀리 아소프라 마을이 보인다. 언덕에 걸터 앉아 잠시 쉬고 있는데 이탈리아 청년이 빠른 속도로 걸어 오고 있다. 우린 쉬다가 벌떡 일어나 있는 힘을 다해 빠르게 걸었다. 아! 순례길을 걸으며 경쟁을 하다니. 마음이 아프지만 알베르게를 놓치고 10Km를 더 걸을 자신은 없다. 아소프라 마을에 도착하니 바에서 일찍 온 순례자들이 맥주를 마시며 반갑게 인사를 한다.

헐레벌떡 알베르게에 도착하여 보니 앞에 줄이 늘어서 있다. 지금 시간이 오후 1시 30분, 접수를 받는데 침대는 여유가 있다. 이렇게 서두르지 않아도 되었는데. 뒤에 서 있는 이탈리아 청년 보기가 괜히 미안하다. 숙소는 깨끗하고 좋았다. 샤워를 하고 빨래까지 널고 나서 바에 나가 시원한 맥주를 마시며 쉬었다. 마을을 잠시 산책하며 마트에서 필요한 것들을 구입하고 순례자 메뉴가 있는 바를 알아 놓고 숙소로 돌아와 쉬었다.
태그:#산티아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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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에 취미가 있는데 주변의 아름다운 이야기나 산행기록 등을 기사화 하여 많은 사람들에게 즐거움을 주고싶습니다.

행복의 무지개가 가득한 세상을 그립니다. 오마이뉴스 박혜경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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