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여행

포토뉴스

숙소에서 아침을 먹고 출발하는 시간은 보통 7시 20분이다. 에스테야에서 알베르게를 마을의 끝에 정했기 때문에 마을을 쉽게 벗어날 수 있었다.

마을을 벗어나 밀밭길을 한동안 걷다 보니 순례객들이 걸음을 멈추고 배낭을 내려 놓는다. 와인 공장인데 순례객들에게 와인을 무료로 제공하고 있다. 순례길을 준비하며 산티아고 가이드북을 읽을 때 반신 반의하던 와인샘, 정말 수도 꼭지를 틀면 와인이 쏟아진다. 순례자들이 컵을 꺼내 한 잔씩 따라 마신다. 친구와 나도 한 잔을 받아서 둘이 나누어 마셨다. 숙소에서 30분 정도 걸어 목도 마른데 맛있는 와인을 마시니 기분이 좋다.

스페인 정부에서는 이 순례길에 많은 지원을 한다. 지자체 지원 알베르게는 하루 숙박비가 5~6유로이다. 사설 알베르게는 8~10유로 하는데 지자체 지원 알베르게는 싸기도 하지만, 시설도 좋아 우리는 순례길을 걷는 동안 M표시가 되어 있는 지자체 알베르게를 주로 이용하였다. 정부 뿐아니라 기업에서도 순례객들을 위해 와인을 공짜로 무한정 제공하다니 정말 멋진 일이다.

와인샘에서 와인을 한 잔 마시고 다시 끝없이 펼쳐진 밀밭 사잇길을 걷는다. 바람도 시원하게 불어 밀밭이 파도처럼 춤을 춘다. 걷기 좋은 오솔길을 걷는데다 경치까지 좋아 오늘은 걷는 길이 즐겁다. 아름다운 성당이 있는 작은 마을 아스케타를 지난다.
와인샘-순례자들에게 와인을 공짜로 제공, 수도 꼭지를 틀면 와인이 콸콸 쏟아진다. ⓒ 이홍로
와인을 받기 위해 서 있는 순례자들 ⓒ 이홍로
태양에 빛나는 밀밭 ⓒ 이홍로
멀리 성당이 있는 마을 ⓒ 이홍로
포도밭과 마을 그리고 산 위의 성 ⓒ 이홍로
산 위의 성과 마을이 만드는 아름다운 그림

밀밭길과 포도나무밭길을 걷다 보니 비야마요르 데 몬하르딘 마을이 나온다. 12세기에 건축된 산 안드레스 성당이 마을을 평화롭게 만든다. 이 마을 산 위에는 산 에스테반 성이 있는데 마을과 조화를 이뤄 아름다운 그림을 보는 것 같다.

대부분의 마을에는 한두 개의 알베르게가 있다. 순례길에 여유가 있어 마음에 드는 마을이 나오면 그곳에서 하루 쉬며 걷는다면 정말 즐거운 순례길이 될 것이다. 우리는 순례길을 32일 만에 걸었는데, 순례길을 마친 후 유럽 몇 개 국가를 여행할 계획을 세우고 열차까지 예약이 되어 있어 여유있는 순례길을 걷지 못해 아쉬웠다.

오늘(5월 19일)도 순례자 사무실에서 나눠준 일정대로면 로스 아르코스까지 21Km만 걸어야 되는데, 토레스 델 리오까지 31Km를 걸었다.

비야마요르 데 몬하르딘 마을을 지나 길 양쪽에 빨간 양귀비와 유채꽃이 핀 길을 걷는다. 사진도 찍고 지나온 이야기도 하며 걷는데 순례길 조가비 안내표지 위에 누군가 올려 놓은 신발이 눈에 띈다. 순례길을 걸으며 이런 신발을 여러번 보았는데 묘한 감정을 갖게 한다. 순례길 풍경 중 재미있는 것은 순례자 배낭에 양말, T셔츠 같은 세탁물을 매달아 말리는 모습이다. 나와 친구도 이렇게 빨래를 말린 경험이 여러번 있다. 앞에 걷는 여성도 배낭에 빨래를 매달고 힘차게 가고 있다.
꽃길을 걷고 있는 순례자 ⓒ 이홍로
순례길 안내 조가비-누군가 신발을 올려 놓았다. ⓒ 이홍로
세탁물을 배낭에 달고 가는 순례자들 ⓒ 이홍로
끝없이 이어지는 순례길 ⓒ 이홍로
아치가 있는 산타 마리아 성당 ⓒ 이홍로
화려한 산타 마리아 성당 내부 ⓒ 이홍로
순례자 조가비가 있는 성문 ⓒ 이홍로
아치가 있는 아름다운 산타 마리아 성당

아름다운 밀밭길, 포도밭길을 걷다 보니 미루나무 아래 그늘이 있다. 우린 여기에서 점심을 먹기로 하고 배낭을 내려놓았다. 미루나무 옆에는 누군가 불을 피웠던 흔적이 있다.  친구가 죽은 나뭇가지를 조금 모으더니 불을 피운다. "뭐 하려고?", "너에게 바비큐 해 주려고 그런다." 친구의 배려가 고맙다.

스페인에 오기 전부터 스페인에 가면 하몬을 먹어 보고 싶었다. 몇 번 바게트빵에 하몬을 넣어 먹어 보았는데 익히지 않은 고기를 잘 못먹는 나는 하몬을 잘 못먹었다. 친구는 하몬을 무척 좋아하고. 이런 날 위해 하몬을 생나무 가지에 꿰어 불에 살짝 익히는 것이다. 하몬이 아주 얇기 때문에 금방 익었다. 바게트빵에 익힌 하몬, 버터, 딸기쨈 등을 넣어 먹으니 그 맛이 일품이다.

점심을 먹고 1시간 30분 정도 걸으니 로스 아르코스에 도착하였다. 제일 눈에 띄는 건물은 12세기 건축물인 산타 마리아 성당이다. 성당 옆 바에서는 많은 사람들이 점심을 먹거나 맥주를 마시고 있다. 지금 시간이 오후 1시 30분. 더 걸을 것인지 여기서 알베르게를 잡을 것인지 결정해야 된다.

어제 저녁 오늘 일정에 대해 이야길 나누며 로스 아르코스에 도착하여 여러 상황을 보고 결정하기로 하였다. 우린 몸 컨디션도 좋고 조금 이른 시간이니 2시간 정도 더 걸어 토레스 델 리오까지 걷기로 하였다. 간단히 간식을 먹고 성당에 들어갔다. 성당 내부는 화려하고 아름다웠다. 천장화도 아름답고  돔 사이로 들어오는 빛이 그림을 자연스럽게 비추는데 정말 아름다웠다.

성당을 나와 순례자 조가비가 있는 성문을 통과하여 토레스 델 리오로 가기 위하여 출발한다.
산솔로 가는 들녘 ⓒ 이홍로
바람에 일렁이는 밀밭 ⓒ 이홍로
순례길에서 바라본 아름다운 마을 ⓒ 이홍로
토레스 델 리오 마을의 성당 ⓒ 이홍로
토레스 델 리오 마을의 공동묘지 ⓒ 이홍로
토레스 델 리오 마을 ⓒ 이홍로
언덕 위 성당이 아름다운 토레스 델 리오

로스 아르코스를 지나 시원한 바람이 부는 밀밭길을 걷는다. 태양은 뜨겁지만 다행히 시원한 바람이 불어 걷기에 좋다. 순례길에는 우리 둘 외에 다른 사람이 거의 없다. 나이도 들었는데 순례길 일정을 무리하게 줄이는 것에 대해 아쉬움이 있다.

둘이 걸으며 살아 오면서 힘들었던 이야기를 나누고 서로를 위로해 준다. 오랫동안 같이 걷다 보니 살아오면서 겪었던 사소한 것까지도 이야기하게 된다. 이런 이야기는 아내, 자식, 형제에게도 할 수 없었던 이야기다. 이렇게 다 이야기하고 나니 오히려 마음이 가벼워 지는 느낌이다. 이런 하찮은 일까지 내 마음속에 숨기고 있었다니 자신도 놀랐다.

서로 이야기를 하며 걷다 보니 마을이 보인다.  오늘의 목적지 토레스 델 리오다. 입구의 알베르게에 들러 접수를 하려고 하니 침대가 없다고 한다. 힘들게 두 시간이 넘도록 걸었는데 실망이다. 도로를 따라 걷다가 왼쪽으로 다시 오솔길을 걷는다. 10분 정도 걸으니 언덕 아래 작은 마을이 보인다.

마을 입구의 허물어진 집 사이를 올라가니 바와 알베르게가 붙어있는 곳이 나온다. 몇몇 사람들이 의자에 앉아 맥주를 마시고 있다. 우린 다음 알베르게를 알아보자며 조금 더 걸었다. 골목을 돌아서니 여기도 바와 알베르게가 붙어있는데 앞에 정원도 있고 운치가 있다. 들어가 침대를 알아 보니 일반 침대(8유로)는 없고 고급침대(20유로)만 있다고 한다.
친구가 바로 앞의 알베르게에 침대가 있는지 알아보고 오겠다며 배낭을 벗어 놓는다. 잠시 뒤에 나타난 친구가 손가락으로 동그라미를 만들어 보이며 침대가 있다고 한다. R.P. Casa Mariela 알베르게이다.

오늘 무리하여 31km를 걸었다. 샤워를 하고 빨래까지 양지바른 곳에 널고 바로 내려가 시원한 맥주를 한 잔하였다. 저녁 식사는 7시부터라고 한다. 침대에 누워 잠시 쉬며 일기도 쓴다. 저녁을 먹은 후 마을을 산책하기 위하여 숙소를 나섰다. 마을이 작아 10분 정도 산책을 하면 끝난다.

비싼 침대만 남았던 알베르게를 지나니 금방 마을이 끝나고 공동묘지가 나왔다. 스페인의 마을에는 마을마다 공동묘지가 있다. 우리나라처럼 묘지가 여러곳에 흩어져 있지 않고 호화 묘지도 없다. 이런 좋은 문화는 우리 실정에 맞게 도입해 보는 것도 좋겠다는 생각을 해 본다. 노을이 지기 시작하는데 언덕 위의 성당과 낙조가 잘 어울린다. 참 평화롭고 아름다운 마을이다.

숙소에 돌아와 잠을 청하는데 오늘따라 잠이 오지 않는다. 늦은 밤, 마을 주민들이 바에서 맥주 한 잔씩 하며 떠드는 소리가 침대까지 들린다.
태그:#산티아고
댓글1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사진에 취미가 있는데 주변의 아름다운 이야기나 산행기록 등을 기사화 하여 많은 사람들에게 즐거움을 주고싶습니다.

행복의 무지개가 가득한 세상을 그립니다. 오마이뉴스 박혜경입니다.

독자의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