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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깨비란 이름이 호기심을 끄는 시장. ⓒ 김종성
이름 앞에 도깨비란 재미있는 별칭이 들어간 전통재래시장은 왠지 호기심을 끈다. 서울시 도봉구 방학동 도깨비시장(방학2동 632)은 320개나 있다는 서울의 전통재래시장 가운데 도깨비란 이름이 붙은 몇 안 되는 곳이다. 이 시장을 찾아가게 된 것도 도깨비시장이라는 이름 때문이었다. 주전부리를 하며 시장을 구경하다 쉼터이기도 한 복합문화센터에 들렀다가 시장 상인회 분들에게 방학동 도깨비 시장에 대한 얘기를 듣게 됐다.

도깨비시장은 새벽에 열렸다가 아침이면 사라졌던 옛 장터로, 방학동 도깨비시장도 그런 역사를 갖고 있다. 이 시장은 1982년 주택가 골목길에서 할머니들의 노점으로 시작했다. 관의 허가를 받지 않은 비 상설 장터다 보니 당시 구청 단속반들에게 쫓겼다가 다시 나타나기를 반복했고 그 모습이 마치 도깨비 같다고 하여 도깨비 시장이라는 이름이 붙었다고 한다.

벼룩시장도 단속반들이 나오면 상인들이 벼룩처럼 여기저기로 뛰어 달아나서 그런 이름이 생겼단다. 재미있다고 생각했던 시장 별칭엔 동네 주민이자 상인들의 고달픈 사연이 숨어있었구나... 아무튼 그 이름 덕택에 지금은 도봉구 10대 명소에 드는 곳이 되었다.

함께 있었던 나이 지긋한 아저씨는 다른 얘기를 들려줬다. 당시 시장 상인들이 장사를 하다가 팔 물건이 떨어지면, 가까운 집 텃밭에 가서 채소와 과일 등을 뚝딱 따가지고 와서 '금 나와라 뚝~딱' 하는 도깨비 방망이 같다는 데서 비롯했다고.

도깨비 시장 반짝 세일에는 특별한 것이 있다
시장 한복판에 이어진 파격적인 가격의 도깨비 세일 판매대. ⓒ 김종성
'가성비' 최고의 가게들이 모인 시장. ⓒ 김종성
방학동 도깨비시장은 다세대 주택이 많은 주거 밀집 지역에 자리하여 형성된 전형적인 골목형 재래시장이다. 2003년~2004년 사이 도봉구에서 시행한 시장의 현대화와 환경개선 사업을 통해 현재 모습으로 새롭게 개장했다. 인근 지역에 대형마트가 3곳이나 들어섰음에도 주민들의 발걸음이 끊이지 않고 있었다.

2000년대 초반에만 해도 밀려드는 대형마트들로 존폐의 위기에 놓이기도 했지만, 도봉구와 상인들의 노력으로 지금은 재래시장 활성화를 성공적으로 이루어낸 곳이 되었다. 서울시 320개의 재래시장 중 '우수 재래시장 8곳'에 선정되기도 했다. 시장 활성화의 약점으로 꼽히는 주차비 문제를 해결할 저렴한 공영 주차장도 갖추고 있었다.

방학동 도깨비 시장은 긴 골목으로 이어지며 100여 개의 매장이 동편시장과 서편시장으로 나뉘어 운영되고 있다. 오토바이가 지나기엔 좁고, 자전거로는 적당한 시장통 한복판에 간이 판매대가 놓여 있어 눈길을 끌었다. 매대에 있는 상품들의 저렴한 가격 때문이다. 감자, 가지, 고추, 파프리카를 한 아름 샀는데도 도합 5000원이 들었다. 만 원의 행복이란 말이 있지만, 이곳은 천 원의 행복을 전해주는 시장이다. 흔히 말하는 '가성비' 최고의 시장이 아닐까 싶었다.

알고 보니, 도깨비시장은 매주 3회씩 손님이 가장 많이 찾는 품목을 골라 파격적인 가격으로 파는 '도깨비 세일'을 한단다. 이외에도 시장 한복판에 설치한 판매대에 각 점포의 인기 품목들을 올려놓고 30% 정도 싸게 팔고 있다.

도깨비 시장 반짝 세일에는 특별한 것이 있다. 가게마다 돌아가면서 하는 반짝 세일은 내 가게가 오늘 좀 손해를 보더라도 시장에서 손님을 끌면 결국 이익으로 돌아오고, 다음에는 다른 점포가 내 가게에 손님을 불러 모아줄 것이라는 믿음이 있지 않으면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시장을 살리기 위한 상인과 지자체의 노력
정기적으로 마케팅 교육을 받고 있는 시장 상인들. ⓒ 방학동 시장 상인회 제공
장을 보다가 들르기 좋은 쉼터 겸 북카페 도깨비방. ⓒ 김종성
도깨비시장이 주민들의 사랑을 받는 이유는 무엇보다 저렴한 가격과 질 좋은 상품 그리고 상인들의 단합을 들 수 있다. 방학동 도깨비시장의 주력 상품은 1차 상품으로 대형 마트보다 30~40% 정도 저렴하다. 천 원 단위로 파는 과일과 채소가 많고, 반찬이 3팩에 5000원, 옛날식 통닭은 한 마리에 4000원이었다. 고소한 기름을 바르며 썰어주는 맛난 김밥은 한 줄에 1200원, 팥 도넛·꽈배기 등도 3개 1000원이다. 방학동에 사는 주민들이 부러울 정도였다.

방학동 도깨비 시장도 한때 외환위기와 유통시장 개방으로 폐시 위기를 맞았다. 경기가 침체해 손님이 줄은 데다가, 2000년을 전후해 주변에 대형마트가 3개나 들어서면서 손님들을 완전히 쓸어갔다. 가게 문 열고 하루 종일 맞은편 점포 주인이랑 얼굴 쳐다보는 게 일이었단다.

이런 도깨비시장에 변화의 바람이 일기 시작한 것은 2003년부터다. 이러다 모두 굶어 죽는다는 말이 나오기 시작하면서 시장 상인들이 살길을 찾아 나섰고 마침 중소기업청의 지원을 받아 천장에 투명 아케이드, 주차장 등을 설치하고 말끔하게 환경개선을 했다. 이후에는 상인들이 단결해 대형 마트 못지않은 마케팅을 벌였다.

원가를 낮추기 위해 산지에서 공동 구매를 하고 파격적인 가격 행사와 이를 알리기 위한 전단지를 제작 배포했다. 이러한 노력 덕분에 주말이 아닌 평일에도 많은 손님이 찾는 시장이 됐다. 손님과 점포주인 모두 노령화되는 다른 재래시장과 달리 도깨비 시장에서는 젊은 손님과 상점 주인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아버지와 아들이 함께 일을 하고 있는 모습도 흐뭇했다.
부모와 함께 일하는 젊은 세대가 많아 흐뭇했다. ⓒ 김종성
방학동 도깨비 시장의 공동기획상품이 된 울금. ⓒ 김종성
시장 풍경을 카메라에 담다 보면, 사진 찍는 걸 거북해 하는 시장도 있는데 이곳은 사진촬영에 다들 거부감이 없다. 시장 안에 있는 복합문화센터에서 정기적으로 마케팅, 홍보 관련 교육을 받고 있단다. 주민이나 손님들이 찍어가는 사진이, 기사든 블로그든 SNS든 각종 매체를 통해 홍보가 된다는 걸 알게 된 거다.  

상인들의 교육장이자 쉼터이기도 한 복합문화센터 외에 공영주차장 옆에 도깨비 방이라는 북카페 겸 모임 공간이 있다. 장을 보다가 만난 이웃 주민들이 만나 담소도 나누고 책도 읽고 차도 마실 수 있는 사랑방 역할을 담당하고 있다.

방학동 도깨비시장은 2015년 중소기업청 공모사업(경영현대화 사업분야)에서 '골목형시장 육성사업'에 선정되어 한층 발전을 하고 있다. 골목형시장 육성사업이란 전통시장의 특성화 요소를 발굴, 주민들의 생활과 함께할 수 있는 전통시장으로 육성하고자 하는 경영현대화사업이다.

이 사업을 통해 탄생한 것이 공동기획상품인 울금이다. 최근 건강식품으로 부각되고 있는 울금을 생산지인 전남 진도의 경작자와 직접 연계, 상품화하여 가공판매하고 있다. 시장에서 진도산 울금을 팔던 상인 아저씨의 아이디어가 상품화됐다.

울금은 생강과에 속하는 다년생 초본식물의 뿌리로, 소화 흡수를 돕고 독소 배출을 촉진시켜 면역력을 높여주고 신진대사를 촉진시켜 건강하게 해주는 슈퍼 푸드다. 강황과 혼동하기도 하는데 강황은 수입산이고 울금은 국내산이라고 생각하면 된다. 시장통을 지나다보면 울금 수제비, 울금 물회, 울금 추로스 등 노랑 울금 가루가 들어간 음식들이 호기심을 끈다.

방학동 도깨비시장을 살린 '골목형 시장 육성사업'이 다른 전통시장에도 잘 추진되어 시장이 살아나고 활기를 띄는 계기가 되길 기대한다. 

덧붙이는 글 | ㅇ 교통편 : 수도권 전철 1호선 방학역 도보 15분
ㅇ 문의 : 02) 954-1225 (방학동 도깨비 시장 상인회)
서울시 ‘내 손안의 서울’에도 송고하였습니다.

태그:#방학동도깨비시장, #전통시장, #골목형시장육성사업, #울금, #중소기업청공모사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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