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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경험해보는 알베르게(순례자 숙소)는 여러 사람들이 같이 잠을 자는데 옆에서 코고는 소리, 침대 난간에 널은 빨래에서 나는 냄새 등은 순례객들이 이겨내야 할 또 다른 과제이다.

빗소리를 들으며 잠을 깬 뒤 뒤척이다가 시간을 보니 오전 5시, 살며시 일어나 카메라를 들고 밖으로 나왔다. 론세스바예스 성당은 오래된 성당으로 지금은 알베르게로 활용하는데 그 규모가 엄청 크다. 비를 맞으며 성당을 산책한다.   

비는 내려도 계획된 길은 걸어야 된다. 5월 15일 오늘은 론세스바예스에서 라라소아냐까지 25Km를 걸을 계획이다. 판초 우의를 입고 걷는 것은 싫지만 어쩔수 없다. 산책을 마치고 침대로 돌아가 침낭 등 짐을 챙긴다. 오전 6시가 조금 넘었는데 벌써 출발하는 순례객도 있다.

친구와 나는 식당으로 가서 여행용 미역국에 뜨거운 물을 부어 만든 미역국과 햇반으로 아침식사를 하고 출발한다. 지금 시간이 7시 반이다. 성당을 나서니 바로 밀밭길이다. 길은 내린 비로 진흙탕이다. 1시간 반 정도 걸으니 마을이 나타나고 바(BAR)가 보인다. 앞서 가던 친구가 바에 들어가더니 빵과 과일 등 점심을 준비하여 나온다.
새벽 론세스바예스 성당 풍경 ⓒ 이홍로
부르게테- 어네스트 헤밍웨이가 가끔 머물던 마을 ⓒ 이홍로
산티아고 순례길을 같이 걸으며 마음을 나누었던 친구 ⓒ 이홍로
마을 풍경 ⓒ 이홍로
이 마을은 브르게테로 나바르 전통마을인데 안내 책자에 어네스트 헤밍웨이가 종종 머물던 브르게테 호텔이 있는 곳이라고 한다. 스페인의 주택들은 대부분 도로에 접해 있고 1층은 가게, 2~3층은 주택이다. 주택 안으로 들어가면 안쪽에 정원이 있다.

마을을 벗어나 오른쪽으로 돌아 서니 푸른 초원이 나온다. 목장에는 말들이 평화롭게 풀을 뜯고 있다. 초원 넘어로 빨간 지붕의 마을이 초원과 잘 어우러져 참 아름답다. 얼마를 걷다 보니 파란 하늘이 나온다.  판초우의를 벗으니 그렇게 기분이 좋을 수 없다. 친구는 어느새 배낭 양쪽에 양말을 매달아 말리면서 걷고 있다.

걷다가 한국인 청년을 만났다. 청년은 혼자서 이 순례길을 걷는다고 한다. 작은 마을을 지나 언덕을 오르는데 강한 햇살이 너무 뜨겁다. 비가 와도 문제요, 날씨가 맑아 강한 햇볕이 비추어도 문제다. 순례길을 걸을 때 준비해야 될 것이 챙이 넓은 모자와 선글라스다.

언덕을 오르며 잠시 쉬고 있는데 그 한국 청년 옆에는 어느새 파란 눈의 서양 처녀가 앉아 있고 둘이서 즐거운 대화를 하고 있다. 순례길에서는 누구나 서로 인사하며 금방 친해진다.
도시를 벗어나니 푸른 농장이 나났다. ⓒ 이홍로
목장 사잇길을 걷는 순례객들 ⓒ 이홍로
비가 내려 더욱 푸른 초원과 멀리 아름다운 마을 ⓒ 이홍로
넓은 목장 ⓒ 이홍로
비가 그치고 햇살이 쨍한 순례길 ⓒ 이홍로
땀을 흘리며 몇 시간 걷다 보니 멋진 다리가 나타났다. 아르가강에 놓여 있는 라비아 다리이다. 햇볕으로 옷은 잘 말랐는데 아직도 등산화는 축축한 상태이다. 강가로 내려가 발을 씻고 샌들로 갈아 신었다.

신발을 바꿔 신고 있는 사이에 한 할바버지가 말을 타고 나타나셨다. 카메라를 꺼내 사진을 찍어도 되냐고 하니 멋지게 포즈를 취해 주신다. 순례객들을 기쁘게 해주기 위해 말을 타고 마을을 한바퀴 돌으시나 보다.  주비리에 도착하니 오후 3시다. 이 정도 시간이면 대부분 알베르게에 들어간다. 주비리 마을 입구의 바에도 순례객들이 알베르게를 정하고 나와 맥주 한 잔씩하며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우리는 여기에서 4km 정도 떨어진 라라소아냐까지 걷기로 하고 발걸음을 옮긴다.  도로를 조금 따라 걷다 보니 우리나라 레미콘회사 같은 공장이 나타난다. 나중에 책을 보니 마그네시타스공장이라고 한다.

마음속으로 미워하던 사람들을 용서하다

공장을 지나 작은 오솔길을 걷는데 햇볕은 뜨겁고 걷는 사람도 거의 보이지 않는다.  대부분 주비리에서 숙소를 정하였는가 보다. 친구와 호젓한 길을 걸으며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다. 친구와 나는 19살 첫 직장에서 만났다. 둘다 어려운 가정 형편으로 직장을 다니며 공부를 하였다. 그때 겪었던 힘든 이야기들, 가족간에 힘든 이야기, 즐거웠던 이야기를 32일 걷는 내내 이야기를 나누었고, 서로 위로하고, 격려해 주면서 걸었다.

걷기 8일차에 만났던 부여에서 오신 분도 대기업에서 근무하다 퇴임 후 순례길을 세 번째 걷는데, 이 길을 걸으며 자신을 힘들게 했던 사람들, 자신이 죽도록 미워하던 사람들을 이 길에서 다 떨쳐버렸고, 그렇게 하고 나니 마음이 그렇게 가벼울 수가 없었다고 하였다.
아르가 강의 라비아 다리 ⓒ 이홍로
강가에서 휴식을 취하고 있는 순례객 ⓒ 이홍로
라비아 다리 옆에 말을 타고 나타난 할아버지- 순례객들을 즐겁게 해 주기 위해 말을 타고 마을을 다니신다. ⓒ 이홍로
주비리에서 라라소아냐로 가다가 만난 목장 풍경 ⓒ 이홍로
우리가 몪은 라라소아냐 알베르게 ⓒ 이홍로
땀을 흘리며 힘들게 언덕에 올라서니 작은 마을이 나타났다. 스페인의 시골 마을도 우리나라 시골 마을 처럼 사람 만나기가 힘들다. 대부분 나이드신 분들이고 아이들은 만나기 힘들다.

산자락 아래에는 소들이 한가롭게 풀을 뜯고 있다. 주비리에서 1시간 20분 정도 걸어 라라소아야에 도착하였다. 도로 바로 옆에 있는 알베르게에 들어갔다. 우리는 카미노를 걷는 동안 대부분 지자체 지원 알베르게에 머물렀다. 대부분 저렴하고 시설도 좋기 때문이다. 순례자 증서에 도장을 받고 침대를 배정받은 후 샤워를 하고 빨래도 하여 뒷마당에 널었다. 순례길을 걷는 동안 빨래는 하루도 빠짐없이 해야 한다. 나중에는 빨래 선수가 되었다.

주방에 가 보니 조리 도구가 있고 가스렌지도 있어 마트에 가서 재료를 사다가 밥을 해 먹어야 되겠다고 생각했다. 순례자 안내책에도 주방 시설이 있는 곳에서는 요리를 해 먹을 수 있다고 되어 있었다. 여기는 오후 2시부터 5시까지 시에스타라고 하여 가게 문을 닫고 물건을 팔지 않는다. 5시가 되어 슈퍼마켓에 들러 쌀과 감자, 양파, 하몬 등을 사가지고 왔다.

요리를 하려고 가스불을 켜는데 불이 켜지지 않는다. 관리하는 아주머니에게 이야기를 하니 얼마 전부터 전자렌지만 사용하게 하고 조리를 하지 못하게 하였다고 한다. 좀 더 자세히 알아보지 않고 재료를 사온 게 실수 였다. 우리 둘은 고민 하다가 양파, 감자, 고기, 계란 등을 접시에 담아 전자렌지에 10분 정도 돌렸다.  와! 세상에 단 하나 밖에 없는 그럴듯한 음식이 만들어 졌다. 둘이서 맛있게 저녁을 해결하였다.

침대에 가 보니 옆 침대에는 폴란드에서 온 중년 여인 두 명이 쉬고 있다. 서로 간단히 인사를 하고 일기도 쓰고, 사진도 정리를 한다. 폴란드 여인이 발에 물집이 생겼는지 물집을 터트리려고 한다. 이것을 본 친구가 기다리라며 바늘에 실을 꿰어 물집의 물을 빼고, 분말 마데카솔을 뿌린 후 반창고를 붙여준다. 그 폴란드 여인이 얼마나 고마워 하던지. 그 뒤 순례길 걷는 동안 수없이 만났다가 헤어지는데 만날 때마다 서로 반가워 포옹을 하곤 했다.

순례길에서는 만나는 사람마다 "올라(안녕)" "뷰엔 카미노(즐거운 순례길이 되길)" 하면서 반갑게 인사를 나눈다.
태그:#산티아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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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에 취미가 있는데 주변의 아름다운 이야기나 산행기록 등을 기사화 하여 많은 사람들에게 즐거움을 주고싶습니다.

행복의 무지개가 가득한 세상을 그립니다. 오마이뉴스 박혜경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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