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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월 오랫동안 다니던 직장에서 정년퇴임을 했다. 퇴직을 하면 제일 하고 싶었던 일이 스페인의 순례길 산티아고를 걷는 것이었다. 1년 정도 준비하면서 산티아고에 관련된 책들을 읽고 같이 동행할 친구들을 알아 봤다. 같은 직장 친구가 같이 동행하기로 했다가 6개월이 지난 뒤 함께 가지 못하겠다고 얘기 한다.

2년 전 이미 퇴임한 친구에게 이야기 하니 본인도 꼭 걷고 싶었던 길이었다며 같이 가겠다고 한다. 항공권은 1년 전부터 알아 보다가 떠나기 6개월 전 파리 왕복권을 75만 원에 구입하였다. 요즘은 순례길을 편하게 할 수 있도록 많은 상품이 있다고 한다. 친구와 나는 순례길을 마치고 한 달 정도 유럽을 여행할 계획이어서 개별적으로 준비하였다.

지난 5월 11일 인천 공항을 떠나 파리로 갔다. 파리에서 여독을 풀고 13일 파리 몽파르나역에서 9시 20분 TGV 열차를 타고 바욘역에 도착하니 오후 3시 20분, 바욘에서 생장 피드포르로 가는 열차를 예약(18시 6분)하고 바욘 시내를 잠시 산책하였다. 이곳에는 오래된 성당이 있는데 그저 역에서 열차만 기다리고 있는 것보다 바욘 시내를 산책하는 것이 더 즐겁다.

생장 피드포르행 열차 안에서 한국인 네 명을 만났다. 생장 피드포르역에서 내려 사람들을 따라 순례자 사무소에 들러 등록을 하니 순례에 필요한 일정표와 알베르게 정보를 프린트하여 나누어 준다. 생장피드포르에 좀 늦게 도착하여 값싸고 좋은 알베르게는 자리가 없고, 가격이 높거나 불편한 숙소만 남았다.

친구와 나는 36번 알베르게에 20유로를 주고 잤는데 나중에 알고 보니 순례자들 사이에서 악명 높은 아주머니였다. 금지 사항을 책으로 만들어 설명하더니 내일 아침 7시 전에 일어나면 안 된다고 한다. 아침은 우리가 준비한 것을 먹으려고 뜨거운 물만 달라고 하니 알았다고 한다.
생장 피드포르역에 많은 순례자들이 하차하였다. ⓒ 이홍로
순례자 사무소로 가는 순례객들 - 기타를 가지고 가는 순례객도 있다. ⓒ 이홍로
생장 피드포르의 순례자 사무소 골목 ⓒ 이홍로
순례자 사무소 ⓒ 이홍로
숙소를 정하고 난 뒤 순례자 사무소 뒤에 있는 고성에 올라 보면 경치가 좋다. 고성의 운치도 좋지만 여기에서 생장 피드포르 시내를 한눈에 볼 수 있어 좋다. 성 안쪽으로 가면 울창한 숲이 고성과 어울려 매우 아름답다.

14일 아침 7시에 일어나 아주머니에게 뜨거운 물을 얻으려고 하였으나 뜨거운 물은커녕 식탁에서 밥도 못 먹고 나가서 먹으라 하여 30분쯤 걷다가 아침 식사를 하였다. 그래도 친구와 나는 오랫동안 준비하고 걷기로 한 길이기에 즐겁게 걸었다. 시내를 벗어나니 푸른 초원이 눈을 시원하게 해 준다. 많은 사람들이 아침 일찍부터 부지런히 길을 걷는다.

이날 걷는 길은 생장 피드포르에서 론세스바예스로 27.1㎞이다. 전체 일정 중에서 힘든 구간 중 하나이다. 해발 260미터에서 해발 1400미터까지 오르는 길이다. 어제 순례자 사무소에서 비가 내리지만 나폴레옹 루트를 걸을 수 있다고 했다. 이 길이 경치가 아름답다고 한다.
순례자 사무소 뒤의 성 ⓒ 이홍로
순례자 사무소 뒤의 성에 오르면 생장 피드포르의 시내가 한눈에 보인다. ⓒ 이홍로
첫날 아침 출발하며 바라본 생장 피드포르 풍경 ⓒ 이홍로
시내를 벗어나 피레네산맥으로 올라가며 바라본 풍경 ⓒ 이홍로
순례자 길 ⓒ 이홍로
목장, 양들이 평화롭게 풀을 뜯고 있다. ⓒ 이홍로
이름모를 짝은꽃이 핀 오리송봉, 비가 내려 더욱 아름답게 보인다. ⓒ 이홍로
피레네 산맥을 오르는 순례객들 ⓒ 이홍로
오리송에 있는 호스텔 겸 식당 ⓒ 이홍로
순례길은 넓고 대부분 흙길이어서 걷기에 좋다. 가끔은 포장된 길이 나오는데 자신의 체력에 맞게 속도를 내야 된다. 너무 빠르게 걷다 보면 피곤하기도 하지만 발에 물집이 생겨 고생 하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친구와 나는 멋진 경치가 나오면 사진도 찍으며 즐겁게 걸었다. 걷다가 한국인 여대생 둘을 만났다. 젊은 나이에 힘든 이 길을 걷는 것이 대견하다. 산을 오를수록 경치는 좋지만 10㎏가 넘는 배낭에 카메라 가방까지 있으니 힘이 든다. 바람이 불고 비까지 내려 우비를 입었다가 벗었다를 반복한다.

비는 내리고 바람도 불어 걷기가 힘들다. 오리송봉을 오르니 산아래 풍경이 파노라마처럼 펼쳐진다. 전망대에 오른 순례객들이 환호를 지른다. 서로 엄지 손가락을 치켜들며 경치가 좋다며 활짝 웃는다. 생긴 모습, 언어는 달라도 느끼는 감정은 비슷한 것 같다. 오리송 휴게소에 도착했다. 우비를 벗고 짐을 내려 놓으니 어깨가 가볍다. 식당에 들어가 따뜻한 수프와 빵, 와인을 시켜 맛있게 먹었다. 몸이 따뜻해지니 기분도 좋아진다.

우리는 첫날 순례길을 걸으며 먹을 간식을 준비하지 못했다. 생장 피드포르에 가면 슈퍼가 있을 거라 생각했는데 아무리 찾아도 슈퍼마켓이 없었다. 혹시 이 순례길을 걸을 계획이라면 바욘이나 파리 등에서 미리 간식을 준비하는 것이 필요하다. 힘들게 산을 오르는데 간식이 부족하여 더 힘이 들었다.
피레네 산맥 풍경 ⓒ 이홍로
아름다운 풍경이 있어 힘들어도 즐겁다. ⓒ 이홍로
빗속의 순례길 ⓒ 이홍로
멋진 숲길 ⓒ 이홍로
드디어 도착한 론세스바예스 알베르게 ⓒ 이홍로
새벽 론세스바예스 알베르게 풍경 ⓒ 이홍로
산을 오를수록 빗줄기는 거세지고 안개까지 끼었다. 가끔씩 안개가 걷히면 정말 아름다운 풍경이 나타난다. 안갯속에 산을 오르다 보니 어느새 정상에 올랐다. 기념 사진을 찍어 보지만 여기가 피레네 산맥 정상인지 증명할 방법이 없다.  

이제부터 내리막길이다. 순례길 오른쪽은 숲이 우거져 있는데 왼쪽 산은 나무가 하나도 없고 초원이다. 가끔 양떼들이 풀을 뜯는다. 얼마를 내려가니 철조망이 나오고 국경 표시 팻말이 보인다. 지키는 사람 아무도 없는 국경이다. 여길 넘으면 스페인이다. 

숲이 우거진 길, 안개가 자욱한 길로 순례자들이 걷는데 마치 다른 세계로 들어가는 것 같다. 내리막 길은 비가 내려 무척 미끄럽고 경사가 심하여 걷기가 힘들었다. 앞서 가던 한국인 부부는 부산에서 오셨는데 부인은 순례길이 세 번째이고 이번에 남편과 함께 오셨는데 남편은 발목을 다쳐 절뚝이며 힘들게 내려가고 있었다.

바지는 진흙길을 걸어 오느라 다 버렸고 판초 우의를 입었지만 윗옷도 다 젖었다. 배낭은 레인커버를 씌웠고, 판초 우의를 입었으니 괜찮으려나? 힘들게 걷다 보니 눈 앞에 거대한 성이 나타났다. 론세스바예스 대성당이다. 아침 7시에 출발하여 지금이 오후 4시 30분, 비가 내려 사진도 잘 찍지 못하고 시간도 더 많이 걸린 것이다.

순례자 사무실에 가서 확인을 받고 숙소 8유로, 저녁 식사비 10유로를 내고 방을 배정 받았다. 이곳은 180명을 수용할 수 있는 알베르게인데 우리가 배정 받은 숙소는 20명 정도 잘 수 있는 2층 침대이다. 부산에서 온 부부도 바로 옆 침대를 배정 받았다. 따뜻한 물로 샤워를 하고 세탁도 하였다. 비가 내리니 세탁물은 침대 난간에 널었다.

배식은 8시 30분에 하는데 우린 너무 배가 고파 자판기에서 초콜릿과 즉석 조리 음식으로 배를 채웠다. 오후 8시 식당으로 가 보니 수많은 사람들이 배식을 기다리고 있다. 저녁은 스프, 파스타, 빵, 쇠고기, 와인 등 진수성찬이다. 부족하면 더 가져다 준다.

각 나라 사람들이 같은 식탁에서 식사하는데 프랑스인 부부, 이탈리아인 부부 등 서로 간단히 소개를 하고 즐거운 이야기를 나눈다. 프랑스 남자는 우리가 스틱을 이용하여 걷는 모습을 흉내내며 잘 걷는다고 엄지 손가락을 치켜세운다. 큰 카메라로 사진을 찍는 것을 보았다며 프로냐고 묻는다. 아마추어인데 사진 찍는 것을 좋아 한다고 했다. 잠깐 잠들었다가 깨었는데 밤새 빗소리가 들린다.
태그:#산티아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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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에 취미가 있는데 주변의 아름다운 이야기나 산행기록 등을 기사화 하여 많은 사람들에게 즐거움을 주고싶습니다.

오마이뉴스 편집기자. 시민기자 필독서 <아직은 좋아서 하는 편집> 저자, <이런 질문, 해도 되나요?> 공저, 그림책 에세이 <짬짬이 육아>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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