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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날 교실에서 볼 수 있었던 풍경 중 이런 모습이 있었다. 숙제를 안 해 온 학생이 교실에 한 명이라도 있을 시 선생님은 숙제를 안 한 학생뿐만 아니라 그 학급의 학생 전체를 체벌했다. '한 학급의 학우가 숙제를 해 오도록 다 함께 챙기지 않았다'는 명분에서였다.

전체 체벌을 하는 선생님들의 목적은 다름이 아닌 '교실의 공동체 의식 강화' 다. 하지만 선생님의 의도와는 달리 전체 체벌이 끝나고 나면 숙제를 안 한 학생은 억울하게 체벌당한 전체 학생들로부터 따돌림이나 괴롭힘을 당하는 일이 비일비재했다. 이것이 비단 '학급' 에서만 일어나는 공동체주의의 폐단일까.

 지난 6월 19일 오후 7시 올랜도 다운타운 레이크 이올라 파크에서 열린 촛불 추모집회에 모인 올랜도 시민들이 총기난사로 숨진 49명의 희생자들을 추모하고 53명의 부상자들의 회복을 기원하고 있다.
 지난 6월 19일 오후 7시 올랜도 다운타운 레이크 이올라 파크에서 열린 촛불 추모집회에 모인 올랜도 시민들이 총기난사로 숨진 49명의 희생자들을 추모하고 53명의 부상자들의 회복을 기원하고 있다.
ⓒ 김명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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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2일, 미국 플로리다 주의 관광도시 올랜도가 슬픔에 잠겼다. 올랜도의 한 나이트 클럽에서 발생한 총기난사 사건은 무고한 시민 49명을 사망에 이르게 만들었다. 미국 전 역에서는 사건 이후 이유없이 희생당한 청년들의 넋을 기리는 추모 열풍이 이어졌으며 한참 대선을 놓고 치열한 접점에 있는 정치권에서는 '올랜도 테러사건' 이 선거의 중요한 변수로 대두되기도 했다.

민주당 후보 힐러리 클린턴은 이번 사건을 계기로 미국의 총기규제를 강화해야 한다고 주장한 반면, 공화당 후보 도날드 트럼프는 이번 사건의 초점을 '무슬림'에 맞췄다. 그는 올랜도 테러 사건의 범인을 '무슬림 총잡이'라고 규정하며 타 국에 테러 위협을 가한 국가 소속의 무슬림은 미국에 입국하지 못하는 법안을 확실히 하겠다고 선언했다. 트럼프의 이 발언은 곧 모든 무슬림들을 미국에서 몰아내겠다는 말과도 동일하게 읽힌다.

도날드 트럼프 후보는 대선 후보가 확정되기 이전부터도 각종 여성 차별, 인종 차별 발언으로 물의를 빚었던 후보다. 특히 그의 확고한 '반 무슬림' 사고는 미국 내 많은 사람들로부터 '전체주의를 야기할 수 있는 위험한 사고방식'이라는 지적을 받은 바 있다. 비난이 거세지자 트럼프 후보는 잠시 '반 무슬림 행보'를 유보하는 듯했지만 이번 올렌도 테러사건으로 인해 다시금 자신의 행보에 확신을 더한 듯하다.

놀라운 것은 이번 총기사건 이후 미국 내 여론도 트럼프의 '반 무슬림 행보'에 설득당하고 있다는 점이다. 미국의 로이터 통신에서 조사한 여론조사 결과에 따르면 본래 13%P가량 차이나던 힐러리 후보와 트럼프 후보의 지지율 차이가 올랜도 총기사건 이후 11.6%P의 차이로 2%P가량 좁혀졌다. 이 2%P를 '올랜도 총기사건' 으로 인한 미국 국민들의 변심이라고까지는 단정짓기 어렵지만 정치학자들은 중립적 성향을 띄던 미국 공화당 지지자들의 마음이 트럼프 후보쪽으로 굳어지는 데엔 이번 총기사건이 크게 한 몫을 했다고 지적한다.

파리, 벨기에에서 연속으로 벌어진 IS에 의한 대형테러와 이번 올랜도 총기사건으로 안보 강대국인 미국이 바짝 긴장하기 시작했다. 안보에 대한 현지 국민들의 시선도 더 이상 예전같이 느슨하지 않다. 대선 철을 앞두고 안보에 대한 불안이 부쩍 급증한 국민들과 그런 국민들의 불안을 최대한 대선에 유리한 방향으로 이끌고 있는 미국의 정치권 모습을 보자면 꼭 우리나라 선거철의 '북풍'과도 유사하다는 생각이 든다.

정보도 방어력도 없는 일반 국민들이 테러에 대한 불안에 떨고 테러를 자행하는 인종이나 종교에 대한 편견을 갖는 것은 어쩔 수 없는 현상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국가 안보의 키를 쥐고 있는 정치권은 본질을 바라볼 수 있어야 한다. 국민의 불안감과 혐오감을 조장해 특정 인종이나 국가를 혐오하게 만드는 정치인은 언제나 최악의 독재자로 전락해 버린다는 사실을 우리는 '히틀러'라는 인물을 통해 뼈저리게 통감하고 있다.

국가의 안보를 위해 온 국민이 뜻을 모으자는 말은 결코 나쁜 말이 아니다. 한 나라의 지도자가 될 사람으로서 엄연히 국민에게 호소할 수 있는 말이기도 하다. 하지만 '공동체 정신'과 '전체주의'의 경계가 애매하다는 것은 우리 모두가 언제나 경계해야 할 사실이다.

신뢰로 뭉친 공동체주의의 결과는 사랑인 반면 불안으로 뭉친 전체주의의 결과는 처참하기 그지없는 혐오를 위한 혐오다. 트럼프 후보가 자신의 행보를 굽히지 않겠다면 이번엔 미국의 시민들에게 호소할 차례다. 올랜도 총기 사건은 미국뿐만 아닌 전 세계에서 두 번 다시 일어나선 안 될 참사다. 하지만 모든 무슬림에 대한 근본 없는 혐오는 결코 미국 시민들을 테러로부터 지켜주지 못한다는 사실을 기억하기 바란다.


#올랜도 총기난사#도날드 트럼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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