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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요리 1. 김부각
 그림요리 1. 김부각
ⓒ 심혜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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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달 전, 시어머님이 김 한 톳을 보내주셨다. 두세 달에 한 번씩 김치와 채소 등 각종 먹을거리가 택배로 올라온다. 한 번에 열 가지 정도씩, 그때그때 다양한 것들이 들어 있다. 열무김치와 갑오징어는 냉장고에 넣고, 양파는 너무 양이 많아 지인과 나눴다.

지난 번에 보내주신 돌김이 아직 반도 넘게 남아 있는데, 이번에 또 보내셨다. 아마 보내신 걸 깜박하셨나 보다 했다. 물건을 정리한 후 어머님께 전화를 드렸다. 감사하다고, 잘 먹겠다고 인사를 하자 어머님이 말씀하신다.

"김밥김 보냈응께 김밥 싸서 나들이 댕기고 그래라."

아, 그게 김밥김이었구나. 김밥김 백 장이라. 역시. 손 큰 어머님답다. 어찌됐든 나는 '지령'을 수행해야 했다. 환한 봄날, 나들이 다녀오길 바라는 어머님 마음을 알 것 같았기 때문이다.

남편과 함께 친정 식구들과의 나들이를 계획했다. 밥 한 솥을 모두 쏟아 김밥을 만들었다. 속을 튼실하게 넣었더니 무게만 해도 만만치 않았다. 도시락을 펼치자 엄청난 양에 친정 식구들은 모두 입을 떡 벌렸다. 이날 여섯 명이서 김밥김 열다섯 장을 처리했다.

사실 김밥은 손이 많이 가는 음식이다. 분식집에서 김밥을 주문하면 한 개를 마는데 1분도 걸리지 않는다. 물론 미리 재료를 준비해 놓았기에 가능한 일이다. 실상은 재료를 다듬고 썰고 볶고 데치는 과정이 시간을 많이 잡아 먹는다.

바쁘고 피곤한 일상 속에 김밥을 '싸서' 나들이를 간다는 건, 생각만큼 편안하고 즐거운 풍경이 아니다. 김밥 싸는 데 두세 시간을 들인 노동의 흔적이 젓가락 몇 번에 완전히 사라지니까. 게다가 김밥의 유통기한은 하루. 오래 보관해 두고 먹을 수도 없다. 여러 가지로 노동 대비 비효율적인 음식이다.

한 달이 지나도록 김밥김은 한 장도 줄지 않았다. 그도 그럴 것이 김밥김의 생명은 맛이 아니다. 김밥 옆구리를 얼마나 잘 사수하느냐, 그것이 관건이다. 그래서 생으로 먹기엔 질기고, 두꺼워서 구워도 맛이 없다. 냉장고 한 구석을 차지하고 있는 김밥김이 점점 부담스러워졌다. 저 많은 김밥김을 어쩌나.

그러다 문득 떠오른 음식이 있었으니, 바로 김부각이다. 김부각은 김에 찹쌀풀을 발라 말려야 하는 것이어서 얇은 김으로 만들면 잘 찢어져 번거롭다. 재료도 찹쌀가루와 소금, 여기에 옵션으로 통깨만 있으면 된다. 한꺼번에 만들어 냉동실에 보관하면 두고두고 맛있게 먹을 수 있으니 효율적이다. 맛은 기본이고, 튀겨서 상에 내놓으면 자태가 얼마나 고급스러운지!

당장 실행에 돌입했다. 찹쌀가루에 소금을 넣고 뻑뻑하게 풀을 쒔다. 식을 때까지 잠시 기다렸다가 김 절반에 풀을 발라 반으로 접었다. 그 위에 풀을 한 번 더 바르고 통깨를 군데군데 뿌려줬다. 나는 모양을 내려고 따로 찰밥을 해 조금씩 김 위에 얹었다. 나중에 튀겼을 때 모양이 예쁘고 씹는 맛이 좋기 때문이다.

취향에 따라 고춧가루를 뿌리기도 한다. 이제 비닐이나 채반 위에 펴서 말리기만 하면 끝이다. 요즘처럼 햇빛이 강하고 바람이 잘 부는 날 부각을 만들면 좋다. 나는 말릴 곳이 마땅치 않아 건조기에 돌렸다. 하룻밤이면 바싹 잘 마른다.

이렇게 김밥김 열다섯 장이 부각으로 변신했다. 남은 김을 바라보는 내 눈빛도 달라졌다. 김밥김아, 맛없다고 오해해서 미안해. 이참에 더 맛있게, 더 고급스럽게 만들어 어머님께 한 봉지 보내드려야겠다. "아버님하고 술 한 잔 하시면서 드세요"라는 말도 전하면서.

김부각 사진 원본. 사진과 그림은 당연히 다를 수 있다.
 김부각 사진 원본. 사진과 그림은 당연히 다를 수 있다.
ⓒ 심혜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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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그:#그림요리, #김부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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