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변산공동체학교.
 변산공동체학교.
ⓒ 강정민

관련사진보기


노동이 소중한지 모르는 요즘 아이들, 모내기 하러 나서다

아이들이 땀의 소중함을 아는 사람으로 자라길 바랐다. 그런데 실상은 땀의 소중함을 배울 기회가 많지 않다. 나 어릴 때는 달랐다. 어릴 적 우리 집은 문방구를 했다. 집엔 언제나 내가 해야 할 일이 있었다. 손님이 오면 물건을 팔아야 했고 틈틈이 갱지를 세야 했다.

노동이 소중한지 자연스레 깨달았다. 그에 반해 요즘 아이들은 그리고 우리 집 아이들은 어떤가? 소비의 주체로만 크는 건 아닌지 걱정이다. 땀의 소중함을 배울 기회를 만들어줘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얼마 전, 지인이 변산으로 모내기 울력에 같이 가자고 제안했다. 울력에 가면 초등학교 3학년 막내에게 노동의 소중함을 배울 수 있을 거란 생각이 들어서 가기로 마음먹었다.

출발 당일(6월 2일)서울에서 출발해서 다섯 시 경 변산 공동체 학교에 도착했다. 청년들이 농구를 하고 있다. 뒤편엔 제법 큰 2층 건물이 보인다. 운동장을 둘러싸고 있는 건물들이 있다. 운동장 왼편엔 식당이 있고 건너편 황토집이 우리 숙소다. 막내는 같이 차 타고 온 고등학생 형과 친해져서 남자 방에서 자겠다고 한다.

화장실은 2층 건물 뒤편에 있는데 친환경이라 볼일을 본 뒤 바가지로 겨를 뿌려야 한다. 휴지도 없이 신문지만 있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냄새는 안 난다. 화장실을 본 막내가 한 말.

"와~ 완전 싸구려야! 난 여기서 절대 안 싸."

역시 소비의 주체다운 발언이다.

저녁을 먹고 작업회의 때문에 식당에 모였다. 내일 모내기 못할 사람 손을 들란다. 대신 마늘쫑 베기 작업을 해야 한단다. 감기 기운도 있는데 모내기 못한다고 할까? 그런데 마늘종 작업반장 표정이 범상치 않다.

"내일 마늘종 작업하시면 고생 좀 할 거예요."

말까지 저리하니 모내기 가야겠다.

다음 날 오전 7시에 아침을 먹고 식당에서 나왔다. 막내가 잘 잤는지 궁금하다. 막내가 식당으로 걸어온다. 그런데 얼굴이 이상하다. 눈이 팅팅 부었다.

"눈 왜 이래?"
"엄마, 나 밤 새웠어."

"아이고 눈이 이래서 모내기할 수 있겠냐?"
"어."

아이고 저러다 쓰러지면 어쩌나.

트럭을 처음 탄 막내는 신이 났다

논 중간에 모판 옮겨 놓은 모습.
 논 중간에 모판 옮겨 놓은 모습.
ⓒ 강정민

관련사진보기


8시에 출발한다고 장화를 신으란다. 모내기용 장화는 허벅지까지 올라온다. 장화가 벗겨지지 않게 노끈으로 발목과 무릎 아래를 단단히 묶어주어야 한다. 장화가 질퍽한 논에서도 벗겨지지 않아야 일을 할 수 있다. 막내는 발이 작아 맞는 장화도 없는데 기어이 한 치수 큰 장화를 신고 와서 자기도 모내기할 거라고 큰소리를 친다.

논으로 이동하려고 트럭에 탔다. 트럭을 처음 탄 막내는 신이 났다. 내년에 모내기하러 또 올 거란다. 한참을 달려 논에 도착했다. 논이 생각보다 넓다. 모판을 두 개씩 양손에 들고 논 중간으로 옮겼다. 이제 논으로 들어가야 한다.

아저씨 두 분이 논 양쪽에서 못줄을 잡는다. 못줄 중간에 빨간색 끈으로 매듭이 지어 있다. 모 심을 위치를 알려 주는 거다. 논에 들어가 내 자리를 잡아야 하는데 걷는 게 쉽지 않았다. 무엇보다 발을 뗄 때 논 속이 진흙이라 발이 잘 빠지지 않았다.

안 빠지니 힘을 줘서 빼는 데 힘 조절을 잘못 하면 넘어질 거 같다. 안 넘어지려고 다른 쪽 발에 힘을 잔뜩 주게 되었다. 그러니 한 걸음 한 걸음 내디딜 때마다 등줄기에 땀이 솟는다. 나는 아저씨랑 여학생 사이에 섰다.

등 뒤에 있는 모판에 모를 빼서 왼손에 쥐었다. 구령에 맞춰서 모를 심었다. 모를 하나 심었다. 그런데 모가 잘 안 서 있다. 옆에 흙을 모아 세웠다. 그런데 벌써 못줄이 내 다리 앞으로 자릴 옮긴다. 내가 뒷걸음쳐야 한다. 진흙 때문에 발 빼기가 어려웠다.

이제 다시 모를 심어야 한다. 내 옆의 여학생은 여덟 개 심는 동안 난 모를 하나둘 심었다. 한번은 뒷걸음치다가 뒤에 있던 모판을 밟기도 했다. 논에 처박힌 모판에서 진흙을 털어내고 뒤쪽으로 던졌다. 다시 모를 심으려 하는데 옆에 여학생이 내 앞의 모까지 심어주었다.

한참 뒤엔 뒷걸음치다가 스텝이 꼬였다. 결국, 무게중심을 잃은 나는 엉덩방아를 찧고 말았다. 엉덩이까지 축축하게 논물이 들어왔다. '이걸 어쩌나 논에서 나가야 하나?' 그런 고민을 하는데 다시 내 몫의 모를 여학생이 다 심었고 못줄은 정신없이 내 다리 앞에 넘어와 있다. 내가 빠지면 옆에 여학생만 죽어난다. 일단 가자. 논 하나를 끝내고 논에서 나왔다.

그늘에 참이 차려져 있다. 막걸리를 받아먹으니 꿀맛이다. 두 번째 논엔 거머리가 많다. 어찌나 많은지 손에 묻은 거머리 떼느라 정신이 없었다. 처음엔 손을 흔들어서 거머리를 떼어보려고 했는데 그렇게는 안 떼어졌다.

손으로 떼어야만, 그것도 몇 번을 해야 간신히 떼어졌다. 역시 '거머리 같은 녀석'이란 말이 괜히 있는 게 아니었다. 그래도 두 번째 논에선 손이 빨라져 한 번에 모를 여섯 개까지 심을 정도가 되었다.

땀에 '팅팅' 부은 발가락들이 볕과 바람을 만나 숨을 쉰다

손 모내기 하는 모습.
 손 모내기 하는 모습.
ⓒ 강정민

관련사진보기


점심을 먹고 쉬는데 장화 안이 너무 갑갑하고 둘째 발가락 끝이 아팠다. 가만 보니 장화 안에 물이 차 있다. 논물이 들어간 것은 아니라 땀이다. 장화를 벗고 보니 양말이랑 바지가 젖어 있다. 양말 물을 짰다. 물이 줄줄 흘러내린다.

땀에 '팅팅' 부은 발가락들이 볕과 바람을 만나 숨을 쉰다. 너무 행복하다. 얼마나 논에서 걷는 게 힘들었으면 땀을 이리 많이 흘렀을까? 다음 논으로 출발한다고 한다. 양말을 신고 장화를 신어야 하는데 젖은 양말을 신고는 장화가 안 들어갈 거 같다. 밭일하고 온 지인에게 양말을 빌려 신고 다시 장화를 신었다.

우린 트럭을 타고 세 번째 논으로 이동했다. 논 줄을 잡은 분이 막내를 칭찬한다.

"야, 네가 엄마보다 훨씬 잘한다. 너희 엄마는 겨우 모 세 개 밖에 못 심던데 너는 어떻게 여섯 개나 하냐? 진짜 잘 한다."

뭐라 대꾸하고 싶지만 그럴 기운이 없다. 내가 잘 못하면 내 옆에 공동체 학생들이 고생한다. 내가 발이라도 헛디뎌 중심 잡느라 모를 조금 심으면 그새 내 영역까지 들어와서 모를 심어준다. 미안한 마음에 열심히 내 몫을 하고 싶었다.

잠깐 허리 펴고 쉴 때 고마운 마음에 옆에 여학생 얼굴을 보니 아직 어리다. 중2라는데 몸집도 작은데 어떻게 걸어 다니며 모를 열 개씩 심는지 그저 신기할 뿐이다. 세 번째 논 모내기도 끝났다. 다행히 이 논엔 거머리가 거의 없다. 네 번째 논 모내기까지 다 마차고 나니 어느새 다섯 시가 넘었다. 이렇게 우리 모자의 손 모내기 체험은 끝났다.

요즘 이렇게 손으로 모내기하는 곳은 거의 없단다. 대부분 이앙기로 모내기한다. 예전엔 다 손 모내기를 했지만. 기계로 모내기를 하면 훨씬 편한데도 이렇게 하는 이유가 무언지 물었다.

그 무거운 기계가 논에 들어가면 논이 죽는단다. 그래서 아직도 변산 공동체 학교는 손 모내기를 하고 있다. 옛날에 이렇게 힘겹게 농사를 지었으니 어른들이 쌀 한 톨도 버리지 않는 건 너무나도 당연한 행동이다 싶다.

막내에게 땀의 소중함을 알게 해 주려는 내 노력이 효과를 거둔 것인지 아직 알 수 없다. 하지만 아마 이전과는 같지 않을 거 같다. 그런데 확실히 변한 게 하나 있다. 엄마인 내가 변했다. 쌀 한 톨이 얼마나 귀한지 내가 사는 아파트가 얼마나 편한지 깨달았다.

집으로 돌아온 뒤 보온상태 60시간이 된 밥을 버릴 수 없었다. 모내기하며 고생했던 게 생각났기 때문에 다 먹었다.

아이에게 노동의 소중함을 알려주려고 모내기 울력에 다녀왔는데 정작 더 크게 변한 사람은 나다. 농사가 얼마나 힘겨운지 깨달았고. 그래서 쌀 한 톨도 버릴 수 없는 몸이 되었다. 다음 모내기 때 또 갈 엄두는 안 나지만 가을걷이 울력 땐 막내와 같이 참여할 거다.

변산공동체학교
 변산공동체학교
ⓒ 강정민

관련사진보기




태그:#모내기, #땀의 소중함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공연소식, 문화계 동향, 서평, 영화 이야기 등 문화 위주 글 씀.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