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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월 10일부터 총 열하루 동안 유로 2016에 대한 첫 번째 모험을 시작하려 합니다. 축구의 본토인 유럽에서, 그 나라 사람들이 축제를 즐기는 순간을 생생하게 전달해보고 싶어요. 부족한 글이지만, 기대해주세요! - 기자말

6월 12일 일요일. 드디어 첫 번째 경기를 위해 니스로 이동해야 하는 날이다. 프랑스 남부 휴양 도시인 니스는 파리 리옹역에서 고속열차로 4시간 반쯤 가야 한다. 가져온 캐리어는 일행이 렌트한 차에 부탁하고 오늘 하루 짐만 챙겨서 이동하기로 한다.

일찍 일어나 북역으로 향했다. 구글맵에 물어보니 RER D를 타고 두 정거장만 가면 되는 곳에 있단다. 여유롭게 출발했는데 남쪽으로 가는 RER D의 안내화면에 열차 시간은 나오지 않고 도저히 읽을 수 없는 글씨가 지나간다.

'6월 12일이랑 15일은 Parc des Princes(파리 생제르맹 홈구장)에서 경기가 있어서, 남쪽 기차는 안 다녀~ 딴 거 타라!' 이 정도로 짐작'만' 되는 글자들인데, '내 알 바 아니다. 알아야 하는 정보라면 영어쯤은 써줬겠지' 하고 무시하고는 플랫폼으로 내려갔다.

그런데 아뿔싸! 플랫폼에도 원하는 열차의 시간표가 없다. 기차 시간이 두려워서 땀이 송글송글 맺힌다. 부랴부랴 한 층을 올라가니 유로 플래그를 몸에 걸고 다니는 안내자들이 돌아다닌다.

다짜고짜, "나 리옹역 가야 해!" 했더니, "RER B로 다음역에서 내리고, 거기서 A로 갈아타면 갈 수 있어!' 한다(물론 매우 친절한 불어로! 그래도, 고유명사만 간신히 알아듣고 찾아갈 수 있을 정도의 대범함은 생긴 모양이다). 다시 알려준 방식으로 열차를 타고 리옹역에 도착했다.

니스가는 TGV를 타기 위해 리옹역에 도착했다.  대합실은 인산인해, 발디딜 틈이 없을 정도로 들어차 있는데다가, 기차는 30분이나 지연된다고 한다. 아. 오늘도 험난하겠구나.
▲ 니스가는 TGV를 타기 위해 리옹역에 도착했다. 대합실은 인산인해, 발디딜 틈이 없을 정도로 들어차 있는데다가, 기차는 30분이나 지연된다고 한다. 아. 오늘도 험난하겠구나.
ⓒ 이창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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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착한 리옹역은 파리 북역에서 10분 정도 걸리는 위치에 있었는데, 북역과는 분위기가 너무 달랐다. 파리에서 떠나는 다양한 고속열차 노선때문인지 역은 매우 넓었고, 사람들이 너무 많아 발 디딜 틈이 없었다. 출발 기차를 알려주는 화면에 플랫폼 정보까지는 나와 있지 않아 "나 어디서 타야 하니?" 하고 물어보니, (또 불어로!) "여기서 기다려!"라고 단호히 답을 한다.

아직 시간이 조금 남았기에 도시락을 몇 가지 챙기고는, 여유가 생겼는지 주변을 둘러보고는 안심을 했다. 저 멀리로 일군의 녹색 유니폼을 입은 사람들의 무리가 보였기 때문이다. 녹색 유니폼은 이번 유로에 첫 번째로 진출한 북아일랜드의 상징색이었고, 그들은 북아일랜드 응원차 니스로 가는 사람들이 확실했으니 말이다.

플랫폼이 정해질 때까지 20여 분쯤 기다렸는데, 그 사이 플랫폼 위치가 바뀌더니, 안내판에 기차가 30분 정도 지연되었다는 정보가 뜬다. 어제 랑스 다녀온 분이 기차에서 폭발물로 의심되는 물체가 발견되어 고생했다는 얘기가 떠올라서 겁이 났다.

우여곡절 끝에, 오전 10시 19분 예정이던 기차는 11시 10분이 되어 출발을 했고, 나는 오늘 경기에 늦지 않기만을 기원하며 기차에 올랐다. 아직 표를 받지 못했기에, 경기장에 얼른 도착해서 표도 받아야 하는데... 애가 탄다.

기차는 출발이 늦었을 뿐, 별 문제없이 니스에 도착했다. 다만, 역에 도착한 시간이 오후 4시 40분이고 경기 시작이 6시라서 이동에 별로 여유가 없다. 얼른 가방을 숙소에 던져놓고, 호텔 직원에게 경기장 가는 방법을 물었더니 "시간이 너무 늦어서 가는 방법이 별로 없다"는 청천벽력같은 답을 내 놓는다.

"안돼, 나 경기장 꼭 가야 돼. 알지? 한국에서 경기보러 온 거야."
"알아. 근데, 없어."
"헉."

니스 팬페스트 근처의 북아일랜드 응원단들 시간이 급해서 얼른 경기장 가는 버스를 찾는 중인데, 아직 안가고 여기 있는 이들을 보니, 약간은 안심이 되었다.
▲ 니스 팬페스트 근처의 북아일랜드 응원단들 시간이 급해서 얼른 경기장 가는 버스를 찾는 중인데, 아직 안가고 여기 있는 이들을 보니, 약간은 안심이 되었다.
ⓒ 이창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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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작정 사람들이 많이 움직이는 곳으로 뛰었다. 초록색 북아일랜드 응원단과 흰색과 붉은색으로 연신 '폴스카'를 외쳐대는 폴란드 응원단이 아직 곳곳에 있는 것을 보니, 방법이 있을 것도 같았다. 무작정 뛰다보니 옆으로 니스의 팬존이 나왔고, 길에 경계를 서 있던 경찰을 붙잡고 무작정 다시 물었다.

"나 경기장 가고 싶어."
"응. 저기 큰 호텔 보이지? 그 앞에 버스가 있어."

무작정 뛰었다. 정신을 차리고보니, 안내판에 '경기장(STADE)'이라고 쓰인 노란색 버스들이 줄지어 어디론가 가고 있다. 과감하게 경찰들을 앞에 두고 무단횡단을 불사한 후, 버스에 올라타니 이미 자리를 차지하고 있던 폴란드와 북아일랜드 응원단이 자국의 응원을 주고 받으며 무리지어 있다.

버스가 30분쯤 달렸을까? 시야의 먼쪽 끝으로 오늘의 경기장인 알리안츠 스타디움이 점으로 보인다. 그런데, 버스는 더 못 들어간다며 여기서 내리란다. 혹시라도 저 점에 도달할 수 있는 다른 방법이 있는가 하여, "경기장!" 외쳤더니, "저기로 쭈욱~ 가!"라는 대답이 돌아온다.

헉, 킥오프가 25분 남았는데 넉넉하게 3㎞정도 되는 길을 뛰어야 한다. 간신히 헉헉거리며 뛰어가는데, 녹색 옷을 입은 청년이 카메라를 들이대며 묻는다.

"넌 근데 왜 뮌헨 유니폼이야?" 뛰더라도 대답은 해야겠기에, "응? 레반도프스키땜에! (폴란드 공격수이고 바이에른 뮌헨에서 뛰고 있다)" 했더니 야유가 쏟아진다. 그대로 달리던 속도를 높여 얼른 지나쳤다. 이제 드디어 경기장 입구, 킥오프까지는 10분 남았다. 대한민국의 위대한 우편 시스템을 이해하지 못한 주최 측은 티켓 배송비 15유로만 꿀꺽한 채, '경기장으로 티켓을 찾으러 오라!'는 해답을 던져 주었기에 마지막 관문으로 티켓을 찾으러 뛰어야 했다.

(첫 번째 만난 남쪽 출입구)
"티켓 찾으려면 어디?" "
"동쪽으로 좀 더 뛰어."

(두 번째 만난 동쪽 출입구)
"티켓 찾아야해. 어디로 가?"
"담을 돌아서, 안쪽으로 쭈욱 들어가봐."

(티켓 교환소 입구)
"티켓 찾으러 왔어."
"가방 검사를 해야 들어갈 수 있어."

(드디어, 티켓 교환 카운터, 이때는 이미 얼굴이 땀범벅이다)
"티켓! 나 경기 늦었어."
"응! 최선을 다해볼게."

배송비만 꿀꺽 먹어버린 내 티켓! 우여곡절 끝에 티켓 교환소에서 바꿔서 가져온, 꿈에 그리던 내 티켓이다. 이번 유로에서 유일하게 당첨된 영광스러운 티켓!
▲ 배송비만 꿀꺽 먹어버린 내 티켓! 우여곡절 끝에 티켓 교환소에서 바꿔서 가져온, 꿈에 그리던 내 티켓이다. 이번 유로에서 유일하게 당첨된 영광스러운 티켓!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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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중석은 폴란드의 붉은색과 북아일랜드의 녹색으로 양분되어 있다.  이들은 경기 내내 쉼없이 그들의 선수들을 응원했고, 그 열광에 나도 덩달아 흥이 났다.
▲ 관중석은 폴란드의 붉은색과 북아일랜드의 녹색으로 양분되어 있다. 이들은 경기 내내 쉼없이 그들의 선수들을 응원했고, 그 열광에 나도 덩달아 흥이 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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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여러 단계를 거치고 나서, 표를 찾고 나니 킥오프 2분 전. 마지막 힘을 쥐어짜서 다시 한 번 뛰었으나, 경기장에 들어가니 오후 6시 5분. 유로 참전 첫 경험인데, 결국 아쉽게도 킥오프를 놓쳤다. 그래도, 국가 대항전답게, 유럽에서도 사연 많기로 유명한 두 나라의 경기답게, 경기 내내 끊이지 않는 진지한 응원으로 열광과 결기를 같이 느꼈다.

경기 결과는 폴란드의 1대 0 승리. 경기 마지막 순간 폴란드 관중들의 환호에 같이 가슴이 뛰었다. 어쩌면, 이것은 국가대항전만이 줄 수 있는 감동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요즘처럼 애국심에 대한 강요가 부담스럽게 느껴지는 때임에도 말이다.

폴란드의 승리로 경기가 끝이났다.  경기장을 가득채운 폴란드의 환호와 대비되는 북아일랜드의 실망감이 무겁게 다가왔다.
▲ 폴란드의 승리로 경기가 끝이났다. 경기장을 가득채운 폴란드의 환호와 대비되는 북아일랜드의 실망감이 무겁게 다가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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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나의 첫 유로 직접 관람은 끝났다. 기차가 늦어 킥오프에 늦은 아쉬움을 제외하고는 근래 느껴보지 못한 감동이었고, 열광이었다. 무엇보다 그들의 뜨거운 열기에, 나도 덩달아 기운을 얻을 수 있었다.

어쩌면, 축구라는 '전쟁'에 가장 적절한 당위성을 부여할 수 있는 것이 '국가'라는 정체성을 지닐 때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던 시간이었다. 그들의 진지한 승부에 감사한다.

경기가 끝나고 다시 아까 뛰었던 길을 돌아 나와 시내로 가는 셔틀을 타고 출발 장소로 돌아오니, 니스의 그 유명한 프렌치 리비에라 해변에 노을이 가득했다. 벅찬 가슴을 안고, 내일을 준비해야겠다. 안녕!

프렌치 리비에라 해변의 노을이다.  경기장에서 돌아와 바로 앞에 펼쳐진 해변의 아름다움을 감상한다. 경기의 열기 때문인지 아직도 바다에서 해수욕하는 사람들이 보인다.
▲ 프렌치 리비에라 해변의 노을이다. 경기장에서 돌아와 바로 앞에 펼쳐진 해변의 아름다움을 감상한다. 경기의 열기 때문인지 아직도 바다에서 해수욕하는 사람들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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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로2016#폴란드 대 북아일랜드#니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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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 편집기자. <이런 제목 어때요?> <아직은 좋아서 하는 편집> 저자, <이런 질문, 해도 되나요?> 공저, 그림책 에세이 <짬짬이 육아>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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