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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20대 국회 개원을 하루 앞둔 지난 29일 오후 더불어민주당 초선의원들이 전남 진도 팽목항 세월호참사 희생자 합동분향소와 동거차도앞 침몰현장을 방문했다. 이날 팽목항을 방문한 22명 의원은 다음과 같다. 강병원, 강훈식, 금태섭, 김병관, 김병욱, 김영진, 김영호, 김한정, 김현권, 문미옥, 박경미, 박정, 박주민, 박찬대, 소병훈, 손혜원, 이재정, 이훈, 정춘숙, 제윤경, 최운열, 표창원.
 제20대 국회 개원을 하루 앞둔 지난 29일 오후 더불어민주당 초선의원들이 전남 진도 팽목항 세월호참사 희생자 합동분향소와 동거차도앞 침몰현장을 방문했다. 이날 팽목항을 방문한 22명 의원은 다음과 같다. 강병원, 강훈식, 금태섭, 김병관, 김병욱, 김영진, 김영호, 김한정, 김현권, 문미옥, 박경미, 박정, 박주민, 박찬대, 소병훈, 손혜원, 이재정, 이훈, 정춘숙, 제윤경, 최운열, 표창원.
ⓒ 권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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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월 30일, 20대 국회가 개원했습니다. 4년에 한 번 바뀌는 국회지만, 이제 10대를 넘어서 20대가 되었다는 사실에 무언가 모를 감정이 느껴집니다. 단순한 숫자일 뿐인데도, 괜히 조금 더 특별해 보이기도 합니다.

그런데 아닌 게 아니라, 정말로 이번 국회는 특별한 국회입니다. 선거가 있기 전만 해도 어땠던가요. 새누리당이 과반을 얻어가는 것은 기정사실화 되었었고, 180석을 넘어 국회선진화법을 무력화시킬 수도 있다는 분석이 나왔습니다.

하지만 결과는 달랐습니다. 새누리당은 과반은커녕 1당의 자리도 차지하지 못했습니다. 더불어민주당이 123석으로 1당이, 새누리당이 122석으로 2당이 되었습니다. 새로 교섭단체를 꾸린 국민의당은 38석을 얻어 3당 시대를 열었으며, 정의당은 6석을 얻어 원내 유일 진보정당의 입지를 공고히 했습니다.

놀라운 결과였습니다. 특별한 성과였습니다. '선거'라는 시험대를 통과해 이제 본회의장에 자리를 배정받게 될 모든 의원들에게 진심으로 축하의 뜻을 보냅니다. 민의가 여러분을 선택했고, 이제 여러분은 여러분의 이상대로 국가를 운영할 수 있는 권리를 얻었습니다.

저는 이번 국회의원 선거에서 생애 처음으로 투표라는 걸 해 보았습니다. 올해 처음으로 투표권을 얻었거든요. 제 손으로 만든 첫 번째 국회가 이렇게 구성되었다는 것이 놀랍기도 합니다. 표 한 장이 가지고 있는 힘을, 이제야 좀 확실히 알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그리고 이제 그 20대 국회의 시작을 바라보며, 그 구성에 아주 약간의 힘을 보탠 사람으로서 전하고 싶은 말이 떠올라 글을 씁니다.

첫째, 유능한 국회가 되어 주십시오.

대의민주주의라는 것이 왜 존재할까요? 모든 사람이 주권자인데, 우리는 왜 대리자를 뽑아서 국가를 운영하게 만들까요? 그것은 우선 모든 사람의 의견을 듣기에는, 사람이 너무 많기 때문입니다. 한 사안에 대해 모두가 목소리를 내면, 그 목소리를 듣는 도중에 사안의 시의성이 사라져 버리겠죠.

하지만 대의제는 또한, '전문성' 때문에 발달한 제도이기도 합니다. 현대 사회는 대단히 전문화된 사회입니다. 사람들은 타인의 영역에 대해 기본적인 지식만을 가지고 있을 뿐, 깊숙한 내막을 알지 못합니다. 전문가들만이 그것을 알고 있죠.

예를 들어, 국방부에서 전투기를 사고 싶은데 A모델이 좋은지, B모델이 좋은지는 일반 대중이 알기 어렵습니다. 이런 문제를 국민 전부에게 물어보면 어떻게 될까요? 중우정치가 되기 십상입니다. 사안에 대해 확실한 지식을 갖추고 있는 전문가들이 처리해야 할 일이 수없이 많습니다.

그래서 국회는 입법 기관이기도 하지만, 국가가 가지고 있는 '전문가 집단'이기도 합니다. 누구는 교육에 대한 전문가고, 누구는 노동에 대한 전문가고, 누구는 법에 대한 전문가입니다. 경제 전문가, 인권 전문가, 문화 전문가들도 있습니다.

20대 국회에 들어오신 300명의 국회의원 여러분은 각자 어떤 전문가이신가요. 국회에서 여러분의 전문성을 가감 없이 펼쳐주시기 바랍니다. 전문성이 부족하다고 생각하시다면, 끊임없이 듣고 배우고 공부하십시오.

올해 초, 야당은 테러방지법을 막기 위해 필리버스터를 진행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필리버스터에 관심을 보였던 것은, 그들이 다섯 시간, 일곱 시간, 열 시간씩 할 이야기가 있었다는 것에 대한 놀라움 때문이었습니다. 테러방지법에 관해서 주제에 벗어나지 않으면서 몇 시간씩을 이야기할 수 있었다는 것은, 그들이 그만큼이나 많은 공부를 했다는 의미니까요.

어쨌든 필리버스터를 진행했던 야당은 선거에서 승리했습니다. 공부하는 국회의원의 승리였습니다. 능력 있는 국회의원의 승리였습니다.

'국회의원' 하면 떠오르는 이미지는 부정적이기 짝이 없습니다. 비리, 뇌물, 무능 등, 나쁜 이미지는 전부 가지고 있는 것 같습니다. 일면 이 이미지는 사실이기도 합니다. 아직도 잊을만하면 터져나오는 정치인 비리 사건과, 미루고 미루다 결국 아무 것도 하지 못하는 국회의 모습을 보면 그렇습니다.

하지만 그렇지 않기도 합니다. 국민의 생존을 두고 싸우는 국회의원이 있고, 장관에게 목소리 높여 호통을 칠 수 있는 국회의원이 있고, 어떻게 하면 보다 나은 세상을 만들까 밤을 새며 고민하는 국회의원이 있습니다. 그들 모두가, 이 세상이 조금씩 앞으로 나아갈 수 있도록 도와주는 존재들입니다.

이번 20대 국회는 그런 국회의원들이 가득한 국회였으면 좋겠습니다. 자신이 가지고 있는 유능함을 마음껏 발휘하는 국회였으면 좋겠습니다. 거리낌 없이 제안하고, 격의 없이 토론하고, 수없이 공부하는 국회였으면 좋겠습니다.

둘째, 소통하는 국회가 되어 주십시오.

국회를 흔히 '민의의 전당'이라고 합니다. 국민의 뜻이 모이는 곳이라는 의미겠죠.

국회는 이 땅 위에 있는 모든 사람들의 생각이 모여 충돌하고 융합하는 가장 역동적인 공간입니다. 하지만 만일 국회의원들이 국민의 목소리를 제대로 듣지 못한다면, 그곳은 독선과 아집만이 존재하는 가장 삭막한 공간이 될 수도 있습니다.

정치인이 지금 당장 국민과 만날 수 있는 공간은 수없이 많습니다. SNS를 이용할 수도 있고, 블로그를 이용할 수도 있습니다. 오프라인으로도 얼마든지 만날 수 있습니다. 국민들과 소통하는 것은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닙니다.

민주주의 정치의 모든 원리는 '소통'으로 귀결됩니다. 서로 각자의 의견을 내고, 그 의견을 소통을 통해 조율하고, 모두가 동의할 수 있는 가장 합리적인 결론을 채택하는 것이 민주주의 정치의 핵심입니다.

정치인들이 꼭 국민의 뜻에 따라야만 하는 것은 아닙니다. 때로 대다수 국민이 원하지 않더라도, 소신에 따라 해야 할 일이 있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적어도 국민의 의견을 꼼꼼히 들으려고 노력하고, 국민들을 설득하려고 노력하고, 많은 이야기를 하려고 노력해 주었으면 합니다.

이미지가 중요한 정치인에게, 소통이란 위험한 일일 수도 있습니다. 실수를 할 가능성도 있고, 무지를 드러내는 계기가 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실수를 했다면 용서를 구하면 되고, 무지가 드러났다면 공부를 하면 되지요. 완벽한 정치인까지는 바라지 않습니다. 소통의 과정에서 아주 조금씩이나마 나아지는 정치인을 원합니다.

격의 없는 국회, 내가 주권자로서 무언가를 요구할 수 있는 국회였으면 좋겠습니다. 활발한 대답이 돌아오는 국회였으면 좋겠습니다. 세상이 내 손으로 변할 수 있다는 것을 깨닫게 해 주었으면 좋겠습니다. 마치, 이번 국회를 처음 선출할 때 그랬던 것처럼 말이죠.

셋째, 정의로운 국회가 되어 주십시오.

수많은 사람들이, 이 땅에서 살기가 어렵다고 합니다. '헬조선'이라는 말은 2016년 대한민국 사회 전부를 상징하는 말이 되어버린 듯합니다.

경제가 어려울 수 있고, 취업이 어려울 수 있습니다. 삶이 어려워 보일 수 있습니다. 하지만 사람들은 그것만을 가지고 쉽게 좌절하지 않습니다. 수많은 사람들이 한국 사회에서 좌절을 겪는 것은, 노력한 만큼 보상을 받을 수 없기 때문일 겁니다.

아무리 열심히 영어 공부를 해도, 어학연수를 다녀오지 못하면 밀려납니다. 아무리 열심히 일해도 정규직이 되기는 어렵습니다. 몇 개월 동안 무급에 가까운 인턴 생활을 거쳐야만 경력이라는 것을 쌓아볼 수 있습니다. 가능성의 틈새가 잘 보이지 않는 현실입니다.

수십 년 몸을 담았던 직장에서 하루아침에 정리해고라는 이름으로 쫓겨나야 합니다. 그러는 사이 회장님은 주식을 팔아 몇 배의 이익을 얻습니다. 노동자는 잘려나가지만 주주들은 배당금 잔치를 벌입니다. 누군가는 화장실 앞에 배정된 자리에서 눈물을 훔쳐야 했고, 누군가는 사표를 내기 싫으면 벽을 보고 서 있으라는 모욕적인 처사를 당합니다.

어떤 종류의 죽음도 제대로 위로받지 못합니다. 차별받는 수많은 사람들의 목소리는 무시당합니다. 인권이라는 말이 이렇게도 무색해 보이는 나날이 없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저는 여전히 정치가 희망을 가지고 있다고 믿습니다. 국회가 사회를 바꿀 수 있다고 믿습니다. 가능성의 틈을 조금 더 열어주고, 약자에겐 권리를 주고 강자의 갑질은 막아 세우는 정치가 필요합니다. 정의로운 정치가 필요합니다.

정치가 모든 것을 바로잡아줄 수는 없습니다. 세상은 법만으로 변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니까요. 하지만 최소한, 정치는 그 정의로운 세상을 향한 노력을 가능하게 만들 수 있습니다.

정치는, 차가운 바다 속에서 죽어갔던 세월호 참사 희생자들이, 왜 그리 죽어야 했는지 조사할 수 있습니다. 학비 충당을 위한 아르바이트에 이리저리 치여 제대로 공부하지 못하는 대학생을 도울 수 있습니다. 차별에 둘러싸여 좌절해 버린 소수자를 보호할 수 있습니다. 아무런 대책 없이 직장에서 쫓겨나야 하는 노동자를 도울 수 있고, 동시에 불황에 허덕이는 중소 자영업주도 도울 수 있습니다. 정치가 가진 힘입니다.

상상력을 가진 국회였으면 좋겠습니다. 자신들이 만들 수 있는 세상을 꿈꿀 수 있는 국회였으면 좋겠습니다. 거대한 권력 앞에서 호통도 쳐줄 수 있고, 국민을 믿고 우직하게 달려갈 수 있는 국회였으면 좋겠습니다. 그렇게 정치가 세상을 바꿀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제가 국회에 원하는 것은 이렇게 세 가지입니다. 유능함, 소통, 그리고 정의로움. 4년 뒤 이맘때쯤엔 20대 국회가 어땠는지 평가할 수 있겠죠. 부디 그때 좋은 판단을 내릴 수 있기를 바랍니다.

더불어민주당 의원님들, 이제 1당이 되셨습니다. 박영선 의원이 필리버스터를 종료하며 했던 말을 기억합니다. 소수정당이 가진 어쩔 수 없는 한계라고요. 이제 원하는 것을 드렸습니다. 원하던 정치적 이상을 마음껏 펼쳐 보셔도 좋습니다.

새누리당 의원님들, 결과에 안타까우셨겠죠. 아무튼 국민의 뜻을 받아들이겠다고 하셨습니다. 여전히 집권여당으로서 하고 싶은 일이 많으시겠지만, 이젠 협의와 합의의 정치가 생명입니다. 발전된 모습을 기대합니다.

국민의당 의원님들, 그리던 3당 체제가 열렸습니다. 캐스팅 보트를 적절하게 활용하셔야 합니다. 올바른 정치적 방향성을 택하면서도, 더불어민주당과는 다른 색채를 보여주시리라 믿습니다. 보다 훌륭한 정치력을 기대합니다.

정의당 의원님들, 6석의 작은 정당으로서 얻을 수 있는 것이 많지 않겠죠. 하지만 그럼에도, 의지와 소신을 잃지 말고 나아가시길 바랍니다. 성장하는 진보정치, 세상을 바꾸는 작은 힘을 보여주시길 바랍니다.

20대에 국회에 들어오시는 모든 분들에 대한 축하를 보냅니다. 동시에 이제 국회를 떠나 다시 한 번의 도전을 시작하실 모든 분들에 대한 응원을 보냅니다.

때로는 싸우고, 때로는 화해하고, 때로 파행에 이르기도 했다가, 다시 양보와 협치의 정신을 되살리는, 그러면서 앞으로 나아가는 국회의 모습을 기대합니다. 조금은 시끄러워도, 세상이 발전하는 증거라 여기겠습니다.

덧붙이는 글 | 이 글은 개인 블로그 <비더슈탄트, 세상을 읽다>와 팀블로그 <이승로그>에 게재됩니다. 딴지일보 독투불패 게시판에도 올라가며, <이승로그>에 올라간 글은 <직썰>에 중복 게재될 수도 있습니다.



#국회#20대 국회#4.13 총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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