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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소명이와 소명 아빠 소재원 작가
 소명이와 소명 아빠 소재원 작가
ⓒ 소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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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월 2일, 세상에 빛을 본 한 편의 소설이 있습니다. '가습기 살균제와 말해지지 않는 것'이 부제목인 소설 <균>은 최근 언론에서 연일 다루고 있는 가습기 살균제 참사를 소재로 한 소재원 작가의 장편소설입니다.

가습기 살균제로 아이를 잃고 아내마저 자살한 민지 아빠가 한 번도 승소해본 적 없는 변호사 한길주와 함께 진실 규명을 위해 싸우는 이야기를 담고 있습니다. 또 이를 이용하는 정치권과 이 문제를 방관한 우리 사회의 민낯을 드러낸 작품입니다. 다음은 작가와 나눈 대화입니다.

- <균>을 집필하게 된 특별한 계기가 있었나요?
"작년 5월 아내가 임신을 하고, 아이를 가지게 되면서 제일 먼저 사게 된 게 가습기였어요. 그런데 미안한 마음이 들었어요. '가습기 살균제'라는 너무나도 큰 사건을 잊고 산 건 아닌가, 꼭 재조명 해야겠다 결심했죠. 그런 죄송한 마음으로 쓰게 된 작품입니다."

- 무거운 마음이셨겠네요. '아빠'가 되신 게 계기가 되었군요.
"2월에 소명이가 태어나고 저는 아빠가 되었죠. 가습기 살균제 피해는 100일도 채 안 된 아기들이 많았다고 해요. 소명이 100일이 오는 5월 21일이예요. (가습기 살균제 문제를) 잊지 않고 기억하기 위해 백일잔치 대신 소명이 이름으로 작게나마 기부를 하기로 결심했어요(현재 작가는 카카오톡 서비스인 '같이가치'를 통해 '가습기 살균제 피해 아기들을 위한 모금'을 진행하고 있다)."

- 집필 과정은 어떠셨나요?
"지난 6~7월부터 집필을 시작했어요. 기사를 찾아 스크랩하고 친분이 있는 가습기살균제 피해자 분들을 만나 이야기도 나누고요. 정부에서 피해 접수를 받는다는 사실조차 몰랐던 분들이 참 많았어요. 3월에 퇴고하고 출판을 앞둔 시점에 가습기 살균제 문제가 크게 대두되더라고요."

독자들이 보내준 100일 미만 아기들의 사진
 독자들이 보내준 100일 미만 아기들의 사진
ⓒ 소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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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근에 독자들과 의미 있는 캠페인을 진행하고 계시던데요.
''가습기 살균제 피해 아가들을 위한 기억 인증샷 릴레이'를 하고 있어요. 처음에 카카오톡 프로필 사진에 제 책과 소명이 사진을 올린 걸 보고 독자 분들이 메시지로 본인의 갓난아이와 함께 찍은 사진들을 보내주셨어요. '작은 몸부림이라도 같이 하고 싶다', '우리 아기와 같은 또래의 친구들이 죽었는데 우리가 너무 잊고 있었다'고 하시면서요. 그렇게 가습기 살균제 기억 인증샷 릴레이가 시작되었죠. (독자 분들의 동의를 얻어서) 제 페이스북과 '가습기 살균제 옥시 불매 공식 카페'에 올리고 있어요."

- 평소에도 독자 분들과 연락을 자주 하시나 봐요.
"가까운 독자들과 정기모임도 갖고 함께 '행복한 세상 만들기'라는 이름으로 봉사활동도 합니다. 각자 자기만의 방법으로 봉사활동을 하다가 날을 정해서 함께 봉사활동을 다녀오기도 합니다. 종종 (어린이재단이 운영하는) 경기도 광주의 '한사랑 마을'에 방문하고 후원하기도 합니다."

독자와 함께 한 봉사활동 모습
 독자와 함께 한 봉사활동 모습
ⓒ 소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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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상에서도 뜻 깊은 일들을 실천하셔서 그런지 작품에서도 사회적 메시지가 항상 담겨 있나 봅니다. 이준익 감독의 복귀작 <소원>(설경구, 엄지원 주연)의 원작이 작가님 작품이더라고요.
"아동 성폭행 사건의 심각성을 알리면서 '희망은 당신의 삶 어느 지점에 반드시 존재하고 있다'는 얘기를 하고 싶었어요. 그렇게 제 작품이 영화와 인연이 되어 독자 분들과 다시 만나게 되니 새롭더라고요. 8월에 개봉하는 <터널>(김성훈 감독, 하정우, 오달수, 배두나 주연)도 그렇고, 이번 작품 <균>도 같은 제작사에서 영화화하기로 했어요. 책 수익과 영화 러닝 개런티 일부는 가습기 살균제 피해자들에게 지원하기로 했고요."

그의 첫 작품 <나는 텐프로였다>도 윤종빈 감독의 <비스티 보이즈>로 영화화된 바 있습니다. 개인적으로 영화 <소원>은 참 기억에 남는 작품이었습니다. 차마 입에 담을 수도 없는 끔찍한 이야기를 이준익 감독이 작위적이지 않게 잘 풀어내서 좋았습니다.

돌이킬 수도 없고 치유할 수도 없을 것만 같았던 소원이의 상처와 아픔을 따스하게 안아줘서 고마웠던 영화였습니다. 원작이 소재원 작가의 작품이었다는 사실이 무척 반가웠습니다. 이번 작품 <균>도 영화로 잘 만들어져서 가습기 살균제 문제를 많은 사람들에게 알리는 계기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 다음 작품은 어떤 이야기를 준비하고 있는지 물어봐도 될까요? 
"여성 문제에 대해서 다뤄보고 싶어요. 이혼을 앞둔 50대 중년 여성과 어느 미혼모의 여행기를 준비 중에 있습니다."

- 그 작품도 영화화 되면 좋겠다는 생각 먼저 드네요. 마지막으로 좀 상투적이지만 독자들에게 하고 싶으신 말이 있다면요?
"기억을 해주세요. (제 작품을) 자기만의 철학과 가치관으로 해석하실 수 있겠죠. 그래도 그런 (가습기 살균제와 같은) 사실이 있었다는 것, 그것만큼은 잊지 말아 주세요. 권력을 가진 이들이 두려워하는 게 기억인 거 같더라고요. 기억할 때 기적이 일어날 수 있는 거라고 믿어요."

부족한 인터뷰 내용을 원고로 옮기면서 그의 목소리를 떠올려 봅니다. 진심을 이야기 하던 그의 마음을 제대로 옮겨 전하지 못하는 것만 같아 안타깝습니다. 기회가 된다면 인터뷰가 아니라 사람 대 사람으로 만나 더 깊은 얘기를 나눠 보고 싶은 작가였습니다.

16일에도 그는 가습기 살균제 기자회견 현장에 소명이를 안고 함께 했다고 합니다. 마지막으로 정리하는 문단을 수십 번 쓰고 지우다가 작가의 페이스북 글을 봅니다. 그 어떤 말보다 지금 그의 절실한 마음을 잘 담고 있는 거 같습니다. 부족한 인터뷰를 그의 글로 마무리할까 합니다. 

사람들이 지겹도록 걱정을 한다.

- 옥시까지만 해. 다른 대기업들은 건들지마. 너 엔터테이먼트로 먹고 사는 녀석이야. 네 소설로 영화 계약 된 작품들 다 그들이 소유한 영화관에 걸려. 그들이 악심 먹으면 넌 그냥 끝이야. 빛도 못보고 네 소설로 만든 영화들 다 끝장나는 거야. 왜 연예인이나 유명인사들이 가습기 살균제 얘기에 입 닫고 있는 줄 알아? 그들 기업이 대한민국 영화를 움직이고 각종 cf, 음악, 드라마까지 안 하는 게 없기 때문이야. 정신 차리고 너도 네 가족들을 좀 걱정해!

사람들을 내가 뭘 모르고 한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내가 철없이 행동하고 위험한 판단을 했다고 단정 지으며 객기를 부린다고 여긴다. 어리석은 도발로 가정을 위협한다고 나무란다. 어차피 사람들은 잊어가고 그때 나도 동시에 잊히며 누구도 기억하지 않을 거라 확신한다. 그런데... 내 아들의 얼굴을 보니 차마 그럴 수 없다. 가습기 살균제 피해 가족들이 5년 동안 싸웠기에 내 아들은 안전할 수 있었다. 아내에게 말했다.

- 이번이 내 마지막 소설이 될 수도 있고 내 마지막 영화가 될 수도 있고 사람들의 기억에서 사라진 나는 직장을 알아봐야 할지도 몰라. 그래도 멈출 수 없어. 우리 명이 지켜준 사람들이잖아.

아내가 말했다.

- 이길 순 없겠지?

난 고개를 끄덕였다.

- 지는 싸움이야. 옥시야 그렇다 치더라도 롯데나 애경, 홈플러스는 이길 수 없겠지. 근데 정말 난 포기가 안 된다.

아내는 내 말에 잔소리 대신 응원과 지지를 안겼다.

- 작가라면 더 많은 사람을 돕겠지만 못하더라도 괜찮아. 내가 장사라도 해야지.

- 영화 계약 위약금 나올 수도 있어.

- 그럼 그것도 싸워야지.

영화를 못하고 소설가로 살지 못해도 상관없다. 모른 척 사는 것이 내게는 더 지옥이니까.
더 견딜 수 없는 사실은 그들의 기업이 2008년, 2013년 개봉한 내 소설을 원작으로 한 영화에 투자했고 흥행에 성공하며 그들 기업에 배를 불려줬다는 사실이다. 그때도 가습기 살균제 피해자 가족들은 힘겹고 처절하게 싸우며 미래의 우리 가족을 지켜주고 있었는데 말이다.

난 아무리 독하게 마음 먹으려 해도 그게 잘 안 된다. 그냥 이렇게 살아가게 내버려두시길... 쥐뿔도 없는 내가 8년 동안 작가로 살아온 걸로 족하니까. 그래도 국민들에게 부탁드리고 싶은 건... 잊지 말아주시길. 나도, 가습기 살균제 피해 가족들도 잊지 말아주시길. 여러분이 기억만 해주신다면 기적은 일어날 테니까. 희박하지만 실오라기 같은 가능성이라도 난 믿어야겠습니다.


균 - 가습기 살균제와 말해지지 않는 것

소재원 지음, 새잎(2016)


태그:#가습기살균제, #소재원, #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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