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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 정상에 설치된 전망대를 향하는 구름다리(Skywalk)
 산 정상에 설치된 전망대를 향하는 구름다리(Skywalk)
ⓒ 이강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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깊은 산 특이한 민박집에서 아침을 맞는다. 신선한 바람이 나뭇잎을 흔들며 작은 조각구름이 한가로이 떠 있는 좋은 아침이다. 'Good Morning'이라는 인사를 오늘같이 '좋은 아침'에 쓰니 제격이다. 높은 산을 마주한 너른 들판에서 심호흡하며 굳은 몸을 푼다. 야외에 설치된 부엌에서 아침을 먹으니 음식 맛도 색다르다. 식사 후 커피를 들고 야외에 마련된 소파에 앉아 주위를 즐긴다.

말로만 듣던 도리고 국립공원(Dorrigo National Park)을 구경하는 날이다. 일단 관광객을 위한 도리고 안내소(Dorrigo Rainforest Centre)를 찾아 나선다. 잘 닦인 2차선 도로를 따라 국립공원 깊숙이 들어간다. 산이 울창하고 도로도 가파르다. 중간에 폭포(Newell Falls)를 만나 사진을 찍고 전망대에 올라 경치도 구경한다.

국립공원 안내소에 도착했다. 규모가 크다. 입구에는 첫눈에 보아도 작품성 있는 모자이크가 있다. 국립공원의 생태계를 돌로 정성들여 만든 큰 작품이다. 안으로 들어가니 이곳에 서식하는 동물 박제와 사진이 전시되어 있다. 물론 책자와 기념품도 판다. 구석에 있는 자그마한 영화관에서는 국립공원을 소개하는 필름이 계속 돌고 있다. 호주 문화유산(Australian National Heritage)으로 등록된 국립공원다운 품위를 지니고 있다.

직원의 조언에 따라 건물 옆에 있는 전망대로 향한다. 나무로 만든 구름다리(Skywalk)가 매혹적이다. 전망대에서 바라보는 경치 또한 속된 표현으로 '끝내준다'. 셀 수 없는 산봉우리가 눈 닿는 곳까지 펼쳐진다. 전망대에는 삼각대가 없는 사람을 위해 카메라를 고정할 수 있는 장치도 해 놓았다. 관광객을 위한 세심한 배려가 돋보인다.

이곳에는 산책로가 여러 개 있다. 간단하게 돌아보는 산책로가 있는가 하면 온종일 걸어야 하는 길도 있다. 서너 시간 정도 걸리는 산책길을 택해 걷는다. 산등성이를 한바퀴 도는 코스다.

숲으로 들어간다. 산책길은 아이들과 함께 걸어도 될 만큼 잘 정리되어 있다. 하늘이 보이지 않는 정글이다. 넝쿨이 타고 올라간 수십 미터가 되는 높은 나무가 빽빽하다. 하늘이 보이지 않아서 일까, 화원에서 비싼 가격으로 파는 습지 식물이 큰 나무 둥지에 많이 서식하고 있다. 이름 모를 버섯도 많다.

새를 관찰하는 곳이라는 팻말이 나온다. 팻말이 가리키는 곳을 따라 나무로 만든 산책길로 들어선다. 바닥에는 새가 발걸음 소리에 방해받지 않도록 야외용 양탄자를 깔아 놓았다. 양탄자를 밟으며 고목 사이에 만든 길을 따라 들어간다. 새를 관찰하며 새소리를 즐길 수 있게 중간 중간에 의자도 있다. 새 소리에 귀를 기울이며 조용히 걷는다. 말소리도 자연스럽게 작아진다. 새도 사람에게 방해받지 않고 지낼 권리(?)가 있다는 생각을 해본다. 

산등성이를 타고 계속 내려가니 폭포가 나온다. 수정 같은 물줄기가 이슬비처럼 흘러내리는 폭포다. 폭포 이름도 수정폭포(Crystal Shower Falls)다. 웅장함은 없으나 섬세하고 아름다운 여성을 생각나게 하는 폭포다. 사진작가처럼 보이는 두 명의 남녀가 거창한 카메라와 삼각대를 설치하고 있다. 주위에는 국립공원 유니폼을 입은 직원들이 엉겅퀴를 뜯어내며 주위를 정리하고 있다.

폭포에 내려가 본다. 폭포 뒤로는 샛길이 있다. 떨어지는 물줄기 속을 걷는 특이한 경험을 한다. 조금 떨어진 곳에서 일하던 직원이 나를 보며 손짓한다. 직원을 따라 가보니 돌 틈 사이에 너덧 마리의 박쥐가 모여 있다. 자는 것일까, 아니면 시끄러운 사람 소리가 귀찮은 것일까. 바로 옆에 사람이 있어도 꼼짝하지 않는다.

목숨 걸고 다이빙을 하던 폭포

웅장함을 자랑하는 도리고 국립공원의 대표적인 폭포(Dangar Falls)
 웅장함을 자랑하는 도리고 국립공원의 대표적인 폭포(Dangar Falls)
ⓒ 이강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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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책을 끝내고 안내소에서 받은 소책자를 보며 또 다른 산책로를 찾아 나선다. 산책로 입구에는 널찍한 잔디밭에 통나무로 만든 테이블이 여러 개 있다. 조금 떨어진 곳에 부부가 식사하고 있다. 잠자리가 설치된 캠프 자동차를 운전하며 여행하는 노부부다. 소박한 여행으로 노년을 보내는 모습이 보기 좋다.

조금은 피곤한 몸으로 산책로를 걷는다. 폭포가 있다는 곳까지 갈 생각이었는데 멀기도 하고 길도 험하다. 삼림욕을 30여 분 한 것으로 만족하고 되돌아 나온다. 주차장에 노부부가 타고 온 자동차가 보이지 않는다. 다음 행선지를 찾아 떠났을 것이다. 

도리고 국립공원에서 가장 규모가 큰 폭포(Dangar Falls)를 찾아간다. 낙차가 30미터인 규모가 큰 폭포다. 전망대에서 폭포를 카메라에 담는다. 전망대에는 다이빙 금지라는 경고가 있다. 다이빙을 하며 스릴을 즐기는 곳이었지만 2012년 독일 관광객이 죽은 이후로 다이빙을 금지했다고 한다. 

폭포 아래까지 내려가 본다. 떨어지는 물 때문에 생긴 넓은 수영장(?)이 있다. 청년 혼자 간식을 먹으며 폭포 아래 앉아 있다. 물 떨어지는 요란한 소리가 둘러싸인 벽을 타고 메아리가 되어 사방에서 울린다. 웅장한 자연의 소리 속으로 한 걸음씩 다가간다. 인간의 자그마함을 본다. 자연 속에 있으면 겸손해질 수밖에 없다. 

이 글을 쓰는 아침, 호주 국영방송에서는 북한 외교관이 '한국은 준전시 상태'라고 말했다는 자막이 흐르고 있다. 호주에서는 심각하게 받아들이는 모양이다. 그래도 2000년 시드니 올림픽에서 남북한이 함께 웃으며 입장하던 모습을 버리고 싶지 않다. 옳고 그름을 따지는 삶을 버리고 겸손한 삶 속에서 함께 웃을 때가 올 것이라는 희망을...


태그:#호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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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드니에서 300km 정도 북쪽에 있는 바닷가 마을에서 은퇴 생활하고 있습니다. 호주 여행과 시골 삶을 독자와 함께 나누고자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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