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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종섭 새누리당 후보(대구 동구을) 후보가 지난 29일 오후 새누리당 대구시당에서 열린 대구선대위 발족식에서 박근혜 대통령을 예수로 비유하며 대통령의 성공을 위해 총선 승리를 강조했다.
 정종섭 새누리당 후보(대구 동구을) 후보가 지난 29일 오후 새누리당 대구시당에서 열린 대구선대위 발족식에서 박근혜 대통령을 예수로 비유하며 대통령의 성공을 위해 총선 승리를 강조했다.
ⓒ 조정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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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혜 대통령이 고난받는 예수일까? 대구 동구갑에 출마한 새누리당 정종섭 후보의 연설을 듣고 떠오른 의문이다. 정 후보는 29일 대구시 범어동 새누리당 대구시당에서 열린 대구선거대책위원회 발족식에서 이렇게 말했다(관련 기사 : 대구 새누리당 "박 대통령, 십자가 진 예수 같아").

"박근혜 대통령은 역대 대통령이 하지 않고 비겁하게 물러난 후, 그 많은 일들을 해냈다. 피를 흘리며 예수가 십자가를 지듯이 그 어려운 언덕을 오르고 있다."

개신교와 가톨릭을 아우르는 그리스도교 전통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고난은 종종 속죄 교리로 설명됐다. 그러나 예수 고난의 본질은 '정치'에서 비롯됐다.

박해의 '가해자'에 가까운 박 대통령

예수는 사회적 약자 편에 서서 하느님 나라를 설파했다. 이에 대해 당대 종교권력자였던 사두가이파는 예수의 활동을 못마땅하게 여겼고, 급기야 그를 붙잡아 로마 식민지 당국에 넘겼다.

로마 총통이었던 빌라도는 예수에게 별다른 혐의점을 찾지 못했다. 그러나 예수의 행적이 식민지 관리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것을 우려해 십자가형을 내렸다. 말하자면 예수의 십자가 형벌은 타락한 종교와 사악한 정치권력이 만들어 낸 합작품이었던 셈이다.

그리스도교 신학의 관점에서 정 후보의 발언을 뜯어 보자. 박 대통령이 정치적으로 고난받은 적이 있었던가? 아니다. 오히려 정치적 박해의 가해자였다. 현 정권 출범 이후 청와대와 집권 여당인 새누리당은 정치적 반대자들을 가차 없이 찍어냈다.

특히 전교조와 민주노총 등 노동조합은 현 정권의 집중 탄압을 받았고, 통합진보당은 아예 해산되기에 이르렀다. 이 정권의 찍어내기는 권력 내부자라고 해서 예외가 아니었다. 국정원 대선개입 사건을 수사하던 채동욱 검찰총장은 갑작스러운 혼외자 의혹으로 사퇴했고, 이후 이 '혼외자 뒷조사'에 청와대 행정관이 개입한 것으로 드러났다. 국회법 개정안 통과 등으로 청와대에 맞선 유승민 새누리당 원내대표도 결국 '찍혀' 나갔다. 

박근혜 대통령이 지난 16일 오전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본회의에서 국정에 관한 국회 연설을 하고 있다.
 박근혜 대통령이 지난 16일 오전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본회의에서 국정에 관한 국회 연설을 하고 있다.
ⓒ 공동취재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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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디 그뿐일까? 역사 교과서 국정화 강행, 위안부 문제 졸속 합의, 갑작스러운 개성공단 폐쇄 등 박 대통령 집권 3년 동안 벌어진 일들은 실정의 차원을 훌쩍 뛰어넘는다.

이렇듯 박 대통령 집권 이후 벌어진 일들을 차분히 따져보면, 정 후보자의 발언은 신성모독에 가깝다.

야당은 비판하고 여당엔 침묵하는 한국교회의 이중 잣대

이 지점에서 한국교회의 이중잣대를 짚고 넘어가고자 한다. 지난해 7월 국가정보원(국정원)의 해킹 프로그램 구입과 민간인 불법 사찰 의혹으로 여론이 들끓었다. 국회는 이 같은 의혹을 규명하기 위해 정보위원회 전체회의를 열었다. 당시 새정치연합(현 더불어민주당) 김광진 의원은 회의 중간에 나와 기자들에게 이런 말을 던졌다.

"국정원은 아무런 근거도 없이 믿어달라고 하고, 실시간 도청도 안 된다며 믿어달라고 합니다. 지금 저 안은 거의 교회예요. 교회."

이러자 기독교계, 특히 보수 성향의 교단 연합체는 발끈했다. 한국교회연합(한교연)은 김 의원의 발언이 "한국교회 1천만 성도뿐 아니라 전 세계 기독교인들을 폄훼하고 모독한 것"이라고 평했다. 38개 교단 연합체로 주로 보수교단의 입장을 대변해온 단체인 한국교회언론회(언론회)는 한 걸음 더 나아갔다. 언론회는 김 의원의 발언이 나온 바로 다음 날 즉각 논평을 내고 다음과 같이 주장했다.

"1000만 명 한국 기독교인들을 대놓고 모욕한 것이다. 국정원의 해킹 의혹과 한국교회가 무슨 연관이 있다는 것인가? 국민의 대표인 국회의원의 입에서 나왔다고 믿기 어려운 막말이요, 저질스런 언어이다. 국민의 대표라고는 도저히 믿겨지지 않는다."

김 의원의 발언은 뚜렷한 근거 없이 자신들을 믿어달라는 국정원의 태도를 교회에 빗대 표현한 것이다. 그런데도 보수교단들은 1000만 한국 기독교인들에 대한 모독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김 의원의 발언과 정 후보의 발언을 비교해 보자. 정 후보의 발언은 현 정부에서 행정자치부 장관을 지냈으며 집권 여당의 국회의원 후보자의 입에서 나왔다고 보기엔 훨씬 무책임하고, 신성모독의 정도도 심각하다.

그러나 이에 대해 기독교계는 별말이 없다. 기자는 30일 대구지역 개신교단 연합체인 '대구기독교총연합회'(대기총)과 접촉을 시도했다. 전화를 받은 직원은 "정 후보자 발언이 우리와 무슨 상관인가?"고 되물었다. 그리고 송수열 대기총 사무총장은 기자와의 전화통화에서 이렇게 전했다.

"정 후보자가 정말 그렇게 발언했나? 그 발언을 둘러싼 정황에 대해서는 아직 들은 바 없다. 대기총으로서는 무어라 말할 입장은 아니다. 정 후보 발언의 취지에 대해서는 그에게 직접 물어보라."

시대의 징표 분별 못 하는 정치인과 교회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박힌 형상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박힌 형상
ⓒ pixab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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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약성서 <마태오 복음> 16장엔 예수와 대립했던 바리사이파와 사두가이파가 예수를 시험하는 장면이 기록돼 있다. 바리사이파와 사두가이파는 예수에게 다가와 "하느님의 인정을 받았다는 표가 될 만한 기적을 보여 달라"고 떠본다. 예수는 이들에게 되묻는다.

"'너희는 저녁 때에는 '하늘이 붉은 것을 보니 날씨가 맑겠구나' 하고 아침에는 '하늘이 붉고 흐린 것을 보니 오늘은 날씨가 궂겠구나' 한다. 이렇게 하늘을 보고 날씨는 분별할 줄 알면서 왜 시대의 징조는 분별하지 못하느냐?"
- <마태오 복음> 16:2~3


예수의 말은 송곳처럼 정곡을 찌른다. 즉, 예수는 당시 종교지도자들이 옳고 그름을 제대로 분별하지 못하고 있음을 날씨에 빗대 꼬집은 것이다. 지금 한국교회 상황도 크게 다르지 않다.

특히 대형교회를 담임하는 목회자들 대부분은 사회적 약자를 돌보기보다 정권의 귀를 긁어주는 일에 매달리는 모양새다. 게다가 보수교단은 전통적으로 반공주의 노선을 내세우며 보수정권의 우군임을 자처해왔다. 보수교단이 정 후보자의 발언에 침묵하는 것은 이들이 가진 정치색과 무관하지 않다.

정 후보자는 이미 행정자치부 장관 시절 새누리당 연찬회 석상에서 '총선 승리'를 외쳐 물의를 일으킨 전력이 있다. 이런 사람이 집권 여당의 국회의원으로 출마한 것 자체가 사리에 맞지 않는다.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다. 정 후보자가 자신의 발언을 뉘우치고 정치 일선에서 물러나길 바란다. 그리고 대구 지역 기독교계를 비롯한 한국교회 전체가 정 후보자의 회개를 촉구하고 나서기를 바란다. 하느님은 여야를 초월해 권력으로부터 부당하게 탄압받는 약자들 편에 서시는 분임을 기억하면서 말이다.


태그:#정종섭, #김광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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