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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 기사에서 이어집니다)

백패커스에서 셰어하우스로 옮겼다. 맨리 비치를 떠나 차로 20분 정도 떨어진 발갈라로 왔다. 이 동네는 백인들이 많이 거주하고 있다. 동양인을 찾는 게 어려울 정도. 주위가 조용하고 부촌으로 유명하다고 한다. 호주에서는 한적하고 조용할수록 집값이 뛰고 부촌으로 조성된다고 한다. 교통·학군이 집값을 좌우하는 우리나라에 비해 이곳에서 그런 요소는 집값에 영향을 끼치지 않는다고 하니, 또 다른 문화 차이를 엿볼 수 있다.

호주에서 정식으로 숙소가 생겼다. 네 명이 사는 집이었는데 잠시 다섯 명이 살게 됐다. 2주일 뒤 귀국하는 친구에 이어 내가 들어가기로 했는데, 잠시 머물 곳이 마땅치 않아 어쩔 수 없이 살게 된 것이다. 불편하지만.

친구가 쓰던 두 개의 매트릭스 중 하나를 바닥에 내려놨다. 그 위에 누워 찍은 모습.
▲ 호주 생활 첫 숙소 친구가 쓰던 두 개의 매트릭스 중 하나를 바닥에 내려놨다. 그 위에 누워 찍은 모습.
ⓒ 백윤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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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일주일 동안 백패커스에서 지낸 이유는 인스펙션(inspection) 때문이다. 인스펙션은 집에 인원이 맞게 살고 있는지 확인하는 절차다. 호주에 워홀러들이 많다 보니 거실 셰어부터 시작해서 온갖 셰어들이 판을 친다. 4명이 살아야 할 공간에 8명이 사는 경우는 이미 흔해졌다.

"한인들이 운영하는 셰어하우스에 가봐. 내가 살던 곳에서는 공중화장실 냄새가 나더라."

집에 관해 말해주던 친구가 몸서리쳤다. 시드니 시티에는 정말 '잠만 자는' 숙소가 널려있다고 한다. 사람이 사는 곳이 아니었다. 그러다 보니 호주 정부 차원에서 인스펙션을 다니면서 집 상태를 확인한단다. 실효성이 있어보이진 않지만 그나마 검사라도 하니 다행인 걸까. 방값은 비싸다. 1주에 160호주달러. 보증금으로 2주치 방값을 냈다. 한꺼번에 480호주달러가 빠져나갔다. 슬슬 직업을 구해야 했다.

돈, 경험, 영어... 이것 중에 하나를 택하라

호주에 와서 처음 먹은 한식. 음식이 정갈하고 괜찮다. 다만 가격이 30호주달러. 보쌈을 시켰는데 양이 적고 고기가 작았다. 물가가 비싸다.
▲ 친구와의 식사 호주에 와서 처음 먹은 한식. 음식이 정갈하고 괜찮다. 다만 가격이 30호주달러. 보쌈을 시켰는데 양이 적고 고기가 작았다. 물가가 비싸다.
ⓒ 백윤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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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저 호주에 온 친구를 만나봤다. 그에게 조언을 듣고자 함이다. 그는 호주에 온 지 3년이 넘어 알고 있는게 많은 편. 영주권을 취득할 생각이라 호주 내 인적 네트워크도 가지고 있었다. 그가 우스갯소리라며 말했다.

"호주에는 비자에 따라 계급이 있어. 워홀러나 학생비자? 개만도 못하다니까."

호주에서 개를 비롯한 반려동물은 가문의 일원으로 인정받고 법적으로도 보호받는다고 한다. 여기서 착안한 우스갯소리였다. 굳이 계급(?)으로 나누자면 시민권자-영주권자-개-학생비자-워킹홀리데이-불법체류자 순이라고 할까.

"여기까지 왔으면 네가 뭘 할 건지 확실히 선택해야 해. 영어를 배울지, 경험을 쌓을지, 돈을 벌지. 어정쩡하게 있다가 아무것도 못하고 갈 수 있어."

선택의 기로에서 머뭇거리다가는 호주에서 얻는 것 없이 떠나게 된단다. 수 년간 워킹홀리데이를 온 지인들을 보며 그는 본인의 의지가 중요하다고 조언했다.

"한 두달 있다가 실패하고 갈 수 있어. 잘 생각해야 해."

어떤 선택을 해야 하는지 고민이 됐다. 워홀러들이 겪는 첫 번째 고민. 타국에서 오로지 혼자가 결정하고 책임져야 한다. 도와주는 사람도 책임져주는 사람도 없다. 성인이 돼 내리는 가장 독립적인 결정 아닐까. 어떤 선택이든 거기에 맞는 정보와 적응이 필요하다. 한 가지를 선택해야 하는 어려움. 집으로 오는 내내 고민이 깊어졌다.

'한인잡'을 선택하다, 이유는...

집에 돌아오니 선택해야 하는 건 또 있었다. 바로 직업. 소위 말하는 한인잡과 오지(Aussie job, 호주 현지인을 일컫는 말)잡, 둘 중 하나를 택해야 했다.

한인잡은 한국인 사장 밑에서 일을 하는 것이다. 호주 최저시급(17호주달러 정도)에도 못 미치는 돈을 받으며 일을 해야 한다. 다만 일할 수 있는 시간이 오지인(호주 현지인)들에 비해 길다. 이에 반해 오지잡은 일하는 시간은 6시간 정도로 제한되지만 시급이 높은 편이다. 영어를 할 수 있다는 건 오지잡만의 보너스.

오지잡 조건이 좋아 보이지만, 문제는 시간. 일하는 시간이 6시간으로 한정돼 있고 주 3~4일이기 때문에 생활비를 마련하기에 빠듯하다. 제안받은 조건들로 한인잡과 오지잡의 주급을 계산해보니(호주는 물가가 워낙 비싸기 때문에 주마다 급여를 지급한다) 한인잡이 700호주달러, 오지잡이 400호주달러였다. 집값이며 휴대전화비, 교통비를 계산해보면 오지잡은 힘들다. 투 잡을 뛰어야 하는 문제가 발생한다. 결국 한인잡을 선택했다.

이 동네에서 가장 큰 쇼핑몰.
▲ 한인잡이 위치한 쇼핑센터 전경 이 동네에서 가장 큰 쇼핑몰.
ⓒ 백윤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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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인잡은 집에서 5분거리에 있는 쇼핑몰 내에 입점한 스시집. 한국인 워홀러들이 한 번은 거친다는 스시집. 면접도 없이 바로 채용됐다. 사람이 많이 급하긴 급했던 모양. 출근 날짜를 맞추고 집에 돌아왔다. 셰어하우스에 같이 사는 룸메이트가 그곳에서 일한다. 그 친구를 통해 분위기나 조언을 들었다.

"사람들은 좋아요. 일은 좀 힘들지만…."

시급은 13호주달러. 수습 기간 때는 10호주달러. 시급이 엄청 낮지만 계좌에 적힐 숫자를 생각하니 선택은 한인잡이었다. 이 선택이 어떤 결과를 나을지는 두고봐야 알 것 같다. 그렇게 출근이 다가왔다.

[지난 기사]

③ 평일 낮 3시인데... 공원에 사람이 많다?
② 페리 타고 가는 시드니, 경치에 탄성이 "와!"
① 말레이시아 군인의 "안녕하세요" 인사말

덧붙이는 글 | 스물일곱. 워킹 홀리데이 비자로 호주에 왔습니다. 앞으로 호주에서 지내며 겪는 일들을 연재식으로 풀어내려 합니다. 좀 더 솔직하고 적나라하게 풀어내고 싶습니다.



태그:#호주, #워홀러, #한인잡, #오지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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