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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빠 팔은 원숭이 팔이 되겠네 / 수채화 / 권순지
▲ 아빠와 딸 아빠 팔은 원숭이 팔이 되겠네 / 수채화 / 권순지
ⓒ 권순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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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째 야근으로 늦은 귀가를 하는 남편의 일시적 부재는 아이들에게 그리움을 알게 했다.

"아빠는 왜 안 오지?"
"아빠가 오늘은 일이 많아서 늦으신대. 우리 아가들, 엄마랑 먼저 코 자자."
"아빠 너무 보고 싶어…"


아이들이 잠들기 전 울먹이며 아빠를 그리워하다 잠이 드는 날이 종종 있다. 그리고 가끔은 엄마에게 호되게 혼이 나는 날이면 유난히 '아빠'라는 이름에 애가 탄다.

아이가 둘이 돼 작은 집이 꽉 들어차게 된 지 4년째. 아이들과 아빠가 신뢰와 애정을 쌓을 수 있게 된 건 오로지 그의 노력이었다. 바쁜 아침 시간, 출근 전 욕실에서 샤워를 하는 아빠가 궁금해 아이들은 매일같이 욕실 문을 빼꼼 열고 들여다보며 묻는다.

"아빠 뭐해?"

'큰일'이 급해 변기 위에 앉아있는 귀중한 때에도 아이들은 그리움을 못 참고 문을 벌컥 열곤 한다. 뻔히 보이는 아빠의 모습을 보고 다 알면서도 아이들은 씩 웃으며 묻는다.

"아빠 뭐해?"

이쯤 되면 씻을 때나 볼일 볼 때 욕실 문을 잠글 법도 하지만, 그는 한 번도 그런 적이 없다. 정신없이 씻고 면도하면서도 아이들의 질문에 꼬박 대답해주고 웃어주는 아이들의 아빠를 매일 보며, 때로는 그 이른 아침에 뭉클함이 일기도 한다.

아침식사의 시작은 함께하지만 늘 먼저 일어서야 하는 아빠가 시야에서 사라질 때까지 "아빠!"라고 외치는 두 녀석들의 사랑은 거저 얻은 것이 아니다. 제 몸도 못 가누던 아기가 수없이 울고 웃으며 이불에서 뒹굴다, 두발을 딛고 서 걷고, 뛰고, 또 말을 하고, 노래를 하게 된 그 시간 동안 적립된 아빠의 사랑은 아이들에게서 확인된다. 

아빠가 저녁에 일찍 퇴근한 날의 집안 공기는 다른 날들과 사뭇 다르다 느낄 정도로 특별하다. 현관문 잠금장치 풀리는 소리와 함께 아빠의 퇴근 기척이 들리면 아이들은 방 안 구석에서 놀고 있다가도 거실로 뛰쳐나온다. 곧이어 퇴근한 아빠의 얼굴을 확인함과 동시에 신바람이 나서 꺅꺅 소리 내며 온 집안을 뛰어다니는 발랄한 녀석들의 저녁시간은 더 이상 특별해질 게 없어진다.

'신생아'였던 남편... 녹록지 않았던 시간

유난히 잠이 많은 시가 가족들의 기질을 그대로 물려받은 남편의 학창시절 별명은 '신생아'였다고 한다. 신생아 못지않게 주체할 수 없을 정도로 잠을 사랑하는 그에게 진짜 신생아가 나타난 뒤로 잠을 포기해야 했던 지난 3년은 고된 시간이었을 것이다.

뱃속에 아이를 갖게 된 내 친구 부부를 만났던 날은 그가 곧 육아동지가 될 친구 남편에게 농담조로 진심을 토로했던 날이기도 하다.

"아빠가 되려면 잠을 줄여야 해."

단 한마디로 아빠로 사는 시간이 녹록지 않았음을 표현했다. 시간이 좀 지나 뱃속의 아이가 세상의 빛을 보게 됐고, 친구와 아기를 본가에 두고 잠깐 유축기를 빌리러 온 친구 남편의 낯빛엔 신입 아빠의 애환이 그대로 묻어나 있었다.

"그 잠 많던 사람이 밤에 애가 울면 그렇게 잘 깨더라."

기적과도 같은 광경을 목격한 듯 까만 눈을 빛내며 감탄의 언어를 아끼지 않았던 친정엄마의 사위사랑은 아이들이 자라면 자랄수록 더 깊어지는 것 같다.

그런 사랑 많은 아빠와 잘 놀다가도 매몰찬 이별을 하듯, 잘 때가 되면 엄마 품으로만 달려드는 아이들은 가끔 아빠를 서운케 하기도 했다. 잠을 포기하며 함께 키운 아이들의 사랑이 한동안은 엄마에게 기울 것이라는 걸 잘 알지만 그래도 마냥 서운해 하고 있을 수만은 없다. 밤이 지나 또 아침이 되면 언제 그랬냐는 듯 아이들은 출근하는 아빠가 일찍부터 그리워 집안 곳곳을 누비고 있을 테니까 말이다.

덧붙이는 글 | 개인블로그 http://blog.naver.com/rnjstnswl3 중복게재



태그:#아빠, #아빠육아, #아빠를 응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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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애, 문화, 다양한 사회현상에 관해 공부하고 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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