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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종걸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는 3월 1일 오전 9시 필리버스터를 중단과 관련한 기자회견을 열겠다고 했으나 연기했다. 이 원내대표는 1일을 기해서 테러방지법에 대한 무제한 토론(필리버스터)을 마칠 것이라고 예고했다.

무려 158시간이 넘는 사상 초유의 필리버스터. 필리버스터의 원인보다는 그것이 "옳으냐, 그르냐"는 쪽으로 여론몰이한 여당과 종편, 청와대의 전략이 4월 총선을 앞둔 여당의 발목을 잡았다고 할 수 있겠다.

대한민국 국회는 정상이 아니다

국회의장에 의해 직권상정된 테러방지법을 막기 위한 야당의원들의 무제한토론(필리버스터)이 8일째인 1일 오전 국회 본회의장에서 국회방송이 임수경 더불어민주당 의원의 필리버스터를 생중계하고 있다.
▲ 필리버스터 생중계하는 국회방송 국회의장에 의해 직권상정된 테러방지법을 막기 위한 야당의원들의 무제한토론(필리버스터)이 8일째인 1일 오전 국회 본회의장에서 국회방송이 임수경 더불어민주당 의원의 필리버스터를 생중계하고 있다.
ⓒ 권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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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당에서는 선거구 획정안 처리와 더불어 테러방지법 독소조항을 수정하자는 제안을 여당에 했다. 하지만 여당은 양보하지 않고, 필리버스터로 이번 총선 일정에 문제가 생기면 모두 '야당 탓'으로 몰아붙일 기세다. 더군다나 158시간 이상 무제한 토론이 이어지는 동안, 야당에서 주장한 테러방지법의 독소조항 등에 대한 여야 간의 조절이나 협의는 거의 이뤄지지 않았다. 한 치의 양보도 서로 없었다는 이야기다. 이것이 과연 정상적인 국회일까?

여야의 입장이 다르면 조금씩 양보하면서 조율해가는 것이 의회정치의 묘미가 아니겠는가? 대한민국 의회는 의회정치의 묘미가 사라진 지 오래라는 것을 이번 테러방지법을 보면서 뼈저리게 느낀다. 대한민국 의회는 '다수당의 폭력'만이 존재하는 것 같다.

이런 상황에서 야당은 여당의 횡포를 막기 위해서라도 '표를 달라' 하고, 여당은 안정성 있게 국정을 운영해 나갈 수 있도록 자신들에게 표를 달라고 할 것이다. 양당은 특히 이번 테러방지법과 관련한 무제한 토론이 이번 4월 총선에서 자신들에게 어떻게 작용할지, 표심에 어떤 영향을 줄지 촉각을 세우고 있다. 그런 고심 끝에 더불어민주당은 '3월 1일로 테러방지법에 대한 무제한 토론을 종결한다'는 쪽으로 입장을 선회한 것이리라.

결론부터 이야기하자면, 더불어민주당은 잘못된 선택을 하고 있다. 이번에 테러방지법이 통과된다고 해도 당장 총선에 큰 영향을 미칠지는 알 수 없겠지만, 종편을 위시하여 국정원, 청와대, 새누리당 등 보수 진영의 총공세는 이미 진행 중이다.

게다가 158시간 넘은 필리버스터를 진행하면서 단 한 문장의 혹은 한 단어의 조율도 이끌어내지 못한 야당의 무능함(다수당 횡포를 부리는 새누리당의 문제지만 보통의 국민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 듯하다)이 부각될 것이다. 이는 오히려 정부와 여당이 추진하는 테러방지법이 타당하다는 공감대를 형성하는 데 도움을 줄 수 있다. 이번 필리버스터 중단은 여당에 칼자루를 쥐여주는 형국이 될 것이다.

'강단 있는 야당'을 원한다

개인적으로 이번 4월 총선에서는 '유권자의 권리를 포기할까' 생각도 했었다. 그러다 사표가 되더라도, 당선 불가능하더라도 의미 있는 정당에 표를 줘야겠다는 정도까지는 마음을 다스렸다. 그러던 중에 테러방지법에 대한 필리버스터가 진행되면서 '다시 한 번 제1야당에 표를 줘야겠구나' 싶었다.

새누리당에 질질 끌려다니는 것도 모자라서 사분오열하는 야당, 거기에서는 아무런 희망을 볼 수 없었다. 더군다나 새로운 정치를 부르짖는 그들의 구호 속에서 나는 구태를 느꼈다. 그러던 차에 필리버스터는 '그래도 야당이 있어서 다행이다'라는 생각을 심어주기에 충분했다.

흔히 50대 중반을 보수 지지층으로 분류하는지 모르겠으나, 소위 베이비붐 세대요, 386 세대요, 6.10항쟁을 주도적으로 이끌어 온 세대다. 여당과 야당의 행태에 진저리치던 친구들이 오랜만에 필리버스터 정국에 하나가 된 듯했다. "한 번만 더 믿어보자"는 결의 같은 것이었다. 그러나 필리버스터를 중단한다면, 유권자의 그런 결의는 물 건너 갈 것이다. 일단 나부터도 사표가 되더라도 '의미 있는 당'에 한 표를 주는 것으로 나의 권리를 행사할 것이다.

국민은 강력한 야당을 원하지, 질질 끌려가는 야당을 원하지 않는다. 그 강력함이란 반드시 수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다. 물론, 그 사이의 고충들이 있다는 것은 인정하지만, 지난 회기 동안의 제1야당의 의석 정도면 존재감을 드러내는데 조금도 부족함이 없는 숫자였다. 숫자가 부족해서가 아니라 능력이 없었으며 강단이 없었던 셈이다. 이런 야당을 국민은 원하지 않는다.

누가 필리버스터 사태를 가져왔는가?

지난 2월 27일 오후 2시 국회 본회의장에서 테러방지법 처리를 막기 위한 야당의 무제한 토론(필리버스터)이 이어지는 가운데, 휴일을 맞은 시민들이 방청석을 가득 채우고 있다. 반면 아래 의원석은 거의 비어 대조를 이루고 있다.
▲ 필리버스터 91시간 돌파...방청석 '북적' 지난 2월 27일 오후 2시 국회 본회의장에서 테러방지법 처리를 막기 위한 야당의 무제한 토론(필리버스터)이 이어지는 가운데, 휴일을 맞은 시민들이 방청석을 가득 채우고 있다. 반면 아래 의원석은 거의 비어 대조를 이루고 있다.
ⓒ 남소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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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원인 제공자에게 끝까지 책임을 물어야 한다. 그런데 이제 본질은 어디로 가고 곁가지가 본질인냥 행세한다. 필리버스터가 '옳으냐, 그르냐?'의 곁가지로 관심이 옮겨가며 본질이 사라진 것이다.

이런 초유의 사태를 몰고 온 것은 박근혜 정권과 이를 무조건 지지하는 새누리당, 테러방지법의 독소조항을 조율하자는 야당의 의견에 책상을 치며 분통을 터뜨리는 대통령, 단 한치도 물러설 수 없다며 옹니를 부리는 새누리당이다. 이들은 국민의 안전(안보)을 담보로 테러방지법이 속히 통과되지 않으면 어떤 일이 일어날지 모른다며 국민을 겁박하고 있다. 이들이 원인이다.

불행하게도 원인제공자들은 가만히 앉아 있는 데도 그들의 전략이 성공하는 중이다. 그 전략에 휘말린 야당만 밤새 목 터져라 생리현상을 참아가며 158시간(3월 1일 오전 9시경) 무제한 토론을 이어가며 자기희생을 하는 중이다. 이것이 희생이 아니라 진정 투쟁이 되려면, 국민을 결집시키고 이번 총선에서 승리를 견인하는 표가 되려면, 야당은 필리버스터를 이어가야 한다. 중단하면 안 된다.

야당에서 선거법 관련 법안을 통과시킨 후 필리버스터를 이어가자 제안한 것으로 알려졌다. 새누리당에서 그것을 받아들이지 않았다면 선거법과 관련된 책임은 새누리당에 있는 것 아닌가. 이런 정도의 판단을 국민이 하지 못할 것 같은가?

야당은 필리버스터를 이어가야 한다. 현재 테러방지법의 독소조항을 삭제·수정하거나 혹은 테러방지법을 폐기하는 것만이 야당이 국민의 전폭적인 지지를 받는 유일한 대안일 것이다.


태그:#테러방지법, #필리버스터, #무제한토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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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을 소재로 사진담고 글쓰는 일을 좋아한다. 최근작 <들꽃, 나도 너처럼 피어나고 싶다>가 있으며, 사는 이야기에 관심이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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