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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국 하루 전 만났다. 서울에서 약속이 두 개나 더 있다는 이야기를 듣고도 인터뷰를 빨리 끝낼 수 없었다. 세계 최대 꽃 수출국인 네덜란드에서 세계 최초로 유학생 신분으로 마스터 과정을 마친 플로리스트 연지영(41)씨를 지난 15일 인천 부평의 한 커피숍에서 만났다. 꽃으로 피운 이야기꽃은 끊이질 않았다.

동양의 비움, 유럽의 화려하고 풍성함
   
연지영 플로리스트
 연지영 플로리스트
ⓒ 김영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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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플로리스트(florist)라는 말은 플라워(flower)와 아티스트(artist)를 합친 말이에요. 예전에는 꽃을 (생계로) 하는 사람이라면 가게에서 꽃을 파는 사람으로만 생각했죠.

요즘은 복합디자이너라고 보시면 돼요. 꽃을 배울 때 꽃만 배우는 게 아니라, 예술학·경영학·원예학 등을 배워야 합니다. 공간 전체를 조언해줄 수 있는 인테리어 디자이너 역할도 겸할 수 있는 수준까지 올라왔어요."

플로리스트라는 말도 친숙하지 않지만 경영과 인테리어까지 섭렵해야 가능하다고 하니, 첩첩산중이다. 구체적으로 어떤 일을 하는 사람들일까?

"플라워 숍을 운영하는 사람도 있고, 플로리스트를 양성하는 교사도 있고, 인테리어 디자이너, 전시회 기획자 등, 넓은 분야에 종사하고 있어요. 저는 전시를 전문으로 하는 것을 배웠습니다. 경기도 고양시에서 매해 고양국제꽃박람회를 하잖아요. 박람회 때 다양한 부스에서 꽃 전시를 하는데, 예를 들면 그런 일이죠."

외국, 특히 유럽의 박람회 규모는 고양시의 10배가 넘는단다. 한국은 아직 꽃의 세계는 초급이지만, 젊은 플로리스트가 많아져서 나아질 것이라는 이야기도 그녀는 덧붙였다.

우리나라에는 한국화원협회가 있다. 1993년 창립해 전문기술 지도와 국내 화훼 발전과 유통을 지원하기 위해 만든 단체로서, 1~2년마다 코리아컵대회를 개최한다. 거기서 우승하면 아시아컵대회에 참가할 수 있는 자격이 주어지고, 아시아컵대회에서 좋은 성적을 내면 월드컵대회 출전권을 얻는다. 월드컵대회는 월드컵 축구대회처럼 4년마다 전 세계를 돌며 열린다.

"지난해 월드컵대회에서 우리나라 최원창 플로리스트가 우승했어요. 유럽이 꽃의 선진국이고 유러피언(유럽풍)이 대세예요. 한국에 유러피언이 들어온 게 1995년이라, 우리는 아직도 배우는 수준이죠. 지난해 우리나라 참가자가 우승하면서 한국 플로리스트의 위상이 높아졌습니다."

유러피언이라는 말을 듣고 난 후 꽃에도 지역적 차이가 있는지를 물었다. 연씨는 동양은 정적이고 유럽은 동적이라고 설명했다.

"동양의 작품은 '꽃은 그대로 있고 사람이 움직인다'고 말할 수 있어요. 반면 유러피언은 꽃이 활발히 움직입니다. 예를 들면 화려한 꽃다발이나 바구니를 그냥 두고 보는 게 아니라 선물을 주고받으면서 움직이는 거죠. 동양 꽃꽂이는 수묵화나 동양화를 생각하시면 돼요. 여백과 비움의 아름다움이 있고요. 유럽은 화려한 색깔로 풍성한 스타일을 추구합니다."

급한 성격 다듬고자 접한 꽃의 세계

연씨는 대학에서 회계학을 전공했다. 대학 1학년 때, 연씨의 급한 성격을 다듬어 보고자 연씨의 어머니는 취미로 꽃꽂이를 추천했다.

"그때 어머니도 동양 꽃꽂이를 배우고 계셨는데, 저는 재미가 없었어요. 어느 날 꽃꽂이를 같이 배우던 어떤 분의 권유로 서울에서 열린 특강을 얼떨결에 따라 갔죠."

유러피언이 처음 우리나라에 들어왔을 때였는데, 동양 꽃꽂이만을 배우던 연씨의 눈에도 새롭게 느껴져 유러피언 꽃꽂이가 배우고 싶었다. 하지만 꽃의 세계가 연씨에게 만만하지는 않았다. 그만둘 생각을 하고 있을 무렵인 1998년, 일본에서 열린 아시아컵대회 참관이 심기일전의 계기가 됐다.

"운이 좋았죠. 학생들은 구경조차 하기 힘들었는데 한국 대표 스태프로 따라갈 수 있는 기회가 생겼어요. 아마 그 대회를 가지 않았으면 꽃(꽂이)을 계속 하지는 않았을 거예요. 일본은 우리보다 10년은 앞서 있었어요. 참가자들의 작품을 보는데 온몸에 소름이 돋는 충격으로 움직이질 못했어요. '나도 이런 작품을 만들어야겠다'는 생각도 했고요. 한국의 플로리스트들도 나름 잘하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일본에 와 보니 아무것도 아니라는 것을 느꼈어요."

그 길로 3학년 때 휴학하고 유학의 길에 올랐다. 아버지는 휴학을 반대했지만, 어머니는 '하고 싶은 걸 하라'고 지원해줬다. 연씨는 이왕 배울 거면 제대로 배우자는 생각에 꽃의 나라인 네덜란드로 가기로 결심했다. 아버지는 가까운 일본으로 가라고 했지만, 어머니는 '오리지널 원조의 나라에서 배우라'고 연씨의 의견을 지지해줬다. 물론 그 후 아버지도 연씨를 물심양면으로 지원해줬다.

그녀는 자신을 무한히 지원해준 부모가 있었기에 지금의 자신이 있다고 말했다. 부모는 현재 부평역 지하도상가에서 20년 째 꽃집을 운영하고 있다.

단기속성 수료증, 플로리스트 대중화에 성공했지만 신중해야

연지영 플로리스트와 그의 어머니. 어머니가 운영하고 있는 꽃가게에서 기념 촬영.
 연지영 플로리스트와 그의 어머니. 어머니가 운영하고 있는 꽃가게에서 기념 촬영.
ⓒ 김영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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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9년 네덜란드에서 공부해 1등으로 자격증을 취득한 연씨는 2002년 네덜란드 사범대학에 입학해 플로리스트를 양성하는 교사과정을 밟았다.

"제가 첫 유학생이었어요. 외국인이 저 혼자였죠. 제가 지나가면 학생들이 모두 저를 알아봤어요."

마스터 과정 2년, 국립원예학교 과정 2년을 거친 연씨는 네덜란드 자격증을 한국에서도 교부할 수 있는 허가증 계약 업무를 담당하고 있다. 플로리스트를 꿈꾸는 사람들이 모두 유학을 할 수 없기에 테스트를 거쳐 한국에서도 자격증을 허가해주는 것이다. 이 자격증은 네덜란드에서 딴 것과 같다.

"현재 우리나라에 분원이 여덟 곳 있어요. 부산·대구·남해·서울·일산·분당 등, 전국적으로 있어요. 네덜란드 사범대 교수님을 모시고 1년에 8주간 교육하러 오는데 제가 통역을 맡고 있습니다. 한 곳에서 일주일간 수업을 진행해, 두 달간 한국에 있어도 부평에 사시는 부모님은 2~3일밖에 못 봬요."

네덜란드에 자신이 운영하는 학원을 가지고 있는 연씨는 지난 달 20일 귀국했다. 이번에는 교수를 대동하지 않고 본인이 직접 특강하러 왔다.

연씨는 플로리스트를 많이 양성하는 것에 대해 긍정적이지만, 단기속성으로 쉽게 딸 수 있는 수료증에 대해서는 우려의 목소리를 내기도 했다.

"예전에는 마스터 전 과정을 거치려면 7~8년 공부해야 했는데, 요즘은 외국에서 일주일간 배우면 주는 수료증도 많이 생겨 마음이 아픕니다. 물론 좋은 현상도 있긴 하죠. 외국에서 수료증을 따 온 사람이 많아져 꽃이 다양해졌으니까요."

언젠가 인천에서 플로리스트 양성하고 싶어

플로리스트는 평생 공부해야 하는 직업이라고 강조하는 연씨는 요즘 '심사 교육'을 공부하고 있다. 예전에는 각종 대회의 심사를 알음알음으로 추천된 사람이 봤는데 2년 전 규칙이 바뀌어 심사 자격증이 있는 사람만이 심사위원이 될 수 있다.

"올해 심사 자격증 시험을 보려고 준비하고 있어요. 공부의 양이 많고 이론의 세계도 엄청 넓죠. 공부할수록 갈증이 생기니까 더 공부하는 것 같아요. 꽃을 다루는 작업은, 꽃이 수명이 짧아 대부분 작업을 마치기 2~3일 전에 철야작업이 많아요.

새벽에 꽃시장에 가야하고 서늘한 곳에서 작업해야 해서 여성들한테는 체력적으로 힘든 직업입니다. 남들 잘 때 못 자고 남들 좋은 날 우리는 가장 바쁘게 일하죠. 꽃을 정말 좋아하지 않으면 끝까지 하기 힘든 일입니다."

힘들어도 자신이 창조한 세계를 사람들이 좋아해주는 것과 식물을 접하며 치유와 안정을 느끼는 맛에 이 일이 행복하다는 연씨는, 조만간 한국에서 출간할 책을 하나 준비하고 있다. 아동원예치료와 관련한 내용인데, 아동심리학자·원예학자 등과 함께하고 있다.

연씨는 네덜란드에서 만난 회계사와 3년 전 결혼했다. 10년 연애한 뒤였다. 언젠가 완전 귀국을 꿈꾸는 연씨는 "인천 남구 주안에서 태어나 네덜란드 가기 전 부평에서 살았던 인천 토박이예요. 기회가 된다면 한국과 인천에서 플로리스트를 양성하는 일에 힘을 보태고 싶습니다"라고 말했다.

덧붙이는 글 | <시사인천>에 실림



태그:#연지영, #플로리스트, #꽃 박람회, #네덜란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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