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전라도서 끌려온 명자 언니 죽을 때
삼단 같은 머릿단 잘라내어 보에 싸서
나의 살던 고향은 꽃 피는 산골
언니들 따라 부른 노래 반 울음 반
누군가는 살아서 이 머리칼 울 엄니께 건네주오
걸음 바로 못 걷던 명자 언닐 안고 들어
위안소 언덕 위에 가슴앓이와 함께 묻고
돌아와 그 밤도 찬물로 아랫도릴 식히며 울었어요.
- 도종환 /  죠센 데이신따이(조선정신대) 중


얼마전 도종환 의원이 수요집회 현장에서 이 시를 낭독했습니다. 영하 10도를 내려가는, 살을 에는 날씨에도 불구하고 많은 사람들이 참석한 그날, 시인이 직접 이 시를 읽어나가자 많은 이들이 눈물을 흘렸습니다.

하지만 전쟁 당사자인 일본은 "강제로 끌고 간 증거 없다"며 거짓말로 일관하고 있고, 한국정부는 단돈 10억에 위안부 피해자 문제를 협상하려고 합니다. 한국 정부는 과연 누구를 위한 정부인지 의문을 품게 됩니다.

송현숙 <고무신_무더기_위해_13획>
 송현숙 <고무신_무더기_위해_13획>
ⓒ 학고재

관련사진보기


한국과 일본 정부가 과거사의 아픔을 지우기 위해 '협력'하는 동안 평범한 이들은 기억을 놓치지 않으려 애썼습니다. 피해 당사자인 할머니들, 수요집회에 참석한 수많은 사람들, 그리고 누군가는 문학으로, 영화로, 그림으로 기억을 담고, 아픔을 함께 하고 있습니다.

화가 송현숙은 위안부 할머니의 아픔을 그림으로 담아냈습니다. 그의 그림을 보면 화폭 가득 옅은 천이 드리워져 있습니다. 13폭의 모시입니다. 아름다운 모시, 이는 우리네 할머니, 어머니들의 고달픈 노동이며 고생스러운 삶의 시간입니다.

그 뒤로는 이름 모를 많은 여인들이 신었던 고무신이 있습니다. 어여쁜 꽃신이 아닙니다. 평생을 아픔 속에서 살다간 여인들의 무덤입니다. 열여섯, 스물 나이, 인생을 시작도 하기 전에 전쟁폭력의 희생자가 되어버린 그녀들을 위한 헌시입니다. 그녀는 일제강점기 성적 노예로 수난을 당한 여성들을 기억하며 진상규명을 요구하기 위해 그린 것입니다.

지난 2월 15일. 또 한 분의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가 돌아가셨습니다. 할머니는 1926년 경남에서 태어나셨고, 열여섯살 때 일본의 공장에서 일하게 해준다는 말에 속아 위안부로 끌려갔다고 합니다.

이제 살아계신 위안부 피해 할머니들은 45명입니다. 전쟁이 끝난 지 70년이 넘었는데도, 일본은 잘못했다 말하지 않고 있고, 한국정부는 묵묵부답입니다. 그러니 살아있는 지금 우리가 모든 기억을 안아야 합니다. 그래서, 오늘 이 그림을 기억합니다.


태그:#위안부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