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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공부 잘하는 남학생일수록 일베 홀릭 많아' 기사가 실린 <국민일보> 1월 26일자 13면.
 '공부 잘하는 남학생일수록 일베 홀릭 많아' 기사가 실린 <국민일보> 1월 26일자 13면.
ⓒ 국민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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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6일 <국민일보>는 경기도교육연구원의 연구 보고서를 인용해 "공부 잘하는 남학생일수록 '일베 홀릭(중독)'이 많다"는 보도를 했다. 이 보도를 바탕으로 <연합뉴스>, <허핑턴포스트코리아> 등 여러 인터넷 언론들이 추가 보도를 했고, SNS에서는 해당 보도의 사실 여부에 대한 갑론을박이 이어졌다.

<국민일보>가 인용한 연구 보고서는 경기도교육연구원이 시대정신연구소에 의뢰해 진행한 '중고등학생의 맹목적 극단주의 성향에 대한 연구 - 일베 현상을 중심으로'로, 작년 12월 19일 출판됐다. 보고서는 일베 경험이나 용어를 사용하는 정도가 성적과 경제수준 모두 상위권이 중·하위권보다 높은 비율로 노출돼 있었다고 설명한다.

 경기도교육연구원이 시대정신연구소에 의뢰해 진행한 '중고등학생의 맹목적 극단주의 성향에 대한 연구 - 일베 현상을 중심으로'에서 학생용으로 제작된 질문지.
 경기도교육연구원이 시대정신연구소에 의뢰해 진행한 '중고등학생의 맹목적 극단주의 성향에 대한 연구 - 일베 현상을 중심으로'에서 학생용으로 제작된 질문지.
ⓒ 경기도교육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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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해당 보고서의 학생 설문조사 질문지를 보면 성적과 경제수준을 상·중·하로 나눌 수 있는지 의문이다. 질문지에서는 학교성적과 경제수준 문항의 선택지를 '매우 잘하는 편', '잘하는 편', '못하는 편'(경제수준은 '사는 편')으로 구성돼 있기 때문이다.

일반적으로 연구에서는 선택지를 구성할 때 ①'잘함', '보통', '못함', ②'매우 잘함', '잘함', '못함', '매우 못함', ③'매우 잘함', '잘함', '중간', '못함', '매우 못함'의 3가지 방법 중 하나를 택하는데, 5점 선택지를 기준으로 보면 해당 질문은 '중간'은 없고 '잘함'에 2문항, '못함'에 1문항이 있게 된다. 중간이라는 선택지가 없는데 어떻게 '중위권'이라는 성적과 경제수준이 나올 수 있을까?

성적과 경제수준이 등수나 가구소득이라는 객관적인 데이터가 아니라 학생들의 주관적인 응답이라는 점도 신뢰를 떨어뜨리는 요인 중 하나다. 예를 들어 "성적이 상위권인 학생 중에는 일베 이용자가 많다"는 결과를 증명하기 위해서는 학생들의 객관적인 성적을 근거자료로 사용해야 한다. 여기서 '잘하는 편'이라는 학생들의 주관적인 판단을 근거로 삼는다면 "자신의 성적이 상위권이라고 '생각하는' 학생 중에는 일베 이용자가 많다"라는 된다. 그러므로 "성적 상위권 학생이 (일베를) 더 자주 찾는다"(헤럴드경제)라고 볼 수는 없다.

 경기도교육연구원의 '중고등학생의 맹목적 극단주의 성향에 대한 연구 - 일베 현상을 중심으로'에 있는 '개인사항에 따른 일베 사이트 내용에 대한 생각'과 '개인사항에 따른 일베 사이트 용어 사용 유무' 표의 '매우 잘하는 편'과 '잘하는 편'을 '잘하는 편'으로 합산해 표를 재구성.
 경기도교육연구원의 '중고등학생의 맹목적 극단주의 성향에 대한 연구 - 일베 현상을 중심으로'에 있는 '개인사항에 따른 일베 사이트 내용에 대한 생각'과 '개인사항에 따른 일베 사이트 용어 사용 유무' 표의 '매우 잘하는 편'과 '잘하는 편'을 '잘하는 편'으로 합산해 표를 재구성.
ⓒ 오준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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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일보>는 '개인사항에 따른 일베 사이트 내용에 대한 생각'에 대한 표에서 "'일베 내용이 어느 정도 맞다'는 응답도 성적이 상위권이고 경제 수준이 높은 학생들이 각각 30.2%와 30.0%에 달해 평균보다 비중이 높았다"고 보도했지만, 비율 그대로 믿기에는 표본의 수가 너무 작을 뿐더러, 위에서 언급했듯 선택지 상에서 정확도가 떨어진다.

그래서 성적에 대한 정확성 높은 비교를 위해 '매우 잘하는 편'과 '잘하는 편'을 합산해 '못하는 편' 응답자와 비율을 비교해보았다. '잘하는 편'이라고 응답한 학생은 '어느정도 맞는 내용'과 '조금은 과장' 응답에 각각 12.7%, 18.8% 응답했고, '못하는 편'이라고 응답한 학생은 8.6%, 22.0%로 응답했다. 긍정 평가한 두 수치를 합산하면 '잘하는 편'과 '못하는 편'이라고 응답한 학생 모두 약 31%로 비슷하다.

'개인사항에 따른 일베 사이트 용어 사용 유무'를 비교해도 마찬가지다. '매우 잘하는 편'과 '잘하는 편'을 합산해 '못하는 편' 응답자와 비율을 비교했을 때, 일베 용어를 자주 사용한다고 응답한 사람의 경우 '못하는 편' 응답자보다 '잘하는 편' 응답자의 비율이 높았지만(잘하는 편 3.7%, 못하는 편 0.8%), 단순히 용어 사용만을 비교했을 때에는 잘하는 편 37.3%, 못하는 편 40.1%로 오히려 공부를 잘하는 편인 학생들의 수치가 더 낮게 나타났다.

즉, "성적 상위권 학생이 (일베를) 더 자주 찾는다"거나, "공부 잘하는 남학생일수록 '일베 홀릭(중독)'이 많다"는 언론의 보도는 정확하지 않다고 말할 수 있다. 선택지에 오류가 있고, 성적 기준도 주관적이기 때문이다.

물론 일베 사이트 용어를 자주 사용하는 사람들과 일베 사이트의 내용이 어느 정도 맞는 내용이라고 응답한 사람들의 비율이 공부를 못하는 편인 사람들보다 잘하는 편인 사람들이 더 많았으므로 '적극적 일베 이용자'는 공부를 잘하는 편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상대적으로 더 많다.

그러나 긍정과 부정이라는 두 가지 결과로 분류를 하면 성적 분류의 두 응답 모두 비슷한 결과가 나온다. 보고서의 내용에 맞는 부분도 있지만, 그대로 해석하기에는 무리가 있는 부분이 있다는 소리다.


#일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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