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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때 그 남자는 눈사람처럼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그때 그 남자는 눈사람처럼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 임윤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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꽤나 감명적이었나 봅니다. 10년이 훨씬 지난 일입니다. 쏟아지는 눈 하염없이 맞으며 아주 간절한 모습으로 누군가를 기다리던 그 모습이 아직도 눈에 선합니다. 기억에 생생합니다.

2003년 12월 19일, 백양사가 있는 전남 장성지방에는 눈이 엄청 내렸습니다. 폭설이었습니다. 일부도로는 통제되고 어떤 도로는 폐쇄됐었습니다. 좌탈입망하신 서옹 스님 영결식이 있던 날이었습니다.

백양사 산내 작은 암자에서 봤습니다. 대학생쯤으로 뵈는 청년이었습니다. 1년 전 약속이라고 했습니다. 여자 친구랑 일년 후 오늘, 그 자리에서 만나자고 약속을 해 기다리고 있는 중이라고 했습니다.

그 남자는 엄청나게 쏟아지는 눈을 옴팍 뒤집어 쓴 채 덜덜 떨고 있었습니다. 흡사 눈사람처럼 보였습니다. 꼭 올 거라고 했습니다. 눈 때문에 차가 막혀서 늦어지고 있을 뿐이라고 했습니다. 정말 하릴없는 기다림이었습니다.

세월이 흐르고, 사회적 여건이 달라지고, 문화가 바꾸면서 기다림이라는 것도 이렇게 저렇게 달라지며 그 의미나 형태가 변해가고 있습니다.

기대, 바람, 기도 그리고 '기다린다는 것'

<기다린다는 것>(지은이 와시다 기요카즈 / 옮긴이 김경원 / 펴낸곳 불광출판사 / 2016년 1월 12일 / 값 13,000원>
 <기다린다는 것>(지은이 와시다 기요카즈 / 옮긴이 김경원 / 펴낸곳 불광출판사 / 2016년 1월 12일 / 값 13,000원>
ⓒ 불광출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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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다린다는 것>(지은이 와시다 기요카즈, 옮긴이 김경원, 펴낸곳 불광출판사)은 사회·문화적 변화와 연동되고 있는 기다림의 형태, 대내외적 의미 등을 내용으로 하고 있습니다.

책에서는 '기다리지 않아도 좋은 사회가 되었다. 기다릴 수 없는 사회가 되었다'고 단정하고 있습니다. 그런 면이 없지 않습니다.

'이 나라에 사는 사람 절반 이상이 휴대전화를 소지하자 만남과 약속의 형식이 변했다. 약속 장소에 늦을 것 같으면 약속 시간 조금 전에 이동하면서 연락을 취한다.

전화를 받은 쪽은 알았다고 하고는 다른 볼일을 본다. 장을 보거나 책을 구경하면서 어슬렁어슬렁 갑자기 끼어든 공백의 시간을 메운다.' - <기다린다는 것> 4쪽 '머리글' 중에서

맞습니다. 요즘은 실시간으로 연락이 가능한 시대입니다. 언제라도 약속 취소가 가능 합니다. 일정까지 안내해 주니 약속을 잊을 일도 없습니다. 약속 장소로 가다 어떤 일로 늦을 것 같으면 언제 어디서나 통화가 가능합니다. 그러니 막연한 기다림은 더 이상 없습니다.

그러함에도 기다림은 여전히 존재합니다. 앞으로도 기다림은 있을 수밖에 없습니다.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이 순간이 기다림일 수도 있고, 지금 우리가 서 있는 여기가 기다림의 장소일 수도 있습니다. 기다림에는 종류도 아주 많습니다. 의미도 매우 다양합니다. 방법도 가지각색입니다.

'이럴 때 기다림은 예감에 불과하다. 기다린 이후를 미리 머릿속에 그리는 미래완료형의 '기다림'이다. 전철을 기다리고, 답장을 기다리고, 출산을 기다리고, 봄이 오기를 기다리고, 형기를 다 채우기를 기다리고, 술의 발효를 기다리는 것과 마찬가지로 예감으로서의 기다림이다.' - <기다린다는 것> 33쪽

기다린다는 것은 과거의 연장일수도 있고, 현재일 수도 있고, 미래로 이어지는 과정일 수도 있습니다. 기다려 왔고, 기다리고 있고, 앞으로도 기다릴 수밖에 없는 삶을 살면서도 우린 기다림이 무엇인지를 한 번도 진지하게 생각해보지 않았을 수도 있습니다. 대개의 사람들은 기다림이 무엇인지를 구체적으로 정의해 보지도 않았을 거라 생각됩니다.

책에서는 그동안 아주 막연하게만 생각하였던 기다림, 기다린다는 것이 무엇인지, 시대에 따라 어떻게 변해가고 있는지, 기다림 속에 드리워 있는 이런저런 의미 등을 아주 체계적으로 설명해 주고 있습니다.

알고 대하는 기다림과 모르고 마주하는 기다림에는 분명 차이가 있을 겁니다. 책에서는 기다린다는 것이 무엇인지를 밑줄을 긋듯 설명해 주고 책갈피를 꼽아 표시해 놓듯 분류해서 설명해 주고 있습니다.

<기다린다는 것>은, 진득한 기다림은 요원해지고, 모든 것이 '빨리빨리'인 이 시대에, 기다림에 깃들어 있는 '기대', '바람', '기도' 어쩌면 말로는 형언할 수 없는 그 어떤 막연함조차도 살뜰하게 챙길 수 있는 마음을 틔워주는 기다림 삼각 프리즘이 될 거라 기대됩니다.  

덧붙이는 글 | <기다린다는 것>(지은이 와시다 기요카즈 / 옮긴이 김경원 / 펴낸곳 불광출판사 / 2016년 1월 12일 / 값 13,000원>



기다린다는 것

와시다 기요카즈 지음, 김경원 옮김, 불광출판사(2016)


태그:#기다린다는 것, #김경원 , # 불광출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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