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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셜네트워크(아래 SNS)를 누구나 사용하게 되면서 내가 쓴 글을 남들에게 쉽게 보여줄 수 있게 되었다. 전에는 블로그에 글을 썼는데 블로그를 하는 사람이 극소수라 읽는 사람이 많지 않았다.

하지만 SNS는 반응을 바로 알 수 있다. 실시간으로 글을 쓸 수 있게 되었고 누군가의 글에 대해 이야기할 수 있는 세상이 되었다. 이런 세상이 되니 자연스레 내 글에 대해 친구들이 평을 해주게 되었다.

보이는 반응은 크게 두 가지였다. 첫째는 남들이 틀리지 않는 쉬운 맞춤법을 틀리는 것이다. 예전에는 사람들이 내 글을 별로 보지 않아서 잘 몰랐는데 SNS는 바로 반응이 온다.

"맞춤법 후덜덜",
"글 쓸 때 제발 퇴고 좀 해라."
"군대 가서 남는 시간에 맞춤법 공부 좀 하고 오면 좋겠다."


두 번째는 심도 있는 글을 쓰지 못한다는 것이다. 주변 사람들이 구체적으로 지적하진 않지만 넌지시 글이 많은 것을 담지 못한다고 비판한다. 글을 쓸 때마다 심도 있는 분석을 하지 못해 나 스스로도 매번 아쉬워한다.

아쉬워하면서도 정작 글을 쓰기 위해 오랫동안 고민하거나 사유하지는 않는다. 내 글은 컴퓨터 앞에 앉아서 갑자기 떠오르는 생각을 적는 정도에 그친다. 떠오르는 것이 없으면 글에 대한 생각은 중단하는 것이 내 글쓰기 버릇이다.

글쓰기는 머리로 쓰는 게 아니라 엉덩이로 쓰는 것


<대통령의 글쓰기>(강원국  지음 / 메디치미디어 펴냄 / 2014.02 / 1만 6000원)
 <대통령의 글쓰기>(강원국 지음 / 메디치미디어 펴냄 / 2014.02 / 1만 6000원)
ⓒ 메디치미디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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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질적인 글쓰기 버릇을 고쳐보기 위해 집어 든 책이 <대통령의 글쓰기>였다. 이 책은 고(故) 노무현, 김대중 전 대통령 연설비서관으로 일했던 강원국씨의 경험을 토대로 쓴 글이다.

직접 두 전 대통령의 연설을 책임지는 역할을 하면서 여럿 노하우를 생생하게 알려준다. 특히 내가 이 책에서 얻은 교훈은 글을 쓰기 위해 시간과 노력을 많이 해야 한다는 것이다.

노무현 대통령은 글쓰기는 머리로 하는 게 아니라 엉덩이로 쓴다고 말했다. 이 말 뜻을 곰곰이 생각해보면 글 쓰는데 시간을 많이 투자해야 한다는 말이다. 저자는 일화를 하나 소개한다.

노 대통령은 국민들 앞에 연설을 앞두고 고심에 빠졌다고 한다. 연설 중에 '우리'라는 표현을 가지고 국민, 민족, 국가 등 어떤 단어를 써야 할지 밤을 새우며 고민을 했다고 한다. 연설 직전까지 고민하다가 연설 직전에 결정을 하는 경우도 많았단다. 단어 하나를 어떻게 쓰냐에 따라 글의 의미가 달라지는 것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는 사람이었다.

글쓰기는 숙성 기간이 필요한 와인과 같다

2006년 신년연설회 준비회의 때 노 대통령은 막힘없이 자신의 생각을 말했는데 참모들이 감탄하는 표정을 지었다고 한다. 노 대통령은 "내가 자네들보다 머리가 좋을까? 아닐세. 나는 자네들보다 열 배는 더 생각을 많이 할 걸세. 어느 때는 자다가도 일어나 메모를 하네. 잠자리에서 생각난 것을 잊어버릴까 봐 그러네"라고 말하며 생각의 힘을 강조했다.

저자는 이런 노 대통령의 글쓰기 태도에 대해서 덧붙여서 글쓰기는 와인과 같다고 말한다.

"와인이 부드럽고 깊은 맛을 내기 위해서는 숙성 기간이 필요하듯이, 글도 생각의 숙성 기간이 필요하다. 그러나 단박에 써 내려가지 못하는 것에 대해 조바심을 가질 필요는 없다. 때로는 며칠씩 묵혀 두고 다른 일을 할 필요도 있다. 그러다 문득 떠오른다. 언제일지 모르고, 어느 장소일지 모른다. 혼자 걷다가, 혹은 누군가와 대화하다가, 또는 화장실에서 떠오를 수도 있다. 바로 그 순간을 놓치지 않고 붙잡으면 된다."

글쓰기가 잘 되지 않았을 때 난 두 가지 선택을 했다. 꾸역꾸역 글을 마무리 짓거나, 글쓰기를 포기하고 다시는 생각하지 않았다. 이렇게 글을 쓰다 보니 깊이 있고 숙성된 글은 나올 수가 없었다. 글쓰기가 안 될 때는 쓰는 행위를 중단해야 하지만 글에 대한 생각의 끈을 놓아서는 안 되었다.

글쓰기는 죽을 때까지 숙고하는 것

"자기 나라 역사를 모르면 혼이 없고, 잘못 배우면 혼이 비정상이 될 수밖에 없다."

지난 11월 역사 교과서 국정화 문제가 논란이 되자가 박근혜 대통령이 발표한 연설이다. 박 대통령의 말은 두고두고 회자가 되며 패러디가 되었다. 나쁜 의미로 말이다. 역사 교과서 국정화에 반대하는 국민을 혼이 비정상인 사람으로 공개적으로 취급했으니 국민들이 더 거세게 반발하였다.

이 발언이 대해 박근혜 대통령은 제대로 숙고했을까 의문스럽다. 국정화 교과서 반대 여론을 설득하기 위해서는 완고한 표현이 필요했다. 국정교과서 문제뿐 만 아니다. 박근혜 대통령은 지난 11월 14일 민중총궐기 집회에 복면을 쓰고 참가한 사람들에게 "복면 시위는 IS 같다"라는 망언을 하기도 했다.

숙고하지 않은 발언이 어떤 사태를 불러오는지 박근혜 대통령의 사례를 보면 알 수 있다. 글은 내가 하고 싶은 얘기를 듣는 사람들의 표현 방식으로 써야 한다. 김대중 전 대통령은 글쓰기 전에 무조건 내 말을 다른 사람들이 100% 못 알아들을 것을 가정하고 글을 써야 한다고 말했다. 그만큼 글을 쓸 때 상대방의 입장에서 쉽게 이해할 수 있는 표현을 수십 번 반복해서 고민해봐야 한다는 말이다.

글쓰기에 대한 책을 보며 볼수록 어렵게 느껴진다. 단순히 순간적으로 떠오르는 생각을 적는 게 글쓰기가 아니라는 사실을 알고 나니 더 그렇다. 매 순간 내가 표현하고 싶은 것을 숙고하며 살아야 한다고 생각하니 부담감이 몰려온다.

그럼에도 내 경험과 생각을 남들에게 재미있고 정확하게 글로 전달하고 싶은 욕심은 없어지지 않는다. 결국 죽을 때까지 좋은 글쓰기 위해 고민하는 수밖에 없다. 마지막으로 김대중 대통령이 서거 직전까지 글을 쓰고 주변 사람들과 글을 검토했던 일화를 소개하고 글을 마무리하겠다.

"김대중 대통령은 서거 한 달여 전인 2009년 7월 12일 임동원 전 통일부 장관에게 전화했다. 7월 14일로 예정된 유럽상공회의소 초청 연설문을 검토해달라는 얘기를 하기 위해서였다. 그게 마지막이었다. 그다음 날 입원했고, 영영 돌아오지 못할 먼 길을 떠났다. 대통령은 끝까지 글을 붙들고 있었고, 그 글을 누군가에게 보여주어 좀 더 완벽한 글을 만들고자 했다."


대통령의 글쓰기

강원국 지음, 메디치미디어(2014)


태그:#대통령글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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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국민주일반노동조합 부산본부 사무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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