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어머니는 올해 88세로 혼자 고향 순천에 사신다. 약 70년 전 시집 오셔서 고향집을 떠나보신 적이 거의 없다.
이번에 손녀딸이 미국으로 유학간다는 전화를 받으시고 손자·손녀들이 보고싶으시다고 고향집을 떠나 서울 우리집에 오셔서 일주일을 지내셨다. 가족모임에서 14명의 손자·손녀 중 3명을 제외한 11명을 보셨는데, "서울 오시기 참 잘했다"라고 하셨다.
어머님으로써는 꽤나긴 기간인 일주일을 우리 집에 계시다가 매일 복용하시던 혈압약 등이 떨어졌다면서 순천에 가서 평소 다니던 병원에 가셔서 약을 지어야겠다고 하시면서 고향에 가시겠다고 하셨다.
노인을 혼자 버스 태워 보내는 것이 맘에 내키지 않았지만, 아침 일찍 가셔야 평소 다니시던 병원 끝나기 전에 도착하신다는 게 어머니 말씀이었다. 아침일찍 내려가시겠다해서 동서울터미널에서 순천가는 첫 차를 태워드렸다.
새벽 일찍 일어나시어 요기라고는 따뜻하게 끓인 누룽지만 드시고 집을 나서셨는데, 아내가 "가시다가 맛있는 거 사 잡수시라"며 얇은 봉투 하나를 건네니 극구 사양하시다가 마지 못해 받아 넣으셨다. 그리곤 터미널에 가시기 위해 내 차에 올라 타셨다.
동서울터미널에 도착해 순천행 첫차에 어머니를 태워 드리며 옆에 앉은 여성분에게 "순천까지 가시는 할머니니 잘 부탁한다"라고 말했다. 직접 모셔다 드리지 못한 아쉬움에 떨어지지않은 발길을 돌려 차에 돌아왔다.
주차장에 주차된 차에 돌아와 순천행 버스가 나가는 것을 보고 옆 조수대를 보니 봉투가 하나 있다. 자세히 보니 며느리가 찔러준 봉투를 아들 몰래 차에다 놓고 내리신 게다. 손녀가 유학가는데 돈도 많이 들텐데 하시며 극구 사양하시던 봉투를 아무도 모르게 차에다 두고 내리신 것이다.
이것이 정녕 우리 모두의 어머니 마음인 게다.
한참을 아무도 없는 차에 앉아 직접 모셔다 드리지 못하고, 혼자 버스를 태워 보내드린 불효를 한탄하며 눈물을 흘렸다. 집으로 돌아오는 내내 눈시울이 뜨거웠다.
지금 이 시간도. 시골에 계신 어머님께 전화를 드려 "별일 없으세요?" 여쭤봤더니 여전히 어머님은 "병원 들려 물리치료 받고, 약 지어와, 별일 없다"라고 하신다.
아무리 봐도 우리들의 어머니는 어떤 산보다 큰 산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