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흑산도 노랫가락 꺾이듯 열두 굽이 꺾였다. 1000년 묵은 이무기가 승천하려는데 아직 꼬리는 바다에 묻혔다
▲ 상라봉 고갯길 흑산도 노랫가락 꺾이듯 열두 굽이 꺾였다. 1000년 묵은 이무기가 승천하려는데 아직 꼬리는 바다에 묻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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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리에서 심리로 가는 길에 땅이 좁아 하늘을 빌려 길 냈다. 이름은 하늘도로, 흑산사람들이 자랑삼는 길이다.
▲ 흑산도 ‘하늘도로’ 비리에서 심리로 가는 길에 땅이 좁아 하늘을 빌려 길 냈다. 이름은 하늘도로, 흑산사람들이 자랑삼는 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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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리(鎭里) 무심사터를 지나자 오르막 고갯길이 시작되었다. 이미자의 <흑산도아가씨> 노랫가락 꺾듯 열두 굽이 꺾어 오르면 상라산 꼭대기. 그 꼭대기 한쪽에 흑산도아가씨 비가 우뚝하다. 지나온 길을 보았다. 구불구불, 꼬리는 바다에 감추고 고개 꼿꼿이 들어 하늘로 승천하려는 이무기처럼 보인다.

낮 안개 끼어 주변이 흐릿하나 맑은 날이면 사방팔방 주변 섬이 다 보인단다. 홍도, 장도, 다물도, 모두 흑산 형제 섬들이다. 상라봉 동쪽은 천길만길. 깊다. 그 깊은 곳은 천마산 정기를 이어받았다는 마리(馬里)와 진리 산 너머 동네, 비리(比里)다.

땅이 모자라 하늘 빌려 길 냈다. 이름은 하늘도로, 흑산도 사람들이 자랑삼는 길이다. 하늘길 '날라' 도착한 마을은 지푸미, 심리(深里)마을이다. 바닷길을 빌려야지 땅만 밟고서는 오기 힘든 깊은 골짜기, 그곳에 심리마을이 숨어 있다.

심리 옆 동네는 암동(暗洞), 어둡고 살기 힘들어 심리 사람들이 붙여준 이름이다. 깊기로는 도긴개긴인데 말이다. 어느 마을이 하늘아래 끝 동네인지 내기라도 하는 것 같다. 지푸미 앞 바다와 산은 검다. '아 이래서 흑산인 게로군.' 마을사람들 들으면 서운해할까봐 입속에 머금고 내뱉지는 않았다.

세상 끝까지 온 기분이다. 끝은 새로운 시작이라고 했던가, 고개 하나 넘으면 정약전이 새로운 삶을 시작한 사리마을이다. 고개이름은 한다령(恨多嶺), 한이 많아 한다령이다. 상라봉 고개는 열두 굽이, 한다령 고개는 열다섯 굽이다. 열다섯 굽이 굽이굽이 돌아 사리(沙里)마을로 들어갔다. 내 한(恨)까지 더해져 한다령 한은 한 겹 더 쌓였다.

사리마을과 정약전... 마을 꼭대기로 이어진 좁은 마을길

마을 꼭대기는 유배형벌 견본집과 유배공원이 들어서 어수선하다. 돌담은 아랫마을이 더 좋다. 사진왼쪽 파란색지붕이 사리공소고 그 위 초가집이 사촌서당이다
▲ 사리마을 정경 마을 꼭대기는 유배형벌 견본집과 유배공원이 들어서 어수선하다. 돌담은 아랫마을이 더 좋다. 사진왼쪽 파란색지붕이 사리공소고 그 위 초가집이 사촌서당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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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길에 내줄 땅도 그럴 생각도 없다. 길 옆 손바닥만한 땅이라도 밭담 쌓아 밭 일궜다
▲ 사리마을 마을길과 밭 길에 내줄 땅도 그럴 생각도 없다. 길 옆 손바닥만한 땅이라도 밭담 쌓아 밭 일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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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리 도로변에는 멸치 말리는 작업이 한창이다. 홍어가 흑산의 명물이라지만 사리의 명물은 멸치. 사리에서는 홍어 대신 멸치다. 예전에는 멸치잡이로 돈도 많이 벌었다 하던데 이제 채반 위에서 등 굽어 말라가는 멸치마냥 많이 오그라들었다.

사리에 와서야 겨우 밭 구경을 하였다. 흑산에서 좀처럼 보기 힘든 게 있다면 논밭이다. 그러니 손바닥 밭이라도 귀할 수밖에... 발길질에 밭이 치일까봐 야무지게 밭담을 쌓았다. 길에게 양보할 생각이 전혀 없었는지 길은 좁다. 좁은 마을길은 실뱀처럼 마을 꼭대기로 이어졌다.

유배당시 정약전이 마을아이들을 가르쳤던 서당. 현판은 사촌서당 대신 복성재나 사촌서실 현판을 달아야 맞다. 글씨는 정약용 글씨를 집자한 것이다.
▲ 사촌서당 유배당시 정약전이 마을아이들을 가르쳤던 서당. 현판은 사촌서당 대신 복성재나 사촌서실 현판을 달아야 맞다. 글씨는 정약용 글씨를 집자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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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을 꼭대기는 마을집도, 길도 사라져 휑하다. 정약전에 대한 대접이 너무 과했나? 마을 집 이 헐리고 위리안치, 본향안치, 절도안치 등 유배형벌 견본집과 유배공원이 들어섰다. 정약전이 자산어보를 짓고 마을아이들 공부시켰다는 집에 사촌서당(沙村書堂)도 꾸며놓았다.

사촌서당 현판이 달려 있는데 자료에 따르면 사촌서실(沙村書室)이나 복성재(復性齋) 현판을 달아야 맞다. 사촌서당 글자도 정약용 글씨를 집자한 것이다. 정약전 글씨를 놔두고 동생글씨를 달았을까?

공원공공근로를 하는 것으로 보이는 마을할머니에게 물어보았다. "원래 이 근처가 이렇게 휑하였나요?" 물으니 왠지 언짢은 말투로 "여그는 다 집이었소"라 한다. 내 기분 탓에 그렇게 들렸는지도 모른다.

사리의 역사는 깊다. 1200년경 밀양박씨가 들어와 마을을 일궜다. 마을 주변에 모래가 많아 모래미, 사촌으로 불리다 사리가 되었다. 사리는 정약전을 빼놓고 애기할 수 없다. 그는 배교자(背敎者)로 사리에 왔다. 세상 너머를 동경했으나 그가 산 세상은 그를 세상 속에 가두었다.

김훈은 소설 <흑산>에서 '정약전은 세상 너머를 엿보며 천주교에 입교했지만 결국 세상으로 돌아와 배반의 삶을 살다가 흑산도에서 쓸쓸히 죽어간 인물'로 그렸다고 했다. 그러나 최근 정약전의 흑산 삶이 하나씩 알려지면서 그는 세상 속에서 세상 너머의 가치를 완전히 포기한 채 무기력하게 죽어가진 않은 것으로 밝혀지고 있다.

세상 속에서 세상 너머의 가치를 엿보면 죄가 되는 세상, 그는 배교자의 '주홍딱지'를 달고 세상 속에서 세상 너머에 있는 가치를 찾으려 몸부림쳤다. 평등, 사랑, 평화의 가치. 자산어보는 그런 몸부림 속에서 나온 혼이 담긴 '심서(心書)'다.

"이 마을 '원조돌담'은 바로 나요"

반들반들한 호박돌로 쌓은 돌담, 세월을 이기지 못하여 배가 불룩하다. 이 마을 원조돌담이라 자랑하는 것 같다
▲ 사리마을 배부른 돌담 반들반들한 호박돌로 쌓은 돌담, 세월을 이기지 못하여 배가 불룩하다. 이 마을 원조돌담이라 자랑하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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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을의 직선 담, 곡선담은 바람을 온몸으로 막기도 하고 바람을 달래기도 한다
▲ 사리마을 돌담 마을의 직선 담, 곡선담은 바람을 온몸으로 막기도 하고 바람을 달래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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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리 담은 어수선한 유배공원 쪽보다는 민가와 돌담으로 총총한 아랫마을 담이 더 좋다. 포구 향해 길게 뻗은 직선담은 바닷바람을 온몸으로 한 번 막아내고 그 뒤에서 허리 굽은 담은 용케 돌담 뚫고 들어온 성난 바람을 잠재운다. 온갖 고초 다 겪고 세월에 눌려 담 가운데가 불룩한 '배부른 담'은 자기가 이 마을 '원조담'이라 자랑하고 있다.

밭담 안에서 일하는 할머니를 만났다. 밭돌 캐서 밭 한쪽에 밭담을 쌓고 있었다. 수백 년 걸쳐 쌓아온 밭담, 집담이지만 아직도 쌓고 있다니 참 모질고 질기다. 덜그럭, 덜그럭, 흙을 파면 흙소리 대신 돌소리가 난다. 파고 또 파도 돌이다. 돌 캐면 그게 밭 일구는 거다. 할머니 손에 쥔 연장은 호미처럼 보였으나 육지 호미처럼 날이 넓지 않고 길쭉하고 뾰족하였다. 흙보다 돌이 많으니 날이 넓을 필요가 없었던 것.

 마을할머니가 밭에서 ‘돌’ 캐내고 캐낸 돌로 밭담 쌓고 돌 나온 곳에 새생이 심고 있다.
▲ 사리마을 밭과 마을할머니 마을할머니가 밭에서 ‘돌’ 캐내고 캐낸 돌로 밭담 쌓고 돌 나온 곳에 새생이 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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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머니에게 "호미 아니에요?" 물으니 "호민디, 돌이 많이 백켜 이렇게 생겨불었소"라는 설명이 돌아온다. "뭐 심으세요." "새생이 심으요." "네?" 내가 못 알아드니까 "약초심으요." 나중에 알고 보니 흑산도 특용작물, 전호였다. 일명 새생이, 아삼이라도 한다나. 호미 한번 보여 달라고 청하니 얼굴은 감추고 호미만 내 눈에 내밀었다. 더 이상 성가시게 굴지 말고 갈 길 가라는 뜻이다.

사리마을은 한다령으로 들어와 묵령고개로 나간다. 묵령 너머 동네는 청촌(靑村)마을. 수림이 울창하여 붙은 이름이다. 바다가 더 좋아보였다. 청촌항 바닷가 줄에는 잘 다듬은 가자미, 승대(성대), 노래미, 간재미가 널려 있었다.

칠형제바위에 둘러싸여 포구는 잔잔하다. 정약전이 묵령고개에서 칠형제바위를 내려다보며 강진에 있는 동생, 정약용을 그리워했을 것 같다
▲ 사리포구와 칠형제바위 칠형제바위에 둘러싸여 포구는 잔잔하다. 정약전이 묵령고개에서 칠형제바위를 내려다보며 강진에 있는 동생, 정약용을 그리워했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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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자미, 성대(승대), 노래미, 간재미가 청촌항 바닷가 줄에 매달려 말라가고 있다
▲ 청촌바닷가 가자미, 성대(승대), 노래미, 간재미가 청촌항 바닷가 줄에 매달려 말라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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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재미는 오늘 갖고 가 회로 좝써. 오늘 잡은 거라 홍어만 못하여도 좀 쏴안 홍어 맛이 날거시여. 다른 것도 깨까다게 손질하였응게 맛나게 좝숴."

마른 몸에 얇은 피부, 돌아가신 내 어머니 쏙 빼닮은 주인 할머니는 신신당부하며 자식 보내듯 '어여 가라며' 손등인사 하신다.

흑산도를 떠나며 정약전을 떠올렸다. 세상 속에 갇혀있기를 거부하고 세상너머를 엿보고 세상너머의 가치를 추구한 죄로 흑산도에 유배 온 정약전. 우리는 훗날에는 죄가 아닌 죄를 지으며 현재를 살아가고 있다. 우리는 누구나 '정약전의 죄'를 저지를 수 있다. 세상 속에 우리를 가두려고 하는 사회일수록 '정약전의 죄'는 많아진다. 우리가 살고 있는 현재 사회는 어떤 사회일까?


태그:#흑산도, #사리마을, #돌담, #심리, #청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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